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어디로 쏠릴지 ‘수 싸움’ 치열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9.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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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정국 이면에 숨은 새누리당 ‘비박 vs 친박’ 갈등

“세월호 정국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친박(親朴)계의 현주소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 친박 중진 의원은 “요즘 친박계의 모습은 지리멸렬 그 자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와 수습 과정이 언뜻 보면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대결로 귀결되는 것 같지만 그 아래에는 ‘비박(非朴) 대 친박’의 갈등도 숨어 있다는 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 타결이 유족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되고 재재(再再)협상 이야기까지 나오자 새누리당 내에선 야당과의 재협상은 절대 불가라는 강경파와 양보할 것은 해서 어서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나자는 온건파로 갈리고 있다. 그런데 강경파 다수는 친박계이고 온건파는 비박계여서 세월호 정국이 새누리당 내 계파 싸움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의원은 “친박계의 목표는 오로지 ‘청와대 절대 사수’ 아니냐. 다른 것은 몰라도 박근혜 대통령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게 ‘불통 정권’으로 프레임이 맞춰지면서 여당이 수세에 몰린 모습”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관계자는 이런 말도 했다.

8월20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재오 의원(맨 오른쪽)이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양보를 권유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솔직히 세월호 진상조사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단 하나 기소권과 수사권 문제다. 이것 때문에 국회가 마비되고 국정이 스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쇠고기 광우병 파동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통령이 여야가 풀 문제라고 잘라 말하면서, 4월에 보인 ‘박근혜의 눈물’이 희석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민생 법안을 국회에서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국회에서 해결할 일이 아닌가. 자가당착이다. 자칫 새누리당이 더 방기하다간 ‘무(無)정치당’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나서야” 비박 목소리 높아

그동안 새누리당 내 친박계는 세월호 정국에서 입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당내 소장파 등 온건파에서 “박 대통령이 단식 중인 김영오씨를 면담해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문회에 출석” “특별검사 추천권은 양보할 수도 있는 것” 등 청와대로서는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나오자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 쪽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급기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가 할 일을 대통령에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를 수 있는 나이임에도 엄마에게 떼쓰면서 골라달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야권을 겨눈 발언으로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청와대를 압박하는 야권뿐만 아니라 여당 내 비박계 모두를 망라한 의미로 해석된다.

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알려진 후 새정치연합이 곧바로 “대통령을 여왕처럼 모시는 습성”이라고 혹평했지만, 여당 내에서는 예전과 달리 이 최고위원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없었다. 지금 여당 내에서 청와대는 관심 밖인 것이다. 이는 김무성 대표 체제 이후 위상이 쪼그라든 새누리당 친박계 내부의 현주소와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는 지난 8월23일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드러났다. ‘언제까지 새정치연합의 자살골에만 기댈 것이냐’는 여권 책임론이 제기된 것이다.

정미경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특검 추천권을 야당과 유가족에게 모두 줘도 된다. 통곡 소리를 들어야 한다. 수사·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주는 것을 사법 체계 근간이 흔들린다고 두려워하는데 진상조사위를 율사 출신 법률 전문가로 구성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병국 의원은 연찬회 이튿날 자유토론에서 “김기춘 실장이 이미 수차례 국회에 나왔기 때문에 (곧 있을 청문회에) 더는 불러서 할 게 없다고 하는데 왜 10번은 못 나오느냐. 박 대통령께서도 유가족을 찾아가 만나고, 협상도 당이 직접 유가족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개석상에서 박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사실상 청와대를 압박한 것이다. 황영철 의원은 아예 “매듭을 풀기 위해 당 대표와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는 일정을 속히 잡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여당 해결론’ ‘양보론’을 주장한 이들은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박 그룹이다. 이들은 모두 김 대표와 가깝다는 공통점도 있다. ‘비박계 행동대장’으로 불리는 김용태 의원은 이보다 앞선 8월22일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박 대통령이 유민 아빠(김영오)를 만나서 설득해야 한다”고 선방을 날린 바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박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라고 밝힌 김무성 대표가 해결사로 나서 여당과 직접 타협하도록 길을 터준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 정치권 정황 수집을 주로 하는 사정기관의 정보 부서 관계자는 최근 이런 말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친박이 청와대만큼은 지키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정현 최고위원 말고는 나서는 이가 없다. 이 최고위원 발언 이후 친박이 연쇄적으로 ‘재협상은 없다’는 발언을 이어갔다면 당내에서 토론도 이어지고 계파 간 결집 양상도 생겼을 테지만, 친박이 완전히 그로기 상태다. 당내 최대 계파였던 친박 의원들이 손가락 열 개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또 정보를 수집해보면 새누리당 의원들 대다수가 세월호 이야기를 식상해한다. 비박 진영의 말처럼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결론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 이튿날인 8월23일 158명의 새누리당 의원 중 자유토론에 참석한 숫자가 50명 안팎인 것을 두고서도 각종 말이 나오고 있다. 이날 김 대표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은 전부 나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는 참여고, 국회는 논의인데 정기국회를 앞두고 연찬회를 성의 없이 대하는 건 조직원·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불쾌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당내 일각에선 ‘나쁜 사람들’이 결국 친박계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보고 곧 김 대표가 계파 해체에 나설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윤상현 전 사무총장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김 대표 체제의 첫 연찬회에 빠진 것은 치열했던 7·14 전당대회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엿보게 한다. 또 홍문종 전 사무총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유기준 전 최고위원 등 친박계가 예전 같은 힘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어 지금이 적기라는 말도 있다. ‘모두 헤쳐 김무성 앞으로’ 분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연찬회에 100명 가까운 의원이 빠진 것을 두고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이 숫자가 현재 새누리당의 중립 성향 의원들, 즉 정국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설지 저쪽에 설지 판단할 사람들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친박계만 빠졌다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하태경 의원은 “김 대표의 혁신은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가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타지 말 것, 술을 자제할 것 등을 이야기하자 당 대표급 혁신안은 아니라는 직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당 대표이긴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는 보지 않는 당내 다수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튿날 연찬회에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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