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하태경이 ‘찌질이 짓’이라 했을까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09.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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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폭식 투쟁’으로 보수층도 등 돌리는 분위기 확산

누군가는 투쟁이라, 누군가는 퍼포먼스라 부르는 일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6일 벌어졌다. 극우 성향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일베)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회원들이 단식 중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 곁에서 먹거리를 펼친 것이다. 일명 ‘폭식 투쟁’. 자유청년연합과 일베 회원들은 ‘폭식 투쟁’이 단순한 도시락 나들이로 일종의 퍼포먼스임을 고지했다. 보수 청년들이 지닌 표현의 자유를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보수층에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은 “이런 행동 양식 같은 경우는 몰상식한 부분이 있다”며 “세월호 유족들이 강자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아니다. 조롱도 자제가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9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번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찢더니 이제는 단식 현장 앞에서 식사 퍼포먼스냐”며 “제발 찌질이 짓 좀 그만해라. 보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라며 질타했다. 그러나 9월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베 등 20대 우파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 이제 막 우파 운동이 형성돼 조악하고 유치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안다”고 언급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하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9월12일 전화통화에서는 다소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일베의 행동) 방식이 잘못됐다. 침묵 시위를 한다거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적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어야 한다”며 일베들의 ‘폭식 투쟁’을 비판했다. “단식을 하고 있는 유족들이 식사를 할 수 있게 자극하는 과정이었다”는 일부 일베의 주장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2013년 5월18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고등학생 김시원군(18)이 5·18 희생자를 비하한 일베 회원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 연합뉴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도 일침을 놓았다. “한 단체가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돼야 한다. 그러나 일베의 폭식 퍼포먼스가 민주적 시민문화를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서로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가진 집단들의 극단적 대립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갈등과 혼란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라면 필요 없는 채널은 없다”면서도 “개인 행위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타인을 목표로 삼아 명예훼손 등의 범죄를 유발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인정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일베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일베 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일베충’(일베와 벌레의 합성어)이나 좋아하지 정상인 보수들은 기겁한다. 이럴수록 좌익만 늘어난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 글에는 ‘개소리 한다’ ‘거짓 단식을 국민들에게 알린다는 관점’이라는 비난의 댓글들이 달렸다.

일베는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청년 논객 박가분씨가 쓴 <일베의 사상>에 따르면 일베는 원래 ‘디시인사이드(디씨)’라는 커뮤니티의 ‘야구 갤러리’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정치사회 갤러리’ 등지에서 만들어진 유머 자료를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후일 이 ‘갤러리’의 이용자들이 일베에 유입되면서 2010년 별개의 인터넷 커뮤니티로 독립한 것이다. 일베에는 정치·사회·잡담·개드립·게임·고민상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게시판이 있다.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물은 ‘일간 베스트’나 ‘정치 일간 베스트’ 게시판으로 옮겨진다.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 대표는 방송에서 “일베의 문제는 사이트 생성 배경 자체에 이유가 있다. 디씨에서 지워진 게시물을 모아놓은 것이고, 그 게시물들의 90%는 음란물이었다. 게시글이 지워지기 전에 이걸 가져온 일종의 미러 사이트(다른 사이트의 정보를 그대로 복사해 관리하는 사이트)”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일베를 단순한 미러 사이트로 볼 수는 없다. 동시 접속자 수가 2만명을 뛰어넘는 규모인 데다 정보성 글도 종종 등장한다. 속보로 뜬 뉴스, 여행 정보, 자동차·항공기 정보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함께 풀어쓴 제법 성의 있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다.

9월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부 일베 회원과 자유청년연합 회원들이 식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뉴시스
여성 비하·성적 모욕 등 문제 일으켜 

스스로를 ‘애국보수’라 자처하는 회원들이 포진해 있는 일베.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 회원들은 공격적이고 과격한 언행을 보이며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최근에 일어났던 일베의 사건을 들여다보자.

