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가을 하늘 청자를 빚어내다
  •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승인 2014.10.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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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9월30일~11월16일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는 생활 속에서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그 귀함과 아름다움을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서 도자기는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문화적 자산으로 ‘창조 산업’의 근간이 될 가치를 지닌 분야다. 하지만 우리의 도자에 대한 자부심에 비해 이에 대한 이해는 낮고 치우쳐 있다.

사실 도기와 자기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백자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도자에 대한 상식과 지식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청자를 이야기하다 보면 청자의 색이 푸른색, 즉 ‘블루(blue)’로 알고 있는 이들을 간혹 만나게 될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청자는 청록 또는 황록색을 띠는 그린(green) 계통의 도자기를 의미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푸른빛의 청자는 무어라 일컬을까. 다름 아닌 ‘청화백자’가 블루 계열의 ‘청자’인 셈이다. 청화백자는 조선시대의 백자에 푸른 안료를 써서 그림이나 문양을 넣은 도자기를 말한다.

그 푸른빛이 마치 코발트빛을 연상시키는, 진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도자의 반짝이는 표면에도 불구하고 그윽하면서도 우러나는 맛을 낸다. 백자의 흰 바탕에 산화코발트를 써서 맑고 투명한 청색 그림이나 문양은 더욱더 청량한 느낌을 준다.

① 운현이 쓰여진 영지넝쿨무늬 병 ②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백자청화 까치호랑이무늬 항아리, 조선 18세기, 높이 42.0㎝, 국립경주박물관 ③ 항아리와 매화가지. 김환기 ④제시 포터리의 푸른 청어(Blue Herring) 접시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ㆍ정준모 제공
사람을 매혹하는 힘, 푸른빛 도자

청화백자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14세기 초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된 청화는 14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전해져 15세기 중엽부터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청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5세기 후반부터 독자적인 양식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는 조선시대 도자기 제작의 중심이 됐던 사옹방이 사옹원으로 기구가 확대되고 경기도 광주시 일대가 사옹원의 분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이뤄진 일이다. 특히 이즈음 제작된 청화백자에 그려진 그림을 살펴보면 일반 도공들이 그려 넣은 솜씨가 아니라 화원의 전문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관장제 수공업 체제가 자리 잡아가면서 생겨난 일로 도자의 기형(器形)도 기형이지만 그림의 내용이나 유약을 사용함에도 유려하면서도 결기 있는 준법이 청화의 멋스러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화백자의 회화적인 문양이나 그림은 조선시대 화풍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제작 연대 추정에도 단서가 된다. 15~16세기 전반에는 소나무가 중심이 되는 타지기법에서 마하파(중국 남송의 마원과 하규의 화풍) 화풍의 문양을, 16세기 후반~17세기에 이르러서는 조선 중기의 화단을 풍미했던 소나무나 대나무가 있는 풍경에 독서와 풍류를 즐기는 인물을 주제로 하는 절파 화풍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18세기에 들어서면 금사리 가마터에서 각병이나 제기에 각이 진 굽다리 등 새로운 기법의 청화백자가 나타나고, 문양도 간략한 들풀이나 벌레와 곤충 그리고 산수화가 주를 이루면서 한국적인 청화의 독창적인 양식을 완성한다. 그 후 청화가 대중화되면서 민화풍의 문양이 등장해 해주도자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청화백자의 전통은 우리 도자의 원천 기술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전통과 기법은 오늘날 무용지물에 가까운 형편이다. 서구에서 오히려 이런 청화 기법을 활용해 만든 명품이 우리 시장으로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귀한 전통이 현대에서 끊어진 아이러니

2011년께 출시된 에르메스의 ‘블루 다이어(Bleus d’Ailleurs)’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동양의 청화에서 영감을 받아 모던하게 해석했다는 이 도자기 세트는 청화의 아름다움을 극한의 문양으로 승화시켜 한국 주부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덴마크의 도자회사 로얄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의 베스트셀러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 시리즈, 제시 포터리(Jersey Pottery)의 청어와 정어리 문양을 청화로 장식한 블루헤링(Blue Herring), 영국 웨지우드(Wedgewood)사의 웨지우드 블루 시리즈는 명품 대열에 올랐고 모든 여성의 로망이 됐다.

우리 도자의 역사와 전통이 녹록지 않음에도 여전히 세계 도자 시장에서의 입지는 좁다. 이는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 시간 속에 박제화하는 문화재 정책에서 비롯된 일이다. 전통이란 지키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승 발전시켜 오늘의 것으로 만들어 되살려내야 한다. 여전히 전통기술로 도자기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 ‘인간문화재’가 가스나 전기 가마를 마다하고 귀하디귀한 장작을 구해다 도자기를 굽는 장작 가마를 강요당하는 한 우리의 청화백자 전통은 액자 속이나 박물관 진열장 속에 존재할 뿐이다.

공예와 회화가 조화를 이룬 조선 청화백자의 전통과 기술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청화靑畵, 푸른빛에 물들다>전(9월30일~11월16일)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자 생활용품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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