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일수록 패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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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이 추석 맞아 임직원에게 보낸 옥중 서신 입수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재계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 중 몇몇은 2014년 새해를 영어(囹圄)의 몸으로 맞이해야 했고, 향후 수년간 경영 일선 복귀가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는 이들도 있다. 형이 확정됐을 경우, 과거처럼 대통령 특별사면을 기대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특별사면을 단행했지만, 보란 듯이 재벌 총수들은 제외시켰다. 남은 방법은 가석방인데, 사회 분위기상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SUPEX추구협의회 의장 등을 중심으로…”

이들 재벌 총수는 6.56㎡(1.9평) 규모의 독거방에서 수감 생활을 한다. 매트리스·TV·책상·변기·세면대 등 필수품만 갖춰진 독거방에서 아침 6시 기상, 오후 9시 취침이라는 제한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총수들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까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수감 중인 총수들은 변호사 접견이나 특별면회를 통해 ‘옥중 경영’을 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연합뉴스이재현 CJ그룹 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옥중에서 지난 9월3일 추석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장문의 서신을 보냈다. 최 회장은 450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월 법정 구속된 후, 지난 2월27일 대법원에서 4년형의 실형이 확정됐다. 지금까지 약 1년 8개월여의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재벌 총수로서는 역대 최장기 기록이다.  

최태원 회장은 옥중 서신에서 “사실 그동안 몇 번이고 구성원 여러분께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제 개인적인 일로 구성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는 미안함 때문에 펜을 드는 것이 계속 망설여졌습니다. 그럼에도 지나간 일은 결국 제가 책임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이고…”라고 밝혔다. 이어 최 회장은 “신문 지상이나 면회 오는 분들을 통해서 나라의 경제 상황이나 그룹의 경영 환경에 대한 얘기를 접하고 나면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경영 환경이 좋지 못해 하이닉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상반기에 우려할 만한 실적을 기록했고, 이에 구성원들이 악전고투하고 계시다는 것도 전해 들었습니다”며 그룹 경영 상태에 대한 걱정을 이어나갔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SK㈜·SK하이닉스·SK이노베이션·SKC&C 등 4개 계열사 등기임원으로서 받은 보수 301억원 중 187억원어치의 SKC&C 주식을 사회적 기업 등에 증여하기도 했다.

SK그룹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3조8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지만, 실적이 좋았던 SK하이닉스를 제외할 경우,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1조7400억원에 그쳤다. 최 회장은 편지에서 경영난을 타개할 방안으로 “이럴 때일수록 패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UPEX추구협의회 의장과 각 사 CEO를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전진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 ‘전화위복’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며 임직원들의 단결을 강조했다.

SK그룹은 김창근 의장이 이끄는 SUPEX추구협의회에 주요 계열사가 분담하는 협의회 운영비를 435억원에서 465억원으로 7.85% 늘리고, 협의회 산하 6개 위원회의 기능도 대폭 강화하면서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옥중 서신 마지막에서 최 회장은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터전을 가꾸고 행복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 곳에 있습니다만 미력이나마 여러분을 응원하고 고민해나가겠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이 임직원에게 보낸 추석 메시지. ⓒ 연합뉴스
이재현 회장 병세 악화로 CJ그룹 초비상

최근 SK그룹의 지주사인 SK㈜와 SKC&C가 합병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SKC&C는 SK㈜ 지분 31.82%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SKC&C의 최대주주가 바로 최태원 회장(33.10%)이다. 최 회장이 그동안 SK㈜ 지분 0.02%만으로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던 것 또한 이 때문이다.

그룹 총수가 역시 수감된 CJ그룹의 상황은 SK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7월 횡령·배임, 탈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현 CJ 회장은 9월12일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옥중 경영에 나서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8월 항소심 결심 공판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이 회장은 몹시 마른 모습이었다. 현재 이 회장은 부인으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은 후 거부 반응으로 고농도의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재판장님,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 회장은 건강 악화로 구속 집행정지를 허가받아 병원 입원 치료를 받으며 재판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이 구속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대법원의 파기환송밖에 없다. 9월18일 CJ 측과 검찰은 나란히 상고장을 제출했다. CJ 측은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결국 집행유예를 받은 바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사례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김 회장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횡령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인정돼 복역을 면할 수 있었는데, 이 회장 역시 같은 경우라는 주장이다.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된 후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 그리고 이채욱 CJ주식회사 대표,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시켜 회사의 주요 현안을 처리해왔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룹 실적이 다소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CJ그룹의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에 비해 4.1%와 9.1% 증가했다. 그러나 미래 성장동력이 될 대규모 신사업 추진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 그룹 내에서 벌어진 직원 자살 사건 등으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점도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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