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공약 사업 위해 숲 개발 제한 대거 풀었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9.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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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이화여대 등 20여 대학 주변 숲 등급 완화…기숙사 공사 본격화하며 주민 반발 확산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의 공약 사업인 대학생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서울 주요 대학에 주변 숲 개발을 허용해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각 대학이 서울시가 풀어준 개발 제한 지역에 기숙사를 지을 경우 대규모 도심 녹지가 사라지게 돼 박원순 시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서울시의 녹지지구가 부족한 터에 공약 사업 이행을 위해 대규모로 개발을 허용한 게 적절했는지를 두고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서울 대학가에는 기숙사 신축 바람이 한창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취임 초부터 기숙사 신규보급 정책에 역점을 두고 이를 추진했다. 2012년 6월 ‘희망서울 대학생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학 내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 인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신축 계획에서 대학의 재량권도 확대했다. 그 결과 현재 서울 시내 20개 대학에 총 6720실(1만5969명) 규모의 ‘기숙사 건립 세부시설 조성 계획 결정’이 완료된 상황이다.

9월12일 서울 북아현동 이화여대 기숙사 신축공사 현장.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으나 수목이 벌목되면서 황량하게 변해버렸다. ⓒ 시사저널 임준선
막 첫 삽을 뜨는 대학부터 이미 공사가 상당히 진행된 대학까지, 기숙사 신축 사업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그런데 기숙사 착공을 본격화하는 대학이 늘어날수록 잡음도 커지고 있다. 현재 주요 대학가 인근 주민들은 서울시의 기숙사 보급 정책이 환경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개발 사업 뒤에서 도심 녹지가 대량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연희동 연세대 기숙사 신축공사 현장. 원래 비오톱 1등급지였으나 등급이 하향돼 건물 신축이 가능해졌다. ⓒ 시사저널 최준필
여의도 40% 면적 개발 제한 일거에 풀려

논란의 중심에는 ‘비오톱(Biotope)’이 있다.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물을 뜻하는 ‘Bio’와 장소를 뜻하는 ‘Topos’의 합성어다. 특정 동식물이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는 소규모 서식지를 말한다. 도시 지역의 생태가 악화되면서 생물군집이 줄어들게 되자 남은 개체를 보존 및 복원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비오톱은 크게 두 가지 평가로 구성된다. 유형평가와 개별평가다. 유형평가는 대상지 전체에 대해 절대적으로 보전이 필요한 비오톱 유형 1등급부터 부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5등급까지로 나누고, 개별평가는 보전 및 복원 필요 여부에 따라 3등급으로 분류한다. 유형평가가 ‘전체’ 혹은 ‘일부’ 등 보호 범위에 대한 것이라면, 개별평가는 ‘특별’ 혹은 ‘한정’ 등 보호 가치에 대한 평가다.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유형 및 개별 평가가 모두 1등급인 ‘비오톱 1등급지’에 대한 개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즉 대상지 ‘전체’가 ‘특별’히 보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비오톱 지대에는 건물 신축이 불가능하다. ‘희망서울 대학생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서도 비오톱은 환경성 검토와 관련한 중요한 지표로 거론된다. ‘비오톱 2등급 이하로 보존 가치가 낮은 녹지 부지에 대해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받아 기숙사 건축 부지 용도로 지정 활용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서울시가 올해 2월 발표한 ‘대학 세부시설 조성 계획 수립·운영 기준’에도 ‘비오톱 1등급지, 공원으로 지정된 대학 내 임야’는 개발이 불가능한 ‘녹지 보존 구역’으로 명시돼 있다.

이렇듯 개발이 불가능한 비오톱 1등급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만 기숙사 신축을 허용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2013년 5월, 서울 소재 대학 주변 비오톱의 등급이 대대적으로 하향 조정되는 일이 발생했다. 덕분에 비오톱 규정에 발목을 잡혔던 상당수 대학이 기숙사 신축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최근 이화여대는 학교 인근 북아현숲 3만149㎡ 내 수목 1100여 그루를 베어냈다. 재학생 2344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기숙사를 짓기 위해서다. 해당 부지는 비오톱 1만9967㎡가 포함돼 있어 원래 건물 신축이 허가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비오톱 등급 하향으로 건물 신축이 가능하게 됐고, 그로부터 넉 달 뒤인 지난해 9월 서울시로부터 사업 승인을 얻어냈다. 지난 7월22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주변 일대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아침에 울창하던 삼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이화여대가 마련해 열린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기숙사 건축 착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주민들은 형질 변경조차 하기가 어려운데 자연경관지구 안에 5층짜리 거대한 건물을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연세대와 광운대는 비오톱 등급이 조정되고 한 달이 지난 2013년 6월, 서울시 제10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기숙사 신축 계획안을 승인받았다. 연세대의 경우 유가공실습장 뒤편 연면적 4만648㎡의 부지에 5층 높이의 기숙사 4개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광운대도 노원구 월계동 500-40번지 일대에 84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상 7층, 연면적 2만630㎡, 총 425실 규모의 기숙사 2개동을 새로 짓는 중이다. 2013년 5월 이전만 해도 모두 비오톱 1등급지로 개발 행위가 불가능했던 곳이다. 학교 인근 개운산 일대의 비오톱 등급이 완화된 고려대 역시 지난 9월2일 기숙사 신축 방침을 발표했다. 건물 6동에 550실, 총 1100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학교법인 토지라도 그곳 생태는 공공의 것”

