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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들이 ‘이방인’의 설움 날렸다

재일교포 럭비부 다룬 <60만번의 트라이>의 박사유 감독

김진령 기자 ㅣ jy@sisapress.com | 승인 2014.09.02(Tue) 15: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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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60만번의 트라이>는 운동에 꿈을 건 고등학교 럭비부 이야기다. 이 학교 학생은 모두 400명, 이 중 남학생이 120명이다. 오사카의 작은 지역에 있는 이 학교는 일본 내 이방인 커뮤니티다. 스카우트한 선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이중 삼중의 한계를 딛고 이 소년들이 2010년과 2011년 연속 전 일본 고교 럭비대회에서 4강에 들었다. 2011년 본선 토너먼트에서 오사카의 하나조노 경기장 한편에 교토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온 교포 응원단이 ‘60만 동포의 소원’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운동장에서 뛰다가 이를 본 소년들은 “전율을 느꼈다”고 말한다. 제목 <60만번의 트라이>는 60만 재일동포의 마음인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박사유 감독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나온 후 일본에서 방송 뉴스리포터 일을 했다. 일본에 강제 징용됐다가 교토의 군비행장 옆에 ‘무허가 촌락’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재일교포 1, 2세들이 땅주인인 전범 기업 닛산의 부동산 매각으로 강제 퇴거 위기에 놓였던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바로 그가 전한 뉴스다. 우토로 마을에서 맺어진 동포와의 인연은 <60만번의 트라이>라는 극장용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으로 이어졌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 (주)인디스토리
2007년 암이 발병한 박사유 감독은 우토로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딸같이 보살핀 덕에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그러던 2010년 어느 날 동포의 전화를 받았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 난리가 났다’는 것. 그는 발병 전인 2007년 오사카조고의 운동장 일부가 시 소유라고 회수하려는 히가시오사카 시의 움직임에 맞서는 동포의 이야기를 리포트한 적이 있다. 그 인연을 기억하고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 운동장에서 연습한 오사카조고의 럭비부가 전 일본 대회에서 4강에 들었다며 취재를 하러 오라는 전화였다.

지구에 없는 조선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이니치 

하나조노 경기장 안에 들어선 그는 결승 진출이 좌절된 순간 동포 응원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는 동포들에게 전율을 느꼈다. “이 광경을 나 혼자 보기는 아깝다”고 생각한 그는 2년 동안 쫓아다녔고 그 결과물이 <60만번의 트라이>다. 암 투병 중이라 몸이 온전치 않은 그에게 우토로 마을 취재에서 만난 재일동포 3세 박돈사(공동감독)가 합류했고 그 덕에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줄거리만 놓고 보면 ‘작고 보잘것없는 커뮤니티의 청춘들이 마음을 모아 어려움을 겪고 성공을 한다’는 일본의 흔한 청춘영화 공식과 비슷하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게 있다면 재일동포 또는 자이니치(재일)라고 불리는 한인 3세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인 또는 조총련계라고 불리고, 2차대전 ‘패전’을 ‘종전’이라고 부르는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필요에 의해 노예처럼 강제 징집해온 이들의 후손을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쯤으로 여긴다. 조선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대개 이들의 부모가 끌려왔던 당시의 ‘조선’이라는 지구상에는 없는 나라를 국적으로 갖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사실상 무국적 상태를 유지하며 우리말을 고집하고, 심지어 북한에 수학여행을 보내는 이들이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박사유 감독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고향을 물어보면 ‘제주도 서귀포 몇 번지’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아버지가 이들에게 고향을 잊지 말라고 외우게 하는 것이다. 일본은 패전 직후 한국에서 온 동포들의 국적을 서류상 ‘내선인’에서 ‘조선인’으로 변경했다. 나중에 한·일 수교가 됐지만 북·일은 수교가 안 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에서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여러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동포들 중 일부는 ‘통일되면 국적을 바꾸겠다’며 여태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지금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제 강점기 이전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백성이다.”

영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 친선대회에 한국과 호주의 고등학생 팀도 참가했다. 오사카조고 선수가 호주 선수와 대화를 하던 중 “나는 코리안”이라고 말하자 그 옆에 있던 한국 선수가 “아니다. 저 친구는 코리안 아니다. 내가 오리지널 코리안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오사카조고 학생은 “내가 왜 코리안이 아니냐”며 크게 상심한다.

박사유 감독은 일본 로드쇼 중에 만난 재일교포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친구는 일본 학교를 나왔지만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다니다 한국에 유학을 가서 정말 친하다고 생각한 단짝 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한국 친구에게 자신을 ‘내 외국인 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을 듣고는 ‘나는 이곳에서도 외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크게 좌절했다고 한다.”

영화는 2011년 1월 4강전에서 끝난다. 고3이었던 아이들은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전국대회 4강에 들 만큼 실력이 있기에 호세이 대학 등 명문대 럭비팀 주전으로 뽑혀갔고, 일본 대표팀에서 활동했고, 이제는 대학을 졸업해 실업팀으로 갔다.

한국 선수의 ‘오리지널 코리안’이라는 말에 마음을 다쳤던 상호는 럭비선수로 뛰면서도 4년 동안 좋은 학점을 받아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상사에 취직했고, 도쿄에서 이 영화가 상영될 때 그 회사 중역들이 이 영화를 보러왔다. 유인은 데이쿄 대학에 입학한 그해부터 4년 연속 대학 럭비대회에서 우승하고 대표팀에도 뽑혀 일본 럭비계의 스타가 됐다. 주장 관태도 대학 졸업 후 명문 실업팀에 입단했다. 무수히 많은 대학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용휘는 특이하게 선배가 아무도 없었던 명문 호세이 대학으로 진학해 팀에서 부주장을 맡았다. 용휘는 여전히 자이니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일본 동료를 상대로 ‘왜 내 이름이 용휘인지, 자이니치가 뭔지’ 지치지 않고 설명하며 자신의 신념대로 ‘참된 조선인으로 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60만번의 트라이>의 박사유(왼쪽)·박돈사 공동감독이 일본 로드쇼에 참석했다. ⓒ (주)인디스토리
“서울과 평양 다 아는 자이니치”

영화 주인공인 오사카조고 럭비부 3학년 학생은 이제 사회에 진출해 일본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그들도 결혼을 할 것이고 자이니치는 4세대, 5세대에 이를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선택에 시달릴 것이다. 재일교포 3세인 손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1990년 34세의 나이에 국적을 바꾼 이유도 ‘조선’이라는 국적으로는 해외 출장을 다니기에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신 손마사요시는 일본 국적인 아내에게 성을 손(孫)으로 개명하게 한 뒤, 외국인인 자신이 귀화하면서 아내의 성을 따라 손으로 바꾸는 방법을 통해 성을 지켜냈다.

박 감독은 “나는 이분들, 자이니치가 통일의 인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울과 평양을 다 알고, 강점기 이전 분단 없던 시절의 조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영화를 보고 그걸 느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관태 친구들이 졸업하는 것을 끝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은 박 감독은 며칠 후인 2011년 3월6일 진도 9.0의 동일본 대지진이 나자 다시 카메라를 들고 지진 발생 지역인 미야기 현 오나가와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를 찾아갔다. 지진 발생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의 소식과 안위가 걱정돼서 나선 것이다. 자이니치에 대한 애정과 연대감. 그가 그곳에서 자이니치와 함께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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