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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들여다보지 말라

검열 논란으로 ‘사이버 망명’ 확산…검찰이 대통령 호위부대 전락

유창선 | 시사평론가 ㅣ | 승인 2014.10.23(Thu) 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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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최근 지인들에게 “카톡을 닫겠다. 앞으로 텔레그램으로 연락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이버 망명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경제 4단체의 수장급 인사까지도 사이버 망명길에 오른 데 대한 파장이 일자, “카톡을 탈퇴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사이버 검열에 대한 우려는 재계 인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미 사이버 망명길의 앞 대열에는 검찰·경찰 조직에 속해 있는 인사도 많이 눈에 띄고, 고위 공무원과 변호사 등 각계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증언이 파다하다. 그런 것을 보면 사이버 검열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은 메신저를 통해 정치적으로 ‘불온한’ 대화를 주고받을 가능성이 있는 어떤 사람들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자신의 은밀한 사적 대화 내용을 누군가가 들여다볼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거부감에 여야가 어디 있고 보수·진보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사이버 검열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야말로 범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폭발력이 강한 사안이다.

   
10월13일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메신저 카카오톡에 대한 검열 논란과 관련해 대책을 발표한 뒤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창조경제 기반인 IT기업 흔들어

그런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우선은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며 그에 대한 엄단을 지시했다. 지금도 대통령이든 누구든 도를 넘어선 위법적인 모독은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고, 그에 대한 수사를 하는 기관은 멀쩡히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대통령 자신이 나서서 자신에 대한 모독을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수십 년 전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대통령의 명예라는 것이 법을 앞세운 힘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와 존경 속에서 지켜질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대통령 모독을 엄단하라는 지시는 참으로 구시대적인 것이다. 그 말 한마디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얼어붙게 만들게 될지를 헤아렸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마자 검찰은 수사 전담팀을 발족시켰다. 그런가 하면 정부 부처뿐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 인터넷업체까지 참석시키는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사이버 검열 태세에 돌입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제부터 검찰이 사이버 공간을 항시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이 회의에서는 정부기관이 포털과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 인터넷 모니터링을 하고, 게시물에 대한 삭제 요청을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회의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검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검찰이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전락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다음카카오 측의 책임 또한 크다. 우선 카카오 측은 수사기관에 대해 과잉 협조를 하며 이용자들의 대화 내용을 넘겨줘 이용자들과의 신의를 저버렸다. 감청 영장을 갖고 왔다고 해서 서버에 보관 중인 메시지를 모아 주기적으로 넘겨주곤 했던 것은 안 해도 되는 일, 아니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것이었다. 더구나 논란 초기에 다음카카오 측이 드러낸 무책임하고 안이한 인식은 이용자들의 반감을 결정적으로 증폭시켰다. IT 혹은 메신저 서비스 사업자들은 그저 기술과 이윤만 안다고 전부가 아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이 있어야 이용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다음카카오 측은 생각하지 못했다.

업체 측의 과잉 협조에도 책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책임이 우선이다. 정부가 촉발시킨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그렇게 잘나가던 국내 대표 메신저 기업이 심각한 위기를 느끼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창조경제를 내걸었던 정부가 정작 창조경제의 기반이 되어야 할 IT기업을 흔들어놓는 상황을 야기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다음카카오라는 기업이 이용자들로부터 그렇게 욕을 먹으며 곤경에 처하는 사이, 청와대도 검찰도 뒤로 빠져서 지켜만 보고 있다. 어찌 보면 다음카카오는 정부가 맞아야 할 돌까지도 대신 맞은 희생양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애당초 정부가 벌여놓은 일, 정부가 책임지고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일개 기업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일이 아니다. 검찰은 법대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법대로 한 것일까. 검찰이 감청 영장을 발부받아 카톡 서버에 보관 중인 메시지를 넘겨받은 것은 위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2012년의 대법원 판례는 “이미 송·수신이 완료된 후 서버에 저장된 대화는 감청 대상이 아니라 압수수색 영장 대상”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검찰은 감청 영장을 갖고 이미 송·수신이 완료된 메시지를 건네받는 위법을 행한 셈이다.

사이버 시대에 맞지 않는 수사 기법도 문제

지금 불거진 문제는 사이버 시대의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수사 기법과 영장 발부가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수사기관은 범위가 엄격하게 특정되지 않은 포괄적인 내용의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그러한 영장 청구를 기각하지 않고 발부해준다. 영장을 발부해준 이후의 집행 상황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수사기관은 아무개의 이름으로 된 데이터 일체를 업체에 요구하고 제출받는다. 수사기관은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담겨 있는 대화 내용을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고, 이에 따라 혐의 내용과는 무관한 대화 내용이 수사기관에 넘어가고,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제3자들의 대화 내용이나 개인정보 또한 넘어간다. 당연히 바로잡혀야 할 잘못된 관행이다. 수사기관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더라도 혐의와 관련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확인하거나 압수하도록 엄격하게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법원은 중심을 잡고 그 과정을 통제해야 한다.

국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시장에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개방형 SNS 이용자가 줄어들고 카카오톡·밴드·라인 같은 폐쇄형 SNS 이용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개방형보다는 원하는 사람들끼리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폐쇄형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다. 폐쇄란 외부와 끊기 위해 문을 닫아 잠그는 것을 뜻한다. 우리들끼리 우리만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카톡을 하고 밴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닫은 문을 누군가가 느닷없이 열어젖힌다. 누가 그것을 허락했단 말인가. 더 이상 들여다보지 말라. 더 이상 저장하지 말라. 청와대-검찰발(發) 사이버 검열 논란은 우리 사회의 신뢰의 위기를 낳고 있다. 국민은 나의 대화 내용을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불신을 갖게 되었다. 정부는 중대한 범죄 혐의자가 아닌 아무에게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해당 업체는 영장에 불응하겠다고까지 말하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들여다볼 것이라는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도 믿지 않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불신이 우리 사회를 덮고 있다. 권력만 쳐다보고 국민은 안중에 없는 섣부른 행동들이 낳은 재앙과도 같은 결과다. 사이버 망명의 긴 행렬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나라꼴이 이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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