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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간데없고 얼음물 ‘샤워 쇼’ 만 남나

‘아이스버킷 챌린지’, 유희문화 변질…난치병 환자·의료 복지 관심 가져야

하재근│대중문화 평론가 ㅣ | 승인 2014.09.02(Tue) 15: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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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일 무렵 이 땅에 얼음물 샤워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에 건너온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이다. 원래 미국 북부 지역에 찬물에 입수하는 ‘콜드 워터 챌린지’라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로 바뀌고, 여기에 루게릭병 환자가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유행하는 기부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영상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리며 세 명을 지목하면, 지목당한 사람은 자신도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그 영상을 SNS에 올리거나 미국 루게릭병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하는 이벤트다.

많은 화제도 낳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콜롬비아 대표팀 수니가에게 허리를 찍혀 월드컵을 하차한 브라질 대표팀 네이마르가 아이스버킷 챌린지 다음 주자로 수니가를 지목했고, 수니가가 흔쾌히 응하면서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한때 브라질 갱이 수니가에게 살해 위협을 했고, 콜롬비아 갱이 브라질 선수 살해 위협으로 맞서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으나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통해 기분 좋게 문제가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한 저명인사들. 왼쪽부터 빌 게이츠, 마사 스튜어트, 마크 저커버그. ⓒ 페이스북
한국에선 유재석을 비롯해 거의 모든 유명인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밴드 ‘장미여관’의 육중완은 세 번이나 지목당해 얼음물을 세 번 뒤집어썼다. 류현진·추신수·손흥민 등 해외파 선수도 동참했다. 유명인들 사이에 얼음물 샤워가 들불처럼 번져가며 일종의 ‘스타 인증 의례’로 자리 잡았다.

얼음물 뒤집어쓴 빌 게이츠의 파격

한국에서 처음 화제가 됐던 것은 빌 게이츠의 영상이었다. 빌 게이츠는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에게 지목받았는데 자신이 직접 얼음물을 쏟아내는 기구를 설계하고 만들어 행사에 참여했다. 이 영상이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이유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서 사랑받은 이유와 같다. 한국인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미국 최고 부자 빌 게이츠에게서 소탈하고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는 지도층의 모습을 봤다.

한국인은 지도층이 권위주의적이고 약자의 고통에 무관심하다고 느낀다. 재벌은 심지어 약자의 밥그릇까지 뺏으려 드는 무뢰한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자손에게 회사를 하나씩 차려주며 중소기업의 영역을 차례로 접수한다든지, 마트와 프랜차이즈로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한다든지, 온갖 ‘갑질’로 영세 사업자를 울린다든지, 승무원이나 주차직원 등 약자를 구타하기까지 한 사건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그런 인식이 굳어졌다.

이럴 때 일체의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 곁으로 온 교황은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미국 최고 부자가 기부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서로 지목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도 그랬다. 당시 저커버그와 빌 게이츠에 이어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등이 동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이를 보며 한국의 네티즌은 ‘왜 우리 지도층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라며 한탄했다.

   
배우 클라라가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하고 있다. ⓒ 클라라 인스타그램
아이스버킷 챌린지 열풍의 그림자

처음엔 지도층의 기부문화로 화제가 됐던 이 이벤트는 이내 미국 스타가 일제히 즐기는 ‘최신 유행’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크루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미국의 유행엔 극히 민감한 한국인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국내 스타가 돌아가면서 얼음물을 뒤집어쓰자 매체와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지며 2014년 최대의 이벤트로 떠올랐다.

애초 미국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환영받은 것은 엄숙한 기부문화에 인터넷 유희문화를 접목시킨 신선함 때문이었다. 기부가 SNS를 통한 소통 유희라는 옷을 입으면서 더욱 풍성해졌다. 하지만 너무 재밌어서 문제가 됐다. 광풍이 불면서 기부라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유희성이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인의 ‘얼음물 샤워 집단 SNS 인증’은 한국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SNS를 매개로 돌아가면서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행위가 화제가 되자 정확히 어디에 기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덮어놓고 얼음물 인증만 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언론의 태도도 이런 흐름을 부채질했다. 예를 들어 미국 오바마 대통령 관련 보도가 그랬다. 오바마는 얼음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기부만 했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스버킷 챌린지 운동에 불참한 것이 아니다. 애초 이 이벤트는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100달러를 기부하는’ 운동이었고 그 중심에 있는 건 얼음물이 아닌 기부였다. 따라서 기부만 해도 참여한 것이 맞다. 그런데 언론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를 거부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기부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얼음물 뒤집어쓰기라는 자극적인 행위에만 관심이 쏠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난치병 환자들을 어떻게 방치하고 있는지,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우리 국가 의료보험 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사각지대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서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의료복지의 수준일 높일 것인지, 기부와 사회적 책임의식은 어떻게 높여갈 것인지, 이런 논점은 사라지고 오직 누가 얼음물을 뒤집어썼으며 누구를 지목했는가에만 보도의 초점이 맞춰졌다.

 얼음물에 이렇게 관심이 쏠리니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이 얼음물에 달려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관심에 가장 목마른 연예인과 정치인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게 됐다. 전효성의 경우엔 하얀 윗옷에 검은 속옷을 입고 물을 뒤집어써 속이 다 비치도록 해, 미리 계획한 섹시 이벤트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언론은 전효성의 ‘섹시한 자태’를 부각시켰고 전효성과 클라라의 얼음물 샤워 중 어느 쪽이 섹시한지를 비교했다. 정치인은 자신이 어느 행사에서 얼음물을 뒤집어쓸 건지 미리 예고하며 이미지 세탁용 샤워를 하기도 하고, 대전 서구 의회의 경우엔 원 구성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써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소동 속에 원래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희박해져갔다.

빌 게이츠의 얼음물 샤워가 화제가 된 것은 그가 원래부터 난치병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천문학적인 기부를 해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지도층 중에 이런 관심을 평소부터 보여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 미국 지도층의 얼음물에 경탄했던 반응이 한국 지도층이 참여하면서 냉소로 바뀌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난 여론도 커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 운동의 긍정적 의미까지 부정하는 건 과하다. 서구에 비해 기부에 인색한 한국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기부문화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그 본뜻을 살리고 이것이 더욱 큰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발전하도록 언론이 여론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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