2012년 12월 한 일베 회원이 아이돌 그룹인 미스에이 수지의 입간판에 성행위를 암시하는 행동을 한 것을 인증하는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다. 소속사는 고소로 대응했다가 해당 회원이 용서를 구하자 취하했다. 같은 해 당시 억대 매출을 올리던 쇼핑몰 운영자인 윤선경씨가 일베 회원들을 고소했다. 자신의 비키니를 입은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하고 성적으로 수치심을 유발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13년 2월엔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였던 임윤택씨가 사망한 후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이 일베 게시판에 올라왔다. 한 일베 회원은 임씨의 아내인 이혜림씨의 사진을 올리고 ‘남편이 떠났습니다.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또 다른 회원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니가 신입이냐? 노래 한 곡 뽑아봐라’라는 글을 올렸다. 일베 내부에서도 ‘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초등학교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회원이 어린 여학생들을 ‘로린이’(로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 로리타는 나이 든 남자들에게 성적 매력이 있는 조숙한 소녀를 뜻함)라고 언급해 논란이 됐다. 그는 이전에도 키스방·노래방 도우미 등과 관련된 글을 올리며 성매매를 ‘인증’한 적이 있다. 결국 해당 회원이 경북도교육청에 임용 포기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관심 받기 위해 허위 내용 게재하기도

일베의 전라도 비하는 인격 살인이라 볼 수 있을 만큼 병적이다. 패륜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5월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일베에서 확산됐다. 한 일베 회원은 5·18 희생자들의 관을 ‘택배’에 비유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진열되어 있는 홍어’라고 표현했고, 희생자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사진에 택배 운송장을 합성해 올리며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 왔다”라는 내용을 게재했다. 글을 올린 일베 회원(남·20)은 지난 6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름도, 얼굴도 보이지 않는 이 사이트에서 일베 회원들이 글을 올리도록 하는 동력은 관심과 추천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베 회원(남·28)은 “성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글을 올리면 조회 수가 많이 올라간다. 재미를 위해 거짓말로 글을 올린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방송사 프로그램이 보도한 ‘일베 회원 젖병 꼭지 인증샷’ 논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유아용품을 만드는 회사인 코모토모의 협력업체 직원이 젖병 꼭지 사진과 함께 ‘여자 젖이 사무치게 그리울 땐 가끔 빨기도 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해당 직원 역시 주목을 받기 위해 내용을 날조했다고 해명했다. 세월호 참사 다음 날 세월호 희생자들의 ‘집단 성관계’를 거론하며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올린 정 아무개씨(남·20대)는 8월 말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정씨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글을 썼다”고 진술했다.


일베만의 은어 ‘좌좀’ ‘까보전’ ‘로린이’  


일베에서 사용되는 ‘일베용 이미지’가 언론에 인용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졌다. 포털에서 검색을 하면 자주 인용되고 링크되는 글에 가중치를 두고 노출 순위가 정해진다. 이용률이 높은 일베용 이미지가 상위에 노출되면서 인용되는 사례도 늘어나는 것이다.

일베 게시판 안에서는 일베만의 용어를 쓰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무언가를 탄원하거나 부탁한다는 의미로 쓰는 ‘앙망하다’, 좌파 좀비를 뜻하는 ‘좌좀’, 일베 회원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단어인 ‘씹선비’와 같은 말들은 일베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소하다. 제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ㅅㅌㅊ’ ‘ㅍㅌㅊ’는 각각 ‘상타취’ ‘평타취’를 뜻한다. 평타란 기본 아이템을 사용해서 나오는 평균타로 ‘보통’을 의미한다. 상타취는 평균 이상이라는 뜻이다. 전라도를 비하하는 문화 역시 그들의 용어에 반영돼 있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을 말하고, ‘까보전’은 ‘까놓고 보니 전라도’의 준말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에 빗대 ‘슨상님’이라고 칭한다. 감탄사는 ‘오오미’ ‘지리겄소’라는 전라도 사투리를 희화한 단어를 쓴다. 

‘일베용 용어’로 인해 아이돌 그룹 시크릿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 크레용팝의 ‘노무노무’ 발언 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민주화’는 일베 게시글에 대한 반대·비추천을 의미한다. 진보적 주장에 공감하거나 보수적 정치 농담을 용인하지 못할 때 쓰기도 한다. ‘노무노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되곤 했다. <일베의 사상>을 펴낸 박가분씨는 이러한 일베의 은어와 말투가 일베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비하하고 싶은 대상을 표현하는 것과 단어의 변형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일베를 이용하는 회원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일게이(일간 베스트 게시판 이용자)’. 그중 실제 오프라인에서 행동하는 ‘일게이’들을 ‘행게이’라 부른다. 이번 ‘폭식 투쟁’은 ‘행게이’들의 첫 번째 단체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일베가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왔다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며 “폭식 투쟁은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다. (일베 회원들이) 정확한 자각 없이 순수한 정치 혐오만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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