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청와대 치며 ‘세월호’ 뚫고 가나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9.1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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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정국에서 김기춘 실장 정면 비판 등 각 세우기

해마다 긴 연휴가 낀 추석 명절은 하반기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다. 평소 반목하던 여야 정치권도 성난 민심을 마주해야 하는 명절을 즈음해서는 정치적 해빙기를 도모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2014년 하반기 정국은 여전히 암울하다. 세월호 정국에 갇힌 채 여야 정치권 모두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야 모두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7·30 재보선 참패 후 등장한 ‘박영선 비대위 체제’로 기사회생을 노렸지만, 여야 합의안 번복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을 내려놓고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의 중도 보수 인사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지만, 당내 반발만 불러온 꼴이 됐다. 박 원내대표의 ‘이상돈 영입 작전’은 고질적인 당내 계파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당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남의 집 불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야당의 두 차례 합의 파기로 당장 책임론에서 비껴서 있는 듯 보이지만,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새누리당의 정치력에 대한 회의적 여론도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민생 정치’로 야당을 압박하며 세월호 정국을 뚫고 가려던 새누리당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청와대의 강경 기류에 밀리며 야당과의 타협점을 찾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야의 격렬한 대치 국면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김무성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논란과 관련해 원칙론을 고수해왔다. 김 대표는 8월29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세월호 특별법을 여당이) 백번 양보를 하다 보면 (국민이)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고 양보 불가론을 고수했다.

“김무성-청와대, 짧았던 허니문 끝났다”

 하지만 좀체 여야의 경색 국면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당내에서 김 대표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병국 의원은 9월11일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김 대표도 (세월호 정국을 풀기 위해) 나서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당 대표인 김 대표가 원내대표인 박영선 대표를 만나기가 어렵다면 야당의 중진 의원들을 다방면으로 접촉해서 분위기를 좀 만들어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김 대표는 9월15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민생 법안 직권상정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요청하는 등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의 구시대 정치 혁파를 이미지 메이킹해온 김 대표가 자칫 구태 정치로 비칠 수 있는 법안 단독 처리가 불러올 역풍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표가 “이번 주말 동안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기 바란다”는 여지를 남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청와대 및 당내 친박(親朴)계와의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야당과의 대화 접점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김 대표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이러한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대표는 9월7일자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공격했다. 그는 “야당이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계속 겨냥하고 있다”는 질문에 “그런 유언비어가 퍼진 건 국회에서 답변을 잘못한 김 실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사고 당일 분 단위로 이렇게 움직였다’고 밝혔으면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문제가 커진 것 아니냐”면서 “비서실장이 열 번이라도 국회에 나와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 인사들을 겨냥해 ‘답답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과거 수시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해온 것과 달리, 김 대표는 지난 7월14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청와대와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대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청와대와의 반목을 피하려 할 것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민심 이반이 시작되는 시기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격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추석 명절을 즈음해 김기춘 실장을 꼬집어 강한 어조로 공격하고 나선 일은 예사롭지 않다. 새누리당 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비주류계 인사는 “김 대표는 정치적 셈이 굉장히 빠른 사람이다. 언제 들고 나야 할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김 대표가 마음먹고 김 실장을 공격한 것은 즉흥적인 발언이 아닐 것이다. 김 대표와 청와대가 짧게나마 이어오던 허니문은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인 9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민 한가위 상, 세월호 가족과 함께 음식 나누기’ 행사에서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말을 듣고 있다. 가운데는 백기완씨. ⓒ 연합뉴스
세월호 대치 정국 풀 열쇠 쥐고 있어

김 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각을 세우는 것에 대해 철도부품 납품 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 대표가 당권 경쟁에 나서면서 일성으로 내뱉으며 강조한 말이 적폐 청산과 정치 혁신이었다.

하지만 자당 소속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로 ‘방탄 국회’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김 대표는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체포동의안 부결 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뿐만 아니라 김 대표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도 하락세를 보인 것은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것이라는 점은 기정사실화돼 있고, 다만 시간이 문제였다. 그런데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그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대내외적으로 체면을 구긴 상태에서 김 대표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청와대를 압박하며 적극적으로 세월호 정국의 해법을 모색해나갈 것이라는 예상은 그의 향후 정치적 구상과 새누리당의 상황적인 측면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당권 경쟁에 나서면서 ‘보수 혁신’을 위한 혁신위원회 출범에 공을 들여왔지만 세월호 정국으로 답보 상태에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이미 당내에서 장악력을 확고히 해 청와대와 일정 정도 마찰을 빚더라도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세월호 대치 정국을 풀 수 있는 열쇠는 김 대표에게 쥐어져 있다는 점에 이론은 없어 보인다. 김 대표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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