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면세담배 불법 유통 ‘침묵의 카르텔’ 있다
  • 엄민우·조해수·김지영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0.02 17: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한미군-상훈유통(상이군경회)-KT&G’ 20년간 누구의 간섭도 감시도 없어

“담배여, 그대 때문이라면 죽음 이외에는 나는 무엇이라도 할 것이노라.” 영국 최고의 수필가로 꼽히는 찰스 램은 담배를 이렇게 극찬했다. 애연가들에게 담배는 단순히 기호식품을 넘어 물과 같은 생활필수품에 가깝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 아니라 떨어지면 꼭 사야 하는 물건이다. 이는 담배는 결국 모두 팔리게 돼 있음을 의미한다. 담배를 팔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현금 교환권’을 갖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담배 공급 및 판매권을 제한적으로 부여한다. 담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혜를 받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검찰이 지난 6월 말께 군납용 면세담배 불법 유출 사건 수사를 위해 사상 최초로 서울 용산을 비롯한 전국의 미군부대와 미군 면세담배 유통 독점권을 가진 상훈유통 본사를 전면 압수수색한 사실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8월23일자 ‘검찰, 사상 초유 ‘치외법권’ 미군부대 압수수색’ 기사 참조). 더불어 상훈유통에 사업권을 준 상이군경회, 미군부대, KT&G 등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8월23일자 ‘면세담배 카르텔, 그 끝은 어디인가’ 기사 참조).

ⓒ 연합뉴스
본지 보도가 나간 직후인 8월25일 인천지검은 면세담배 불법유통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시엔 주한미군 기지 압수수색 사실 등 미군부대 불법 유출과 관련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지 보도로 당시 관련 내용이 알려지게 되면서 취재진들의 질문이 이어지며, 추가 수사 방향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당시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소개했고 담뱃값 인상 논란 이후 면세담배 불법 유통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고 수사 방향과 그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

과거에도 미군부대 면세담배 불법 유출 및 유통 관련 문제는 간헐적으로 터져 왔지만 늘 소매업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번 수사는 종전과 달리 독점 유통권을 가진 상훈유통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수사와 차원이 다르다. 이런 점에서 본지 취재진은 검찰의 추가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그동안 KT&G의 면세담배가 미군부대 소매점으로 들어갔던 과정을 정밀 취재했다. 이를 통해 최소 20년 이상 미군부대와 상훈유통, 그 위의 상이군경회, 또 그 위의 국가보훈처 등이 연결되는 사슬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그 누구로부터 감시받지도 않고 간섭받지도 않았던 미군부대 면세담배 불법 유통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용산 미군부대 출입문 ⓒ 시사저널 임준선
미군, 1994년부터 상이군경회에 사업권 부여

앞서 언급했듯 애연가들의 생필품인 담배를, 그것도 시중보다 가격이 현저히 싼 면세담배를 독점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다. 그렇다면 상훈유통은 어떻게 미군부대에 대한 담배 공급을 독점할 권한을 갖게 된 것일까. 그 배경은 30여 년 전인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부터 당시 보훈공단은 군수불용품 처리 등을 하는 한·미행정협정(SOFA) 면세품 양수양도 사업을 수행해왔다. 해당 사업은 부대 내에서 사용되던 중고품 등을 양도받아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손해 보는 장사’가 되기 시작했다. 군수불용품 중 가전제품 등 부대불용품은 수익이 나지만 피복류 위주의 개인불용품은 적자를 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수입 자유화 조치로 인해 해당 물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한·미주둔군지위협정과 관련된 사항이어서 해당 사업은 계속 수행돼야 했다.

그러던 와중인 1994년 상이군경회가 해당 사업 수행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군수용품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적자를 보전해주기 위해 상이군경회에 국산 면세담배 판매 사업권을 승인해줬다. 군수불용품 처리와 함께 미군기지 내에 국산 면세담배를 공급할 수 있는 특혜를 준 것이다.

KT&G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군부대에 공급되는 면세담배 규모는 2013년 기준으로 2700만 갑에 이른다. 보통 면세담배는 한 갑에 900원 정도에 들여와 1700원에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간단히 계산해봐도 매년 이익만 200억원에 이른다. 물론 이 액수 전체를 그대로 갖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큰 이득을 본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상이군경회는 어떻게 경쟁 없이 무난히 20년간 독점적 담배 유통권을 갖게 됐을까. 김기식 의원실에 따르면 그 전까지는 보훈공단(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의 전신)이 SOFA 면세품 양도사업을 맡아왔다. 그러다가 94년도 당시 “국가가 계속 해당 사업을 맡는 것보다는 민간에 넘기는 것이 맞다”는 목소리가 제기됐고 이때 상이군경회가 해당 사업과 담배 공급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이군경회는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당사자에 해당된다.

