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면 이 비극의 의미는 없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9.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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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 <마음>에서 죽음의 의미 통찰한 강상중 교수

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 대학 총장(64)은 세간의 기준으로 치면 성공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지만 명문 와세다 대학을 나오고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 대학 교수가 됐다. 한국 국적으로 도쿄 대학 교수와 종합대학 총장이 된 이는 그가 처음이다.

주류 사회의 성공 모델 같은 길을 걸어온 강 총장의 눈은 아이러니하게도 늘 마이너리티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태생 자체가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였고,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이름 자체를 ‘강상중’으로 개명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내걸었다.

그가 지난해 펴낸 <마음>이라는 소설은 일본에서 30만부 이상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치 관련 서적은 여러 권 냈지만 <마음>은 그의 첫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강 총장이 ‘죽음’이란 것에 천착하게 된 것은 2010년 아들이 극도의 신경증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면서 하루아침에 2만명 가까운 사람이 사라진 게 계기가 됐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고 2주일 뒤 소마라는 곳에 갔다. 아사히TV에 리포터 자격으로 현장에 가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난 60이 넘었고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없었다. 후쿠시마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소마에 모여 있었다. 도로는 완전히 끊겼고 방사능 수치는 높았다.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시체 상태였다. 방사능이란 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로 사람들이 떨고 있었다. 구조대가 빨리 왔더라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방사능 때문에 구조대가 들어가지 못했고 그래서 돌아가신 분이 많다. 이 소설은 그때의 경험이 중요한 기반이 됐다.”

한국, 정신적 선진 사회로 갈지 분기점 놓여

소설 <마음>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은 ‘대학교수 강상중’이고 또 한 명은 대지진 때 바다에서 시신 수습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니시야마 나우히로라는 대학생이다. 니시야마는 친한 친구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고, 대지진 수습 활동을 하면서 목격한 망가진 시신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강 교수 역시 10여 년 전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겪었다. 말하자면 그와 그의 주변을 회오리바람처럼 강타하고 지나간 2010년과 2011년의 죽음과 재앙에 대한 통찰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내 아들의 죽음을 다루는 부분도 있기에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하지 않으면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소설은 개인적인 것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그는 소설에서 일본 사회의 혼란을 짚어냈다.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통해 일본의 공권력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봤다. 후쿠시마의 많은 사람이 일본의 공권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과 삶을 개인이 생각해야 하는 계기가 됐다. 나도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300여 명의 학생이 살아 있는 채로 물에 빠져서 방치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유해를 대면한 부모는 대체 어떤 마음일까.”

공권력의 무능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9·11 테러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세월호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정치학자로서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미국은 9·11 이후 복수를 택했다. 9·11 이후 미국은 이분법적인 사고로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테러리스트 편인지 미국 편인지 확실히 하라고 겁박했다. 그 사건이 왜 미국 내에서 일어났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외부에 문제를 전가시켰고, 그 결과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중동은 진흙탕이 됐다. 일본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치유’ 방법으로 도쿄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인 망각’을 택했다. 아베 총리는 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완전히 컨트롤된다고 말했는데 이건 허구다. 후쿠시마 출신들은 이 말을 듣고 절망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이후 정치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으로는 첫 번째로 광주가 있다. 광주의 위령탑 같은 세월호 기념탑을 세울까? 기념탑을 세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유병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 비극의 의미는 전혀 반영이 안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분단 상황을 이유로 안전과 안심의 문제가 안보의 관점에서 소비됐다. 한국이 중진국 이상임에도 안전이나 리스크 문제를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안전은 결국 생명 존중의 문제다. 그게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한국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정신적인 선진 사회가 될 것인지의 분기점에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오로지 경제 성장만 생각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올 것이다.”

글을 쓴다는 의미는 내면의 상처를 헤집고 사안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치유를 경험할 수도 있다. 자식을 먼저 잃은 지독한 슬픔이 이번 소설 작업으로 치유가 됐을까. “전혀 치유되지 않았다. 치유가 되고 안 되고 간에 그 이전에 먼저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게 중요했다.”

소설 주인공 대학생은 실제 모델이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졸업생으로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하루 10구 정도의 유해를 인양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유해 인양은 처참한 광경을 겪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고기 밥이 되고 시신이 반만 남는 경우도 있다. 그걸 알고서도 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 친구도 그 일을 하면서 저항감을 느끼고 처음에는 시신을 만지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신을 인양했을 때 유가족들이 ‘수고했다’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굉장히 많은 것들이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그 친구는 그 일이 끝나고 결국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더 감동을 받은 것은 그가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나는 이것을 야구로 치유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 부분이다. ‘정말 죽은 분들에게 죄송하기 때문’이라고. 이 청년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형태의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세월호 사건 수습에 나선 인양자들과 유가족의 정신적인 상처 치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멈춰 서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그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필요한 위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대지진 현장에 갔을 때 쓰나미 1m 차이로 사상자 수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린 다 살았는데, 저 집은 왜 다 죽었나’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월호의 경우에도 선실에 따라서 살아남은 자도, 죽은 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책에서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가라고 끊임없이 되물었다. 이런 것에 대한 답은 없기 마련이다. 겨우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나빴다’ 정도로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상실감은 메워질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죽음에 대해 쇼크를 받으면서도 망각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이 ‘빨리 잊어라’다. 하지만 유족들은 그 비극을 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죽음을 망각하는 게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한국이나 일본은 앞으로 가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의 징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 멈춰 서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그에게 세월호 유족에게 위로가 될 글을 부탁했다. 그는 14자를 썼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다.

‘생사의 인연은 끝이 없고 세상은 미치고 어리석구나(生死因緣無了期 色相世界現狂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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