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멍청한 축구협회 같으니라고!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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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 협상 때 ‘패’ 다 보여줘 주도권 잃어

홍명보 감독 사퇴 이후 한 달째 공석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표팀) 감독 선임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한축구협회는 8월17일 우선 협상 대상이던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 결렬을 알렸다. 당초 계약 성사를 자신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장담은 공염불로 끝났다. 하루 뒤 이 위원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 앞에서 협상 결렬 이유와 향후 계획에 대해 브리핑했다. 가장 큰 이유는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한 데 있었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협상 능력 부재, 이 위원장의 지나친 자신감과 이상적인 기준 설정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결국 9월5일과 8일에 베네수엘라, 우루과이를 상대로 한 두 차례 A매치는 감독 없이 국내 코칭스태프에 의해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2012년 UEFA컵에서 네덜란드 팀을 맡은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덴마크전에서 선수를 독려하고 있다. ⓒ EPA 연합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8월 초 유럽으로 건너간 축구협회 관계자와 접촉한 후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이후 두 차례의 실패로 추락한 이미지를 한국에서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축구협회 역시 브라질월드컵 실패 후 이름값 높은 감독으로 대표팀을 재건하겠다며 이전의 외국인 감독보다 더 높은 한도의 연봉을 책정한 상태였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 개인의 연봉과 그가 대동할 코치까지 포함해 총 30억원 이상이 예상됐는데 축구협회는 이를 감수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진정성 없었던 판 마르베이크

하지만 순조로워 보이던 협상은 세 군데에서 막혔고, 결국 판이 깨졌다. 협상 결렬의 첫 번째 이유는 세금이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2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고액 수령자다. 한국 기준으로는 소득에 약 40%가량의 세금이 붙는다. 네덜란드는 이보다 세금 비중이 더 높지만 한국과 이중과세방지협약이 체결돼 있어 한국에서 낸 세금을 제외한 금액만 부담하면 된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한국에서 내야 하는 자신의 세금을 축구협회가 부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세전 연봉을 온전히 받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 감독 개인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연봉만 30억원으로 치솟지만 축구협회는 이 부분까지도 수용했다. 그러나 그 후 네덜란드에서 내야 할 세금까지 요구하자 축구협회의 입장이 바뀌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감독과 선수는 세금 탈루 혐의로 법정에 서는 일이 잦다. 네덜란드 세금까지 부담해달라는 판 마르베이크 감독의 요구는 지나쳤다.

주 활동 지역에 대한 이견 차도 컸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호감을 드러낸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대표팀에 많아 나도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평가전을 비롯한 A매치 일정이 있을 때는 한국에 머무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럽에서 일하겠다는 의도였다. 과거 외국인 감독이 선수 기량을 확인하고 상대팀 분석 등의 업무를 위해 해외에서 장기 체류하는 일은 많았지만 애초부터 대표팀 감독 수행 방식을 이렇게 해석한 경우는 없었다. 또한 계약 기간에서도 축구협회는 4년을 요구했지만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2년 계약 후 2년을 재계약하는 옵션을 요구했다. 한국에서 성과를 내고 2년 후 떠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세금 문제에 이어 이 부분까지 걸림돌이 되자 축구협회와 이용수 위원장은 판 마르베이크 감독으로부터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의 협상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우선 협상 과정을 지나치게 외부에 노출하면서 스스로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당초 3명의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적극적인 호감을 보이자 그쪽에 집중하고 나머지 대상자와의 협상은 중지시켰다. 결과적으로는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협상이 멈춘 사이 나머지 후보자는 다른 팀으로 떠났다. 협상 가능한 대상자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그의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대한축구협회가 그들에게 매달리자 어려운 조건을 계속 제시했다. 우리 패를 다 보여줘버린 셈이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외국인 감독 영입을 담당하던 가삼현 전무가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이후 협상을 맡을 국제통이 없어져 구멍이 뻥 뚫린 것이다.

당초 이용수 위원장과 기술위원회가 세운 차기 대표팀 감독의 자격 기준이 너무 이상적이고 구체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위원장은 취임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첫 임무인 외국인 감독 선임에 대한 계획을 밝히며 8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월드컵 예선과 본선, 각 대륙별 대회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한 경력 외에도 교육자로서의 자질, 연령, 영어 구사, 바로 계약 가능한 상태 등의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 위원장도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이 결렬된 후 브리핑에서 그 점을 인정했다. 그는 “이전보다 기준을 완화하고 폭넓은 후보와 접촉하겠다”며 변화된 자세를 보였다. 2~3명의 후보와 동시에 접촉해 협상을 진행하면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소개했다.

8월18일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 결렬에 대해 설명하는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 연합뉴스
레이카르트·핀토·산투스 등 대타 물망

유력 후보와의 협상이 결렬된 축구협회는 곧바로 다음 후보자와의 접촉에 나섰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2, 3번 후보와 우선 접촉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로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전 FC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프랭크 레이카르트, 코스타리카를 브라질월드컵 8강으로 이끈 콜롬비아 출신의 호르헤 루이스 핀토, 그리스 대표팀을 이끌었던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난두 산투스, 남아공월드컵에서 가나를 8강에 올렸던 세르비아의 밀로반 라예비치 등이다. 산투스 감독을 제외하고는 현재 모두 소속이 없어 쉽게 접촉할 수 있다. 이용수 위원장은 새로운 협상에 돌입하기에 앞서 “외국인 감독이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처럼 실력은 검증됐지만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면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에게 헌신과 열정을 요구하기 전에 축구협회가 충족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고려해봐야 한다. 유럽과 남미의 명감독이 아시아로 오면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는다. 역대 아시아로 건너왔던 유명 감독은 많지만 기회를 살려 반등에 성공한 사례는 사실상 히딩크 감독뿐이다. 특히 실패할 경우에는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무리라고 생각될 정도의 조건을 내건 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위험 부담이 큰 만큼 확실한 이익을 보장받겠다는 것을 진정성 부족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협상 과정에서 빠른 수읽기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협회가 쥔 패를 함부로 보여주며 매달리면 판 마르베이크 감독처럼 기대만 한껏 심어주다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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