정치 불신 먹고 퍼진 죽음의 바이러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8.20 14: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에라리온 국민, 정부 안 믿어…에볼라 초기 대응 실패

기니·라이베리아와 함께 시에라리온은 에볼라 바이러스 발생 국가로 유명해졌다. 에볼라가 발생하기 전에는 ‘세계 최단명 국가’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던 나라다. 여성 6명 중 1명이 임신이나 출산 중 사망하며 영아 1000명 가운데 140명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둔다. 기대수명도 남성은 46세, 여성 49세에 불과한 어둠의 땅이다.

국민들은 불안정한 사회 때문에 단명했다. 1990년대 ‘광기의 전쟁’으로 불린 최악의 내전 탓이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시에라리온은 제대로 된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채 혼돈의 시간을 보냈고 그 사이 내전이 일어났다. 1991~2001년 반군인 RUF(혁명연합전선)와 정부군이 벌인 전쟁에서 12만명이 죽었다. 수천 명의 사람은 손발을 절단당했다. 반군은 마을을 약탈하며 남자들의 손목과 발목을 잘라냈다. 농경 국가인 시에라리온에서 손발이 절단된 남자는 노동력을 상실하면서 사회적 사망 선고를 받았다. 반군은 자신들의 힘을 잘려진 손발로 증명했다. 그들의 만행으로 지금도 수도인 프리타운에서는 손발이 잘린 채 구걸하는 남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에볼라 최대 감염국인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 에볼라 바이러스 증상 등이 적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 AP 연합
“서방 지원 받으려고 에볼라 퍼뜨린다” 루머

10년간의 내전으로 궁핍해진 땅에 에볼라까지 창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8월9일 기준)에 따르면, 시에라리온은 에볼라 최대 감염 국가다. 730명의 감염자가 보고됐다. 사망자도 이미 323명이나 나왔다. 뉴욕타임스가 묘사한 시에라리온 동부의 마을 은잘라 응기에마의 풍경은 비참하다. 마을 주민 500여 명 중 61명이 에볼라로 죽었는데 다행히 이후 한 달 동안에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볼라가 아닌 식량난으로 굶어 죽을 판이다.

시에라리온 정부는 7월30일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동부 지역 일대를 ‘에볼라존’으로 선포했다. 치안 부대가 투입됐고 감염자 격리를 위해 이 지역은 봉쇄됐다. 이렇게 고립시킨 지역이 우리 경기도 면적과 비슷한 1만㎢에 달한다. 마을이 고립되자 식료품이 부족해졌고 실제로 아사자들이 발생했다. 은잘라 응기에마가 처한 현실이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비참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5월27일 시에라리온 동부 카이라훈에서 첫 에볼라 사망자가 확인됐다. 시에라리온 정부는 에볼라 감염자 구별법 및 감염 예방책을 주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알렸다. ‘환자의 혈액이나 타액, 시체 등을 만지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나눠주고 홍보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장례식 때 시신과 접촉하는 풍습이 있어서 에볼라 사망자 장례식은 에볼라 확산을 의미했다. 실제로 시에라리온의 감염자들 중 일부는 친척이나 친구 장례식에 다녀온 뒤 발병했다.

그러나 당시 동부 지역 주민들은 정부의 걱정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볼라는 외국인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고생을 해야 했다. 외국인 활동가들이 꾸린 시체 매장 팀은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여성과 아이들의 회피 대상 1호가 됐다. 마을 남자들은 “매장할 시체가 없으니 나가라”고 이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정부가 에볼라를 확대시킨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정부가 에볼라 환자의 혈액을 팔고 싶어 한다”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다. 에볼라 최대 감염국의 뿌리 깊은 불신은 정부의 초기 대응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아무리 공지를 해도 주민들은 듣지 않았다. 서방 의사들은 “현대 의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주민들이 미신에 의존한다”며 이들의 무지를 탓했다. 반대로 주민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전통에 기댄 성령 치료나 민간요법을 찾았다.

에볼라 최대 감염국인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 에볼라 바이러스 증상 등이 적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 AP 연합
“에볼라로 야당 지지 강한 지역 죽이려 한다”

그렇다고 불신을 품은 주민들만 탓할 수도 없다. 그동안 시에라리온을 통치해온 여당 APC(전인민회의)가 20여 년간 보여준 것이라고는 무능력과 부패뿐이었다.

내전 때부터 정권을 잡았던 APC는 북부와 서부에 거주하는 테므네족의 지지를 받고 있다. 수도인 프리타운을 중심으로 엘리트 중심의 정치를 이어가는 시에라리온은 서부 중심의 국가다. 반면 야당인 SLPP(시에라리온 인민당)는 동부와 남부를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곳은 기니·라이베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부에 비해 열악한 데다 내전을 피해 도망쳐 온 난민들이 동부 국경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APC의 장기집권 아래 동부 지역 사람들은 경시돼 왔다. 이 지역의 정치적 권리 역시 억압됐다. 열악한 환경과 인프라 탓에 동부 주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 세월이 쌓이다 보니 정부의 의료서비스가 민간요법을 이기는 사례를 찾기란 극히 드문 일이 됐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APC는 집권할 때마다 동부와의 화해를 이야기했다. APC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국가 통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매번 거짓말이었다. 막상 시에라리온의 내각은 20명의 장관 자리 중 절대 다수가 테므네족 혹은 북부·서부 출신들의 차지였다.

동부와 서부의 역사, 불신의 역사는 에볼라를 둘러싸고 심각한 오해를 낳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한 후 정부가 야당의 지지 기반인 이 지역의 인구를 줄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동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에라리온 동부에 거주하는 인류학자 마리안 페름은 “시에라리온 정부는 지금까지 거짓말만 해왔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한들 사람들이 거짓말 정부를 믿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시에라리온에 확산되는 죽음의 바이러스는 정치적 불신을 먹고 퍼졌다. 아프리카 한 작은 국가의 이런 정치적 불신이 지금 지구를 바이러스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