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미국 앞마당 점령하다
  • 이상│남미 통신원 ()
  • 승인 2014.10.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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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미적거리는 사이 에콰도르에 깃발 꽂은 중국

에콰도르의 만타(Manta) 지역은 태평양에 인접한 에콰도르 최대 휴양지다. 바닷가와 가까워 한국의 대규모 산업단지가 위치한 울산·여수와 닮아 보인다. 최근 만타 지역에서는 19억 달러 규모의 정유화학산업단지 사업을 두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아름다운 이곳의 자연 경관과 달리 에콰도르 경제 사정은 좋지 않다. 그래서 19억 달러 사업을 두고 에콰도르 정치인을 비롯해 금융·건설업체들까지, 여러 집단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일자리 부족이나 처우 개선을 위해 시위를 주도하는 노동자 집단에서도 만타의 사업은 큰 관심거리다.

중국 정부를 대신한 ‘시노펙’(Sinopec)을 비롯한 공사 및 금융기관 담당자들이 협상 테이블 한편에 있다. 그 맞은편에는 에콰도르 정부와 베네수엘라의 국영석유업체인 PDVSA가 합작해 만든 태평양정유회사가 있다. 일단은 결렬됐지만 분위기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협상이 결렬되자 중국 정부는 자국으로 에콰도르 정부 및 기업 관계자를 초청해 협의를 다시 가졌고, 그 결과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콰도르 중국대사관, 중국 기업의 환경 파괴에 항의하는 에콰도르 시민단체, 에콰도르에 건설되는 베이징 플라자 건물, 중국과 에콰도르 외무장관 회담. ⓒ 이상 제공·Xinhua·AP연합
에콰도르는 자원만 있을 뿐,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과 기술력은 없다. 자원이 있다면 돈은 모이는 법이다. 그런데 에콰도르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에콰도르는 신뢰하기 어려운 나라다. 우선 잦은 디폴트 선언이다. 1999년 디폴트 선언을 한 적이 있는 에콰도르는 2008년 12월 만기 채권 이자 3000만 달러를 지불하지 못해 두 번째 디폴트에 들어갔다. 에콰도르의 국가 부채는 상당한 수준인데 외채가 GDP(국내총생산)의 20% 수준을 넘었다.

그럼에도 현지 석유자원을 노리고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속속 들어왔다. 이들이 자리를 잡고 이익을 남기자 에콰도르 정부는 ‘석유사업 개발법’을 발동한다. 외국 기업들의 이익에 세율을 엄청나게 높였는데, 이익을 거의 환수하는 수준이라 원성이 높았다. 동시에 노동자 이익분배를 법제화해 석유개발업체들은 연말 결산 후 강제로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해야 했다. 기업이익 환수가 지나치다는 게 외국 기업들의 볼멘소리였다.

역외 송금세율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07년 기준으로 0.5% 수준이던 송금세율은 매년 1~2% 상향 조정됐다. 2011년 11월 이후부터는 5%가 적용됐는데, 이 말은 에콰도르에서 사업을 해 한국으로 1억 달러를 송금할 경우, 500만 달러(약 50억원)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화폐 개혁까지 논의 중이다. 에콰도르 중앙은행은 지난 5월22일 “소액결제·직불카드·수표결제·전자송금 기능을 가진 전자화폐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화폐 개혁의 표면적 이유는 ‘전자화폐 활용을 통한 상거래 활성화’다. 하지만 진짜 노림수는 고액 자산가의 불투명한 자산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고 외국인과 외국 기업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이란 게 중론이다. 실제 고위공직자들은 이미 상당한 자산을 미국 마이애미나 파나마로 빼돌렸다는 얘기가 에콰도르엔 좍 퍼져 있다.

잦은 디폴트에 미국·유럽은 발길 돌려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은 에콰도르에 대한 투자를 꺼리거나 진작부터 손을 뗐다. 지역 전문가를 오래전부터 파견해 남미를 텃밭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온 일본도 에콰도르만은 관망으로 일관한다. 한국도 현재 관심을 갖고 일부 기업이 사업에 참여했지만, 전체 사업 규모를 볼 때 크지 않은 수준이다. 실제 주한 에콰도르 대사 및 에콰도르 정부 고위 관계자가 우리 정부 측 인사를 만났을 때 홀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뛰어든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의 자원외교는 유명하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자원 확보를 위해 공격적으로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국가 간 관계를 볼 수 있는 대사관 규모를 보면, 한국 대사관은 키토의 신시가지에 위치한 월드트레이드센터의 한 개 층에 자리 잡고 있고, 일본 대사관은 부촌의 아담한 부잣집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 대사관은 다르다. 신시가지 대로변에 거대한 성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중남미가 미국의 앞마당이란 말은 옛 말

국가 위험이 큰 에콰도르에서 중국은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을까. 중국은 세계 각지에서 그들만의 확실한 힘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 주요 도시에 대규모 차이나타운을 세우듯 이미 에콰도르에는 수많은 중국 식당이 들어와 있다. 정부 및 현지 대형 로펌이 위치한 신시가지 ‘아베니다 엘 살바도즈’의 주요 오피스와 주거지는 이미 중국인들이 점령했다. ‘세이스 데 디시엠브레’라는 대로변에는 ‘베이징 플라자’라는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에콰도르와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뒤 중국 정부 조직을 비롯해 금융·건설 관련 전문 인력과 노동자 등 10만여 명이 에콰도르에 몰아닥쳤다. 본토에 남아도는 근로자들을 대규모로 쏟아 부었다. 한국인 교민이 200가구 정도에 불과한 키토에서 길을 걷다 보면 중국인 직장인과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말을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중국은 대규모 인원을 투입해 주요 지역의 땅과 건물을 매입하고 커뮤니티를 이루는데, 어느 순간 해당 국가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실체를 이룬다. 지금 에콰도르에서 똑같은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어찌 보면 코레아 대통령 정부에서 가장 수혜를 입은 국가는 중국이다. 에콰도르 내에서 미국과 유럽의 오일 메이저 등이 가졌던 영향력에 코레아 대통령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과 거래를 강화하며 “동맹국 간 무역의 승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오단 로에트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남미 석유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는 우려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남미가 미국의 앞마당이란 말도 이미 옛이야기처럼 들리는 게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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