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 산 폭발, 거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10.0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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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할 경우 수도권 교통 마비, 피해액 25조원 추산

1973년 고마쓰 사교(小松左京)가 발표한 <일본 침몰>이란 소설은 일본 열도가 지각변동으로 태평양 아래로 가라앉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픽션보다는 작가의 지질학 지식이 바탕이 된 작품으로 사실적으로 침몰을 그려냈다. 출판 1년 만에 수백만 부나 팔렸고 일본 사회에 침몰 신드롬을 불러왔다. 소설 속 일본은 약 1년간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요동친다. 일본 정부는 세계 각국에 양해를 구하고 전 국민을 각지로 피난시킨다. 대혼란이 일어날 만한 상황에서도 일본 국민들은 묵묵히 자기가 떠날 순서를 기다린다. 집이 무너지려 하고 화산재가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마치 남의 일처럼 관망하듯 집안을 지킨다.

지난 9월27일 나가노 현 온타케 산이 분화하며 엄청난 화산재를 뿜어냈다. 사망자가 47명에 이른다. 1991년 4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나가사키 현 운젠후겐다케 분화 때보다 피해 규모가 크다. 21세기 최악의 화산 피해 중 하나로 기록될 온타케 산  분화를 바라보는 일본의 최대 인구 밀집 지역 도쿄의 분위기는 의외로 평안하다. 200㎞ 정도 떨어져 있다는 심리적 안정 때문인지 소설 속의 관망과 다르지 않다.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한국 기업 지사에서 근무하는 윤지원씨(34)는 “한국이 떠들썩한 것과 달리 도쿄는 차분하다.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 이상으로 온타케 산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일본 최고봉 후지산(3376m)은 도쿄와 불과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활화산이다. ⓒ AP 연합
“300년 쉬고 있는 후지 산 비정상적”

하지만 ‘그게 후지 산이라면’이라고 질문을 던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즈오카 현 북동부와 야마나시 현 남부에 위치한 일본 최고봉 후지 산(3376m)은 도쿄와 고작 100㎞ 정도 떨어져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후지 산 분화에 관한 우려를 막연하게 그려냈다면 온타케 산 분화는 현실적인 일로 만들었다.

지난해 일본 내각부 유식자회의는 정부가 광역 피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화산 방재 강화를 위해서였는데 주된 관심 대상은 후지 산이었다. 세계적으로 볼 때 20세기 이후 일어난 총 5번의 매그니튜드 9.0급의 거대 지진은 예외 없이 주변 화산 폭발을 동반했다. 현재 일본 화산분화예지(預知)연락회 회장이자 당시 유식자회의 단장이었던 후지이 도시쓰구 도쿄 대학 명예교수는 “후지 산은 3200년 동안 약 100회 분화했다. 현재 300년 정도 쉬고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경우에 따라 예측에서 분화까지 매우 짧은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피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후지 산을 끼고 있는 시즈오카·야마나시·가나가와 현의 경우 후지 산이 분화할 경우 주민들을 위험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피난 계획을 갖고 있다.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인원은 최대 75만명에 달한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기무라 사다아키 오키나와 대학 명예교수는 지진 예측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3년 이내에 후지 산이 분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화산 폭발은 주변에 작은 지진 활동이 빈발한 시기부터 35년 후를 기준으로 ±4년 범위에서 발생한다. 후지 산의 경우 1976년에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 35년 후인 2011년부터 ±4년 범위에 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후지 산이 폭발하면 어떤 피해를 입게 될까. 900도가 넘는 용암이 헤이안 시대였던 864~866년의 폭발 때처럼 분출된다면 후지 산 남쪽을 통과하는 일본의 대동맥 도메이 고속도로와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 신칸센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럴 경우 일본은 허리가 동서로 잘린다. 용암은 수도권까지는 닿지 않는다. 하지만 화산재는 다르다. 리쓰메이칸 대학 도시방재연구센터의 다카하시 마나부 교수는 “화산 폭발로 생기는 대형 피해는 화산재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화산재는 쓰레기를 소각할 때 나오는 재가 아니라 마그마가 분쇄된 미립자다. 얇은 유리 조각과 같다. 눈에 들어가면 각막을, 코에 들어가면 점막을 손상시킬 수 있고, 체내에 들어가면 폐 등에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내각부는 2004년 후지 산의 화산재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시뮬레이션한 ‘헤저드맵’을 제작했다. 지도에 따르면 시즈오카와 야마나시 주변에는 약 30cm, 도쿄와 지바 일대에는 2~10cm 정도의 화산재가 쌓일 수 있다. 관동 일대는 화산재가 덮어버린다고 보면 된다. 이럴 경우 수도권 교통은 완전히 마비된다. 쓰쿠이 마사시 지바 대학 교수는 “화산재는 물에 젖어 굳을 경우 차가 미끄러진다. 도로에 몇 cm만 쌓여도 차가 달릴 수 없다. 그 주변은 항공기도 지나기 어렵다. 항공기 엔진이 외부 공기와 함께 화산재를 흡입하면 재가 안에서 굳어 엔진이 정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지 산이 분화할 경우 일본 전역에서 결항되는 항공기만 하루 500편 이상 될 것이라는 데이터도 있다. 철도도 움직일 수 없다. 시야가 흐려지는 데다 화산재가 선로에 쌓이면 기차는 달릴 수 없게 된다. 지하철은 더 우려스럽다. 지하철은 배기구를 통해 외부 공기를 가져오는데 지하에 화산재가 들어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생활 인프라도 마비된다. 화산재가 수원지에 쌓이면 급수가 불가능해진다. 내각부는 최악의 경우 화산재 때문에 약 190만~230만명이 물을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후지 산의 화산재에 취약한 사회 인프라 탓에 총 피해액은 2조5000억 엔(약 2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라마키 시게오 도쿄 대학 명예교수는 “이 추정치는 200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는 시간적으로도, 예산으로도 제약이 많아 정밀한 예측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더욱 상세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악의 사태는 수도권 대정전

최악의 사태는 무엇일까. 수도권 대정전이다. 야마모토 다카히로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연구원은 화산재로 에너지 공급원 그 자체가 멈춰 설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가장 무서운 일은 화산재가 섞여 있는 공기가 유입돼 도쿄 만 주변에 위치한 화력발전소의 터빈이 고장 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력 공급의 대부분은 원자력발전소 대신 화력발전소가 맡고 있는데 “화력발전이 정지하면 그것을 대신할 에너지 공급 수단이 없다. 화산재 앞에 속수무책이 될 것”(야마모토 연구원)이라는 시나리오는 가장 공포스러운 줄거리다.

그동안 일본 사회는 후지 산 분화 가능성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온타케 산 분화 이후 “지진에는 예민해도 화산에는 약한 방재 시스템이 문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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