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 비리, 세월호만큼 큰 사건 될 것”
  • 노진섭·안성모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9.3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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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 부과·장기수선충당금 유용 등 다양한 수법에 ‘꾼 동대표’까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일을 해본 동대표들은 하나같이 ‘김부선 아파트 관리비 비리’ 사례를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의 한 아파트 동대표인 주 아무개씨는 “세월호 사건만큼 큰 폭풍을 몰고 올 시한폭탄이 아파트 관리비 비리”라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의 65%가 사는 전국 아파트 관리비는 한 해(2010년 기준) 12조원으로 추정된다. 돈 규모가 큰 만큼 비리도 많다. 국토부가 전국 지자체 콜센터 등을 통해 집계한 전국 아파트 관리비 비리 민원 건수는 2011년 814건에서 2012년 8755건, 2013년 1만1323건으로 2년 사이에 14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법정 다툼만 3000건에 달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11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규정을 위반한 수의계약’이 가장 많은 비리 유형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ㅅ아파트는 지난해 차량 번호 인식 주차차단기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불거졌다. ⓒ 시사저널 규윤성
협박과 회유에 감사도 못 맡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ㅅ아파트도 수의계약 관련 비리 문제로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다. 한 달 전 시사저널에 제보해온 주민은 “동대표들이 중심이 돼 주민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주차차단기 공사를 강행했는데, 한 할부금융사로부터 고금리 대출을 받아 공사비용을 충당했고, 그 비용이 고스란히 관리비로 청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사비용의 절반 정도는 뒷돈(리베이트)으로 제공됐을 것으로 의심했다. 이 때문에 최근 주민대책위원회까지 결성됐다.

입대의가 지난해 경비원 수를 줄이고 CCTV(폐쇄회로 TV)와 주차차단기 3대를 설치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아무개 관리소장과 대책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민 동의를 받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 공사대금을 대출금으로 충당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지 못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경비원 감축으로 경비가 절감된다는 부분만 부각했고 공사비 조달 방법은 입주민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사비용은 ㅎ캐피털사로부터 연리 12%로 대출을 받아 사용했다. 이 소장은 “대출금은 24개월로 나눠 갚아야 하는데 현재 관리비에 포함돼 청구되고 있다”고 전했다.

업체 선정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1차 입찰과 2차 입찰 모두 유찰됐고 ㅇ업체와 1억4100만원에 수의계약이 체결됐다. 대책위 관계자는 “CCTV와 주차차단기 설치를 다 합해도 그 절반 정도 금액이면 공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리베이트가 아니겠느냐”며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ㅅ아파트의 관리비는 24평 기준 17만원이다. 중앙난방식인 이 아파트의 관리비는 겨울철에 20만~30만원으로 오른다. 이 아파트 주민 조 아무개씨는 “40년이 넘은 이 아파트의 관리비가 대전의 50평대 아파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관리비는 대부분 공사비로 사용되고 있다. 이 아파트 감사를 맡아오던 남 아무개씨가 최근 감사 직을 그만두는 일이 발생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나이가 많아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감사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구조 때문이었다. 남씨는 “진행 중인 10여 건의 공사비만 모두 20억원인데, 자재를 본래 계획했던 것을 사용하지 않고 싼 것을 써 돈을 챙기는 의혹이 있었다. 이 점을 지적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협박과 회유였다”고 말했다.

서로 견제하고 협심해야 할 아파트 관리업체와 입대의가 오랜 기간 아파트 관리비를 좌지우지한다는 말도 나왔다. 한 주민은 “입대의 구성원도 거의 바뀌지 않고, 관리업체도 10년째 아파트 관리를 맡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한통속이어서 다른 주민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이 되지 않아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꾼 동대표’가 활개 치는 아파트 비리

주민의 돈을 챙기는 수법은 주민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해지고 있다. 1000가구 아파트 단지에서 1억원짜리 공사가 필요하다면 가구당 10만원씩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데, 관리비가 갑자기 10만원이나 오르면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그런데 1억원을 12개월로 나누면 가구당 월 부담금은 8000원 선으로 줄어든다. 아예 다른 용도의 돈을 유용하기도 한다. 장기수선충당금을 공사비로 사용하는 식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노후 시설 보수 등에 사용하기 위해 모아두는 돈이다. 관리비를 인상하지 않고도 관리비를 빼내는 수법이다.

주택 관리업계에서는 ‘직업 동대표’ ‘꾼 동대표’라는 용어가 돌고 있다. 한 아파트에서 동대표를 맡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다른 아파트로 이사해 그곳에서도 동대표를 맡아 이권을 챙기는 부류를 일컫는 말이다.

관리비 사용을 승인하는 입대의와 진행하는 관리업체가 연대하면 막강한 권력이 형성된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모든 아파트에는 감사가 있다. 그러나 감사도 아파트 주민이면서 입대의 구성원이어서 실질적인 감사 역할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비용을 지출한 내역과 영수증을 비교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아파트 관리비 비리 근절’을 선언하고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조사 대상 단지가 4000여 곳에 달해 전수조사가 불가능하고 비리가 확인되더라도 시장이 직접 규제할 수 없어 자치구청장을 통해 시정명령을 내리는 수준이다. 이번 기회에 공동주택 관리비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주민이 비리 의혹을 잡고 입대의나 관리업체에 문의하는 경우가 있다. 비리를 저지른 입대의나 관리업체는 이런 경우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폭행 사건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전해지고, 이후에는 비리를 알고도 모른 척하게 된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입대의 회장을 지냈던 안 아무개 씨는 “김부선씨는 폭행의 덫에 걸렸다”며 “뒤가 구린 입대의는 그들에게 저항하는 주민에게 폭행을 행사해 폭행 사건으로 몰아간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침묵하면 의혹과 비리는 커진다. 국토부의 ‘공동주택 관리 정보 시스템’이나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 등을 통해 수시로 관리비 정보를 공유하는 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대표는 “관리비 비리로 적발된 사례는 전부 내부 고발자에 의한 것이고, 내부 고발이 없으면 아파트 비리 문제는 절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인회·부녀회의 알뜰 장터는 불법” 


아파트에는 노인회나 부녀회가 있다. 공식 단체가 아닌 동호회 성격의 자치단체여서 아파트 관리비 운영에 개입할 수 없고 수익 사업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아파트에 좋은 일을 한다는 취지로 입대의에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고 그 대가로 동대표 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밀어주거나 떨어뜨리기도 한다. 일일 알뜰 장터 등을 운영하면서 공금을 주무른다. 장터에 입점하려는 업체는 부녀회에 자릿세 명목으로 돈을 낸다. 1500만~2000만원의 뒷돈이 오간다고 한다. 큰 아파트 단지의 경우 이 금액은 1억원을 웃돌기도 한다. 한 아파트 동대표는 “자치단체가 알뜰 장터 등 아파트 공동 수익 사업을 벌이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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