시사저널이 2013년 5월 당시 발표된 ‘서울특별시 고시 제2013-136호’ 내용을 전수 분석한 결과, 원래 1등급이었던 467필지 총 1.17㎢의 비오톱 등급이 하향 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여의도(2.9㎢)의 약 40%에 해당하는 땅의 개발 제한이 일거에 풀린 셈이다. 비오톱 등급이 1등급으로 상향 조정된 곳은 145개 필지 0.41㎢로, 하향 조정된 면적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등급 변경 면적이 넓은 땅을 중심으로 세부 분석을 해보니, 비오톱 등급이 하향 조정된 곳은 상대적으로 대학 캠퍼스 안팎이 많았다. 상향 조정된 곳은 캠퍼스와 다소 거리가 있는 산, 언덕, 임야 지대 등인 경우가 많았다. 즉 대학 측이 개발에 착수하기 수월한 캠퍼스 인근 땅을 중심으로 비오톱 등급이 하향되는 추세가 두드러졌다.

서울시 비오톱 지도는 2000년에 처음 마련됐다. 5년 단위로 서울 전체 지역을 대상으로 재평가가 이뤄진다. 지난 2005년과 2010년 한 차례씩 등급 조정이 있었다. 2010년 조사 결과가 나오고 3년도 지나지 않아 비정기 조사가 시행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통해 대학 주변 비오톱 등급이 대규모로, 그것도 대학의 개발 사업 추진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된 과정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대학 측에 개발 허가를 부여하기 위해 ‘짜맞추기 식’ 실태조사가 실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오랫동안 비오톱 1등급지로 있던 대학가 주변 숲이 어느 순간 대대적으로 등급이 하향 조정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 측과 갈등을 빚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비오톱 등급을 조정한 배경을 명백히 밝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기존 조사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생태환경조사 용역비가 상당히 적은 수준이기 때문에 (5년 단위의) 전체 조사에 오류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에도 민원을 통해 등급이 조정되는 경우가 분기당 수십 건꼴로 있다”는 것이다. 일선 대학들이 기숙사 신축 부지와 관련해 비오톱 등급 조정 민원을 자주 제기해왔고, 이에 서울시가 외부 전문 기관에 의뢰한 ‘서울 소재 대학 생태현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반영해 오류를 교정했다는 입장이다.

해당 연구용역을 수행한 ‘생태환경연구소’ 측의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비오톱 지역이라 해도 도로·공원·학교 등 도시계획상 개발 당위성이 클 경우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물론 비오톱 1등급 지역에 해당하거나 자연환경 훼손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에는 환경 영향성 평가 등을 통해 일부 제한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번에 1등급에서 하향 조정된 비오톱의 경우 개발 제한이 필요할 정도로 보전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평가에서 해당 비오톱 지대에 1등급을 부여했던 전문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지난 2000년 처음으로 ‘비오톱 지도’가 제작되었을 때 사업을 총괄한 인물로, 이후 5년 단위의 재평가 작업에도 참여했다. 한 교수는 “조사 당시 여건의 한계로 일부 오류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평가자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같은 비오톱의 등급 판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현장에는 다양한 생태환경 요소가 섞여 있는데 연구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나 연구용역을 수행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보전’보다 ‘개발’을 중시했을 경우, 이것이 등급 판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과거 서울의 일부 대학에서 비오톱 등급 조정 민원을 제기했을 때 녹지 보전을 위해 받아들이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록 학교법인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해도 그곳의 생태는 엄연히 공공의 것이다. 지금 일선 대학들에는 이를 최대한 보존하며 신중히 개발을 해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기숙사 신축으로 인해 녹지를 잃게 될 해당 주민 입장에서는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대학들이 녹지가 갖는 공공성의 가치를 고려해 신중히 개발을 추진하기보다는, 캠퍼스 확장을 통한 사익 추구만을 앞세우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는 것이다.

서울의 도심 녹지 환경은 그리 양호한 편이 아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서울의 녹지 비율은 30.2%로 전국 광역시 중 가장 낮다. 상위 3개 광역시인 울산(69.8%), 대구(61.1%), 대전(58.8%) 등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혜진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현재 서울시의 생태 보전 여건은 상당히 열악한 실정이다. 녹지 보전 및 확대의 거점이 돼야 할 비오톱이 여러 다른 가치들에 밀려 보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및 연세대 인근인 서울 대신동의 한 주민은 “서울시와 주요 대학들이 무분별한 개발 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주변 녹지를 훼손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비오톱 관련 의혹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의 핵심 사업이라는 이유로 비오톱 등급을 의도적으로 하향 조정했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반응이었다.

지난 7월22일 이화여대 기숙사 기공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기념 시삽을 하고 있다. ⓒ 이화여대
서울 녹지 비율 30.2%, 전국 대도시 중 꼴찌

치솟는 주거비용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문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대학의 재산권과 주민의 환경권 등이 충돌하며 지역 갈등으로 번진다는 데 있다. 고려대 인근 주민들은 ‘개운산 사랑 성북구민연합회’라는 단체를 결성해 행동에 나섰다. 서울을 대표하는 대학가인 신촌 일대 주민들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대문구 소재 주요 대학들 앞에서 연일 항의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9월17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신촌 지역 주민 임천재씨(43)는 “기숙사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학 내 쇼핑몰 건설, 잇따른 기숙사 신축까지 주민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진행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서울시와 각 대학들이 인근 상권과 주거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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