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뚜껑 열릴 때마다 국민이 ‘깜짝깜짝’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09.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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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거리 된 박근혜정부 인사, 과거 정권과 비교해보니…

정부 각료 주요 인사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이뤄지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국정의 궁극적 무한·최종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적임자를 선택하는 행위라는 점에서다.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까지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는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 대상이 확장되고 엄격하게 이뤄지는 등 대통령의 인사권이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 개각 등 주요 인선에 대한 평가에 머물렀던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졌다. 이런 데에는 단임제와 민주화 등에서 비롯된 전반적인 대통령 권위의 추락 못지않게 역대 대통령들의 이런저런 부적절한 인사가 자초한 측면도 강하다.

누가 보아도 ‘아니다’ 싶은 인사를, 순전히 대통령 개인의 기호 내지 보은의 수단으로 임명하는 행태들이 역대 정권에서 빈발함으로써 대통령 인사권 제약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대통령의 ‘자기 책임’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인식이 확고해진 것이다. 최근 30여 년의 양태들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상황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지난 7월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을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신군부를 배경으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정부 요직 임명의 최우선은 ‘군 출신’이었다. 당·정의 핵심은 물론 공기업 사장과 감사 자리도 이들 몫이었다. 다만 권력기관장 등 요직을 군 출신들이 꿰찬 것이 맞지만, 요소요소에 각 분야의 특급 엘리트들을 배치한 측면은 있었다. 파국 직전의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전폭적 신임과 지원 등은 당시 인사 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를 비롯해 경찰·보안사 등 각급 정보기관이 주요 인사의 행적을 정리한 존안자료는 그 자체가 인사 목록이었고, 청와대 민정비서실의 검증 요청에 즉답이 가능하게 작동하기도 했다.

YS와 DJ, 인사 후 여론 반응에 민감

전두환 정부 뒤를 이은 노태우 정부는 인사에 관한 한 각 부문의 A급 인물들을 앉히는 경향이 특히 강했다. 취약한 정통성과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공세를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의 관록으로 보완이라도 하려는 듯 면면은 화려했다. TK(대구·경북) 편향 인사에 대한 비난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무난한 평가가 나온 데는 해당 인사들의 얼굴과 시스템을 활용한 게 한 요인이 되었다. 또 당대의 실세인 박철언 의원의 입김이 상당했고, 이로 인해 일부 왜곡된 인사도 없지 않았으나 손주환 정무, 김종인 경제, 이병기 의전 등 청와대 수석들의 충언이 받아들여져 험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 즉 여론을 가장 의식한 이는 김영삼(YS) 대통령이다. 양복도 몸에 착 달라붙게 입는 등 외양에 신경을 쓴 YS가 개각 후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여론의 반응과 평가였다. 이러한 YS였던 만큼 명분에 닿지 않는 인물을 중용하는 일은 극구 피했다. 단순한 깜짝 인사가 아니었다. ‘폼’에 집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대학 교수·총장을 기용하는 빈도가 높았고, 인사 내용이 사전 유출되는 것은 ‘폼’을 해치는 것과 동일시해, 일단 누출되면 무조건 없던 일로 했다. YS 정권의 첫 안기부장이 한 유명 사립대 L교수에서 한국외대 김덕 교수로 전격 교체된 것도 그런 사례다.

YS 스스로가 초대 내각을 조각할 때 회심의 작품으로 자찬한 김상철 서울시장은 그린벨트 훼손으로 시비가 일면서 내각 출범 일주일 만에 폐기됐다. 당시 박관용 비서실장과 김영수 민정수석은 ‘김 시장’ 허물을 보상할 만한 후임 인선에 골머리를 싸맸는데 ‘김 시장과 전혀 다른 성분의 인물’인 이원종씨로 위기를 넘겼다. ‘이원종 서울시장’은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의 아이디어를 빌린 것이다. 고집이 센 YS였으나 납득이 가면 선선히 수용했다. 정무에서 공보로 옮긴 주돈식 수석을 공보처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할 때 이원종 정무수석(이원종 시장과 동명이인)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불가함을 말하자 이내 받아들였다. “큰 수술을 받은 사람을 술 마셔야 하는 자리에 보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 수석이 문화체육부장관이 된 것도 그래서였다. 당시 ‘소통령’의 권세를 휘두른 차남 현철씨의 ‘채근’은 여론을 이유로 물리치기도 했다. 참모들이 작성한 명단을 늘 곱씹으며 덧대온 YS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대중(DJ) 대통령 역시 대중 정치인답게 여론에 민감했다. 그러나 영남 중심의 인사 구조를 깨고 건국 이래 소외돼온 호남 출신을 배려하다 보니 일부 패착도 심심치 않았다.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의 DJP연합에 따라 인사 재량 범위가 현저히 줄어든 것도 DJ 인사의 한계를 낳은 요인인데, 이런 마당에 종전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권력 주체의 등장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공안기관의 존안자료마저 뒤바뀌는 일탈이 적잖았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혁신 세력이 권력 엘리트로 전면에 나서는 혁명적 전기였다. 노 대통령과 보폭을 같이하는 진보 그룹의 전면적 등장은 당연했다. 그러나 기득권층을 도태시키고 그간 소외됐던 주변층·인물들을 기용하다 보니 은연중 2류·3류 중심이라는 비아냥거림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각 인사’ ‘회전문 인사’로 낙제점을 받는다. ‘좌파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우파 그룹 내에서 한자리를 기대하는 인력 수요는 과거 정부 때보다 몇 배 늘어났는데, 회전문 인사에 집착했으니 결과는 빤했다.

권력자와의 안면·거리가 인사의 우선 잣대?

박근혜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 폐습·패착에 더해 부정적 요소들을 더욱 가미·심화시킨 느낌을 준다. 대통령직인수위원 임명 시의 삐걱거림은 차치하고라도 총리·각료, ‘윤창중’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참모진 임명 과정의 숱한 해프닝은 민망스러울 정도다.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의원들로부터 면담 거부를 당하고, 해당 부처 공무원들은 물론 유관 기업인들까지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 모 인사의 장관 기용 경위 및 배경 등은 지금도 웃음거리로 남는다.

각료 임명 과정도 그러려니와 해임 대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진룡 문화부장관 등의 해임을 전후한 비화에는 많은 사람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과거 치밀하기로 정평 있던 김기춘 비서실장의 역할이 의아스럽다는 얘기다. 다른 어떤 사연이 있어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의문도 잇따르고 있다. 한마디로 최근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황당한’ 사표 수리 과정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인사를 둘러싼 우스개는 단순히 한심하다는 말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만기친람형 수첩 인사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와 이후 ‘부하’들이 보인 외면·불손 등의 행태에서 비롯된 ‘배신 트라우마’의 소산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배신을 경계하고 증오가 넘치는 데서 오는 ‘확인 편견(confirmation bias)’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어떠하든, 실제가 어떤 처지이든 중요한 점은 고뇌와 노력의 결과가 소기의 성과는 고사하고 많은 지지자까지 걱정케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니 대통령의 다음 선택이 어떠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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