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안 변하면 미래 인간에 몹쓸 짓 하는 셈”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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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정신과 의사가 내놓은 ‘후예들의 삶을 위한 처방’

한 청년이 군대에서 막 제대했다. 군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늠름해 보였다. 어른이 보기에 좋았다. 어른은 자신의 군 복무 시절을 떠올렸다. 군 생활을 하면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부대끼며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지 좀 배워 나왔다. 제대 이후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군 생활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줬다. 그 청년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다시 그 청년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군대 가기 전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었다. 군대 가기 전 청년은 무기력해 보이고 주위에 무관심했다. 군대 갔다 오면 씩씩해지겠지…. 하지만 제대한 청년은 길에서 사람을 봐도 본 체 만 체 다시 구입한 스마트폰에만 몰입해, 마치 줄에 목이 매달려 끌려 다니는 강아지 모양이었다. 어른이 청년에게 친구는 안 만나느냐고 물었다. “필요 없어요”라는 대답을 들은 어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어른이 청년을 이해하려면 정신과 의사 이나미 박사(53)를 만나보는 것도 괜찮겠다. 분석심리학자로도 활발히 활동을 펼치는 이나미 박사가 앞으로 20~30년 후에 청년층과 중년층이 되는 사람의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X세대가 낳을 A세대에 대한 정밀 보고서

“그들이 무기력해 보이는 이유는 사람보다 기계와 더 친하게 지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 써야 할 에너지까지 인생 초반에 다 써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박사는 최근 펴낸 <다음 인간>을 통해 그들이 무감동·타성·무기력·무관심에 젖어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의 진단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미래학자가 말하거나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 인간을 더 세밀하고 깊이 있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젊은 세대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현실을 통찰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들의 부모 역시 경쟁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환경에서 자라 자유로운 육아법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 또 자신들의 좌절된 성취를 자녀에게 투사해 기대치가 높아져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자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기대는 자녀가 밉고 무능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던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달리, 가족이나 공동체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X세대는 무책임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21세기 키드인 자녀와 관계를 완전히 절연할 확률이 높다.”

무엇이든 악착같이 하던 과거 세대와 달리 무감동(Apathy) 세대, 즉 ‘A세대’라고 명명된 이들은 일단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A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주변에 있었다. 즉 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오롯이 만났다기보다는 기계를 통해 부모를 포함한 사회와 접촉한 세대다.

이 박사는 이들의 부모들 역시 어릴 때부터 게임과 인터넷에 빠져 살던 세대라고 지적한다. 전통적인 모습의 부모보다는 아이를 방치한 채 각종 사이버 매체에 중독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부모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 부모에 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는 부모나 다른 사람과 애착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니 연애나 결혼을 하는 것도 어렵다. 그 결과 낮아진 결혼율이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다. 또 낡고 오래돼 더 이상 쓸 수 없는 로봇 폐기물 처리와 그 때문에 우울증이 온 아이를 치료하는 매뉴얼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유모 로봇의 상용화는 아이와 부모의 정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육아 부담을 덜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통적인 신체 접촉 위주의 양육이 아니라서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그런 자녀를 둬서 고민인 집이 있는데, 미래에는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이 박사는 그런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이 박사는 최근 함께 펴낸 <행복한 부모가 세상을 바꾼다>를 통해 그런 미래를 막을 처방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금 부모가 변하면 된다는 얼핏 보면 아주 쉽고 간단해 보이는 해법이다.

“지나치게 쉬워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기본은 쉽게 전수되지 않는다. 부모가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고 있으면 아이 역시 밤늦게까지 게임에 몰두하거나 휴대전화에 매달린다. 그러지 말라고 제재를 가할 즈음은 이미 몸에 습관으로 붙어버려 고치기 힘들다.”

한쪽에서는 과하게 누리고 살며 인간미를 잃어가고 한쪽에서는 꼭 필요한 생존 요건마저 박탈당해 인간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양극화된 환경 또한 ‘미래 인간’을 안 좋은 쪽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박사는 그 해결책으로 “기본을 가르치는 자녀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내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 이기주의로는 더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이제는 부모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교육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자녀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사는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이것이 진정으로 내 자녀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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