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제 식구 감싸기 ‘정쟁 국감’ 이제 그만
  • 박명호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4.10.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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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연의 역할 내팽개친 국회…“세상에 이런 국감 어디 있나”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서 유권자의 직접선거로 구성된다. 선출된 국회의원은 공식적으로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국민 중 일부를 대표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는 다양한 국민 의사를 가능한 한 비례적으로 국회 의석수에 표현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때 우리는 국회가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국회가 같은 사안에 대해 이해(理解)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이 때문에 이해(利害)를 달리하는 국민 대표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우 법률의 형태로 표현되는 국회의 결정은 국민 대표들 간의 고통스럽고 긴 협상과 타협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회의 모든 행위를 효율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의 성격과, 대립과 다툼의 조정자로서의 국회 기능은 효과성의 측면에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효율성의 차원에서 국회를 평가해야 할 대상은 바로 국정감사다. 왜냐하면 국정감사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정부기관 등을 대상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10월7일 시작된 2014년 국정감사는 예정보다 늦게 시작되었지만 10월27일에 마감해야 한다. 20일 동안 국회는 국정감사 부활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672개 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국정감사가 효과적이기보다는 효율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10월8일 국회의사당 본관의 국정감사장에서 23개 피감기관장들이 대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노동부 증인 문제로 애꿎은 환경부가 피해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정반대다. 상대적으로 더 짧아진 기간에 이전보다 더 많은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2014 국정감사가 이전의 어떤 국정감사보다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국정감사가 예정보다 늦게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한 국회 상임위원회는 한날 최대 6~7개의 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격 국정감사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야당의 준비가 부족하다. 국감은 야당의 주요 활동 무대다. 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새 원내대표 선출 등 야당 내부 사정이 국정감사 준비에 몰입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야당이 정부·여당의 실정을 파헤치고 국정 운영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기엔 전투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나아가 2014 국정감사는 19대 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국정감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엔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해이기 때문에 여야 모두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부실 국감에 대한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국정감사 첫날부터 파행이 속출했다. 정책 국감이 아니라 정쟁(政爭) 국감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피감기관 공무원들조차 “세상에 이런 국감이 어디 있나”라고 탄식할 정도라고 한다. 국감 첫날 오전 10시40분 시작돼 증인 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5시간 동안 막후 협상까지 진행하느라 국감을 공전시킨 끝에 결국 밤 10시가 넘어 국감 질의 하나 없이 마감한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이 대표적이다.

이날 국정감사 대상 기관은 환경부였다. 상임위 공전의 계기는 기업인 증인 채택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당일 피감기관과는 직접적 상관이 없는 문제로, 굳이 따지면 고용노동부가 관련 기관이다. 한 공무원의 말대로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증인들은 거의 고용노동부와 관련된 증인들인데 애꿎은 환경부가 피해를 본 것”이다. 결국 여야는 각각 “야당이 민주노총 2중대라는 생각이 들 정도” “(여당이) 증인 채택을 위한 협상에 전향적 자세로 나오지 않는 한 국정감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고 서로를 비난하며 소중한 국정감사의 하루를 마감했다.

외유(外遊) 국감 논란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의 일본·중국 사무소에 대한 국감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 사무소는 직원이 2~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위원 24명 전원이 14명과 10명으로 나뉘어 1박 2일 일정으로 이들 사무소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장비는 3000만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은행 해외 지점의 대형 금융 사고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물론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국정의 문제점을 밝혀내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국정감사도 있다. 예를 들면 수도관이 낡아 연 5000억원어치의 물이 새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수돗물 누수비용이 2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을 우리는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했다. 1만석 이상 규모 전국 93개 종합경기장의 5년간 누적 적자액이 5744억원이라는 사실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국감 일정 확대하고, 상임위 전문성 둬야

따라서 국정감사는 필요하다. 문제는 정쟁 국감이나 본말이 전도된 국감이 아니라 필요한 국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정감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첫째, 여당과 여당 의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정감사는 여야 대결이 아니다. 국민 대표 기관으로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국정감사다. 따라서 정부를 감싸는 역할보다 국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게 우선이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야당과 야당 의원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국회선진화법에서 보듯 국회가 정당 간의 대립의 장이 되면 식물국회가 된다. 국회선진화법이 효과를 보려면 국회는 자율성을 가진 의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국정감사도 마찬가지다. 여야 의원 동수로 구성된 국회 상임위원회가 식물상임위나 식물국감으로 가지 않으려면 집단 간 대결의 장으로서의 국회가 아니라 국민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국정감사 일정의 확대다. 이미 여야는 지난 8월 말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분리 국감’을 도입해 일하는 국회를 실천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국회 공전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제는 실천만 남았다.

넷째, 선택과 집중의 국정감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원별로 나름의 전문 분야를 가져야 한다. 의원들의 소속 상임위를 빈번하게 교체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계속 확대되는 국감 대상 기관을 대상으로 매년 국정감사를 진행하기보다 로테이션 국감을 통해 내실화를 지향해야 한다.

다섯째, 국정감사가 본연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감이 의원들의 다음 선거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지역 출신 의원들의 국감 활동에 대해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론과 지역 정당 조직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의원들에 대한 국감 평가가 다음 선거에 반영된다면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의원 역할보다 자율성을 가진 대표로서 책임감을 갖는 의원들이 많아져 입법부 기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 국회는 권력 견제와 균형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때 국정감사는 입법부로서 국회가 행정부를 대상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주요 수단 중 하나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국정감사가 계속된다면 국민의 국회 불신은 머지않아 국회 무용론으로 변할 것이다. 국정감사, 이젠 정말, 아니 제발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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