상이군경회는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 미군부대 내 사업 운영 등과 관련한 경험이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같은 해 설립된 상훈유통에 해당 사업을 위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훈유통은 적자가 나는 피복류 등 개인불용품을 처리하는 한편, 주한미군 면세담배 사업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1994년부터 20년 동안 상훈유통은 주한미군으로부터 부여받은 유통 독점권을 바탕으로 주한미군에 담배를 공급해왔다. 정확히는 직접 공급했다기보다는 미군기지 내 소매업자들에게 담배를 공급했으며, 이 소매업자들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해왔다. 소매업자들이 불법 유통을 하지 못하도록 정기적으로 교육을 하는 일도 맡았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소매업자들이 적발돼도 상훈유통까지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소매업자뿐 아니라 상훈유통에까지 수사가 들어간 것은 면세담배가 소매업자들에게 공급되기 전 단계부터 불법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혹을 밝혀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불법 유출 및 유통 규모가 소매업자 몇몇이 저지르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번에 사상 초유의 대대적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정작 상훈유통은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한미군은 이번 수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미군부대 내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직접적인 사건 당사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면세담배 공급 자체가 SOFA에 의해 수행돼야 할 군수불용품 처리 사업 적자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점, 한국 정부가 아니라 주한미군이 직접 판매 사업권을 승인해줬다는 점에서 미군도 면세담배 불법 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직접 사건에 관여하진 않았지만 사업권을 부여한 곳으로서 최소한 해당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본지의 지난 8월 말 보도 이후 “미군 내에서 국산 담배를 판매하는 곳들이 제대로 신고를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드러난 행태를 보면 그것도 제대로 안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상훈유통에 담배를 공급한 KT&G는 어떤 입장일까. KT&G 측은 “현재는 물론 과거 담배인삼공사 시절에도 사업자 지정에 대해서는 전혀 권한이 없고 상훈유통의 담배 사업권도 당시 한미연합사가 지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속 및 관리·감독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공급만 할 뿐 정부에 권한이 있고 상훈유통에서도 불법 유통 단속을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면세담배 유출과 관련해 KT&G의 인천공항지점장이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고, 올해 면세담배를 용도 변경 판매해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적을 받는 등 이미 면세담배 공급 및 관리와 관련한 여러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또 KT&G가 자사의 여러 부문 중 영업과 관련해 소개한 직무 내용을 보면 ‘판매점 적정 재고 유지 활동 및 데이터에 근거한 제품 주문 활동 및 매출 증대 노력’이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에 맞춰보더라도 면세담배 공급과 관련해 제대로 직무를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 검찰 발표에서도 드러났듯이 국산 면세담배 중 상당수가 외부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결국 주한미군과 KT&G 모두 면세담배 사업권을 내주고 공급만 했지 유통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았던 셈이다.

김기식 의원 “보훈처 국감 때 철저히 따질 것”

상훈유통에 미군 면세담배 사업 및 SOFA 사업을 위탁하고 있는 상이군경회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 상이군경회 관계자는 “상훈유통이 우리 (상이군경회)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은 맞지만,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 쪽에서는 해줄 말이 없으니 상훈유통과 이야기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상이군경회가 산하 단체인 상훈유통에 위탁한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8월 말 시사저널 보도가 나간 후 정치권 일각에서 정부의 책임 문제를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기식 의원실에 따르면, 상이군경회는 재향군인회 등과 함께 국가보훈처 산하 단체로 분류된다. 상이군경회는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법정 보훈단체이기 때문에 국가보훈처의 관리·감독 아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보훈처가 상이군경회의 산하 단체가 수행하는 수익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김기식 의원은 “국가보훈처는 보훈단체 수익 사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미군 면세담배 불법 유통 사태와 관련한 내용을 이번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보훈처의 보훈단체 관리에 대한 문제는 국회에서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바 있다. 2012년 국정감사 때는 민병두 의원으로부터 “보훈단체를 제대로 된 매뉴얼로 관리하지 않아 해당 단체들로부터 끊임없는 위법 및 비리가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8월 인천지검 외사부가 인천세관과 합동으로 단속해 압수한 불법 유통된 면세담배. ⓒ 연합뉴스
“미군에 국산 면세담배 공급 자체가 문제”

현재 미군부대 면세담배 불법 유통 사태와 관련해 상훈유통과 소매업자들이 주요 당사자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 이면을 보면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방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SOFA 사업을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던 미군은 담배 독점 공급권을 상이군경회에 내줬고, 상이군경회는 산하 단체인 상훈유통이 이를 도맡아 수행하도록 했다. KT&G는 불법 유통 여부를 따지지 않고 상훈유통에 꾸준히 담배를 공급했고 상이군경회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국가보훈처는 예전부터 산하 단체 관리와 관련해 지적을 받아왔음에도 해당 문제가 터질 때까지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방조와 묵인의 카르텔 속에서 면세담배 불법 유통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주한미군에 국산 면세담배를 계속 공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담배는 호불호가 엄격한 기호식품이다. 그래서 보통 담배를 출시할 때는 소비자 입맛에 맞는지를 먼저 따진다. 그런데 미군들이 한국의 담배를 실제로 소비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불법 유통된 면세담배를 판매하는 대다수 상인은 “미군들이 국산 담배를 피우겠느냐”며 “국내 담배를 굳이 미군에 공급할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미군부대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부대 내에서 판매되는 한국 담배는 주로 미군기지를 출입하는 한국인 군속들이 구매한다고 한다. 이들은 면세 지역인 부대와 외부를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연스레 면세담배를 구입해 외부로 유출할 수 있다. 특히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발표 이후 벌써부터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 면세담배 유통을 그대로 둘 경우 거대한 블랙마켓이 만들어질 우려가 있다. 본지가 보도한 검찰의 미군 면세담배 유출 관련 수사가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