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으로 책 팔아먹는 재미에 빠졌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4.10.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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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의 <대혐한시대> 베스트셀러 올라

책 하나를 홍보하려고 올린 트위터 메시지가 열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9월23일 도쿄의 중심가 지요다구에 위치한 대형 서점 ‘쇼센 그란데’는 자사 공식 트위터를 통해 <대혐한시대(大嫌韓時代)>(사쿠라이 마코토 저, 세린도 출판) 홍보에 나섰다. ‘이웃 나라가 싫은 분, 왜 싫은지 신경 쓰이는 분, 식민지와 전승국 흉내, 영토 문제와 반일 등에 의문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이라는 짧은 문장을 전파했다. 이 트윗은 곧 큰 반발을 일으켰다. ‘이건 차별이 아니냐’ ‘배외주의적 발언이다’라는 비판이 몰아쳤다.

쇼센 그란데는 당황했다. 사흘 후인 9월2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본사 트위터 계정에 의견을 주신 건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신간 서적 소개 내용에 특정 주장을 지지하는 듯한 표현이 있었던 점은 다양한 사상을 취급하는 지식의 장인 서점의 입장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깊게 반성하고 있다. 고객들께 이런 오해를 사게 한 점은 본사의 의도가 결코 아니었기에 해당 트윗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사쿠라이 마코토 재특회 회장의 책 .
5만부 돌파에 e북까지…<대혐한시대> 돌풍

비록 쇼센 그란데 측이 삭제했지만, 여전히 일본 내 트위터에서는 쇼센 그란데가 게재한 내용이 떠돌고 갑론을박하는 트윗이 계속 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트위터 소동 탓에 오히려 <대혐한시대>는 단박에 관심 서적으로 떠올랐다. 일본 최대 도서 판매 사이트인 아마존에서 전체 도서 순위 1위에 오르더니, 발간 3주가 넘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1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 대표 쇼핑 사이트인 라쿠텐에서는 품절을 기록하기도 했다. 발간된 지 2주 만에 5만부를 돌파하더니 7쇄 제작에 돌입했고, e북 형태로도 만들어졌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일본 우익의 주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사쿠라이 마코토는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회장이다. 재특회는 2007년 1월 발족했다. 원래 보수 블로거에 불과했던 사쿠라이가 보수단체의 주동자가 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또 다른 우익단체인 ‘주권회’(주권 회복을 도모하는 모임)의 니시무라 슈헤이 회장을 알 필요가 있다. 그는 사쿠라이에게 스승 같은 존재다. 사쿠라이는 니시무라를 만난 뒤 사회운동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왔다. 얌전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니시무라의 주권회에 참가하면서 점점 운동 세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쿠라이가 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재특회는 그동안 우경화된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특별 영주권에 대해 반대하고 한인 지역에서 ‘헤이트 스피치’(특정 민족·인종에 대한 차별적 발언)를 주도해왔다. 그런 모임의 회장이 쓴 책인 만큼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말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혐한론’을 다룬 책 중 하나다. “‘한국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며, 더 이상 반일(反日) 국가와는 교류할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총 5개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제1장에서는 이상적인 반일 감정이 넘쳐나는 한국에 대해, 제2장에서는 독도 문제에 관해, 제3장에서는 재일교포라는 반일 집단에 관해, 제4장에서는 신시대를 개척하는 ‘행동하는 보수운동’을, 그리고 제5장에서는 ‘아시아주의와의 결별’을 다루고 있다. 철저히 일본 내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과 일본’이 주제다.

2013년 6월16일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오쿠보에서 반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재특회. ⓒ Xinhua
한국 벌주자는 ‘주한론’ 책까지 등장

재특회의 활동도 주요 내용을 차지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정부에 이르는 한·일 관계의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며 재특회의 탄생 이유와 업적들,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특회의 집행 임원과 각 지부장들의 활약들을 거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재특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특회는 1991년부터 실시된 ‘입관특례법’을 통해 ‘특별 영주 자격’을 취득한 재일 한국인들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특권을 반대하는 내용의 주장과 운동을 전개해왔다. 지난해 6월 도쿄 내 코리아타운인 ‘신오오쿠보’에서 반한(反韓) 시위를 주최한 것도 이 단체다. 이 단체의 공보국장인 오네다 류지는 재일 한국인들을 향해 “만약 한·일 간에 전쟁이 났을 경우, 일본의 편에서 한국인을 죽일 수 있는 각오가 있다면 귀화를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외국인들처럼 일본의 은혜를 받고 살아간다는 자각을 가지고 조용히 살아달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분위기에 편승해 지난해 말부터 일본 서점가에는 ‘혐한’을 자극하는 서적이 늘어나고 있다. 대형 서점의 정치·사회 코너에는 ‘혐한론’ ‘치한론(恥韓論·부끄러운 한국)’ ‘악한론’(惡韓論)을 다룬 서적들이 버젓이 진열돼 있다. <대혐한시대>에는 ‘인기’라는 표식이 따로 붙어 있을 정도다.

보수색을 짙게 띠고 혐한을 다룬 책들에 반대하는 단체도 적지 않다. 이들은 쇼센 그란데의 트위터에 항의하듯 비판을 매번 제기한다. 이번 <대혐한시대>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사쿠라이는 “출판 방해, 그리고 서점에 대한 협박도 있었다”고 하면서도 “법적으로 대응하고 경찰을 동원해서라도 이 책을 계속 출판하겠다”며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원래 반한 감정을 조성해온 것은 일본의 주간지들이었다. 한국 때리기 기사는 과거 일부 보수층 독자가 타깃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대에 걸쳐 먹혀들고 있다는 게 주간지업계의 평가다. “사회가 우경화하는 과정에 독자를 의식하는 주간지가 분위기에 편승해 혐한 특집을 만든다”는 것이다. 주간지들의 생존 문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한국 때리기다.

여기에 어려움을 겪던 출판업계도 합류했다. <대혐한시대>의 판매고와 관심에서 볼 수 있듯이 혐한을 다룬 책들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에 가담하지 않는 출판 관계자 모임’의 이와시타 유는 “혐한 서적은 일정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사와 서점이 혐한 서적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혐한을 넘어서 한국을 벌주자는 ‘주한론’(誅韓論)과 같은 책까지 베스트셀러가 되다 보니 관계없는 출판사들까지 ‘대박’은 아니더라도, 최소 ‘중박’은 치는 혐한 서적 출판에 열을 올리는 것, 지금 일본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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