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혁명가? 도피자? 뮤지션으로 돌아왔다
  • 김영대│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14.10.27 14: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 컴백에 얽힌 이야기

서태지는 분명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부지런히 다뤄졌음에도 협소하게 분석된 음악인이다. 문화 대통령, 혁명가, 1990년대의 아이콘 등. 그가 남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근거로 확장시킨 수사는 많지만 그 어느 것도 음악인 서태지의 작품 세계나 그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인 서태지의 오롯한 매력이라는 건 과연 중요한 것일까. 서태지는 그냥 <난 알아요>의 충격과, <하여가>의 파격과, <교실이데아>의 선동과, <컴백홈>의 계몽만으로 기억돼도 별문제 없지 않을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마치 비틀스를 <I Wanna Hold Your Hand>와 애드 설리번 쇼의 열광적인 관객들의 함성만으로 기억하라든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Billie Jean>의 문워크만으로 기억해도 충분하다는 말처럼 갑갑함이 느껴진다. 정확히 말해 그가 ‘대통령’이라 불리며 한국 대중문화에 유의미한 파문을 남긴 것은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그의 20여 년 커리어 중 불과 2~3년에 불과할 뿐이고 그의 음악 행보는 그 이후에도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었을 상황 속에서 늘 지속돼왔다. 그리고 5년 만의 정규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는 마치 자신을 한 명의 음악인으로 재평가해달라고 공개적인 탄원서를 송부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적합한 앨범이기도 하다.

10월18일 열린 서태지의 컴백 콘서트. ⓒ 서태지 컴퍼니 제공
순간, 오타임을 의심했던 오프닝 트랙에서부터 미묘한 변화는 감지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그 익숙했던 ‘Yo! Taiji’나 그 흔한 ‘intro’도 아닌 ‘into’라는 아리송한 단어를 앨범의 첫마디에 고른 까닭은 무엇일까. 다만 앰비언트(ambient) 음악처럼 침잠해가는 이 짧은 50여 초의 전자 음원 서막에서 한편으로는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으로 이뤄진 잃어버린 어떤 곳으로의(into) 여정, 그리고 시간을 두고 변해온(into) 자신의 변화의 과정을 함축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렇게 해석하면 첫 싱글 <소격동>에서 지극히 사회적일 수 있는 소재를 가장 개인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려 이야기하는 것 역시 나름으로 수긍이 가는 구성이다(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과 비교해 들어볼 것). <숲속의 파이터> <Prison Break> 그리고 <잃어버린>까지, 앨범의 보랏빛 톤처럼 이 모호하면서도 암시적인 <상실>과 <자유>에 대한 판타지는 매우 일관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외적일 정도로 소박한 작품군

음악적으로 가장 명백한 것은 물론 다소 거칠게 다듬어져 교차시킨 전자 음원들의 홍수와, 뒤틀린 음색을 없애고 힘을 뺀 듯 부드러운 음색의 대비로, 대부분의 곡에서 신스 음원의 파형과 그의 중성적인 컬러가 어울려 제법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누군가는 펫 숍 보이스의 닐 테넌트를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그간 그의 사운드의 절대적인 측면을 규정했던 록이 아닌 일렉트로니카를 전면에 내세운 그의 선택에 새삼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 내지는 욕망(?)은 데뷔 이래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고 보는 편인데, 적어도 초창기 시절 그의 음악의 절반은 신시사이저에서 파생된 매우 ‘조작적인’ 사운드의 유희였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여전히 영리한 장르 조합의 귀재 

여기서 필자는 서태지에 대한 대표적인 ‘오역’ 중 하나를 떠올린다. 바로 그가 일종의 ‘장르 소매상’이라는 인식이다. 1990년대 이후 힙합·그런지·랩메탈·드럼앤베이스 등 다양한 장르를 남들보다 일찍 궁리해 들여온 그의 음악 이력을 감안하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방식은 장르 그 자체의 연구라기보다는 트렌디한 장르의 개별 요소를 자신의 작법 안에 교묘하게 ‘믹스 앤 매치’ 시키는 것에 가까우며, 그 점에서는 ‘조합의 귀재’라는 평가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령 <크리스말로.윈(Chrismalo.win)>은 그 괴팍한 욕심을 여전히 드러내는 곡인데 한국 대중에게는 마치 트로트와 일렉트로닉의 교차로도 들릴 수 있을,  필자에게는 오히려 월드뮤직적인 감수성에 가깝게 들리는 이 우스꽝스러운(?) 전개에 돌연 힙합의 트랩(trap) 연결부를 삽입한다든지 하는 ‘꾀’도 그다운 것이다. 도입의 드럼비트를 통해 <죽음의 늪>(2집)을 불러오면서도 원곡의 마이클 잭슨 풍이 아닌 피아노의 몽환적인 톤으로 ‘지적인 댄스음악’(IDM)의 분위기를 창출해 한 시대의 아이콘이던 이들, 혹은 그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감상과 결합시킨 <90s ICON> 역시 그의 음악을 추적해온 이들에게는 흥미롭게 회자될 법한 트랙이다. 늘 그렇듯 그의 ‘조합’은 나름의 완성도를 담보하고, 이 앨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이미 해외 일렉트로닉 사운드나 같은 장르의 인디 음악에 익숙한 대중에게 이번 앨범의 사운드 실험이 얼마나 ‘진기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될 것이다. 적어도 한때는 파격이나 혁신이라는 말과 동일시돼온 서태지의 음악을 떠올린다면 예외적일 정도로 소박한 작품군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필자는 서태지 음악이 가진 고유한 매력의 정수가 장르 그 자체가 아니라 얼핏 들어도 서태지의 곡임을 눈치 챌 수 있는 고유한 멜로디 라인과 그곳에서 파생되는 독특한 가요적인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는 얼핏 윤상과도 유사하다.

특별히 구체적인 편곡 양상이나 개별 음악 장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2집의 <우리들만의 추억>, 3집의 <널 지우려 해>, 5집의 <Take 5>, 7집 <Live Wire>, 8집의 <Moai> 등은 늘 비슷한 멜로디의 인자를 품고 있었고, 대책 없이 밝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딴죽을 거는 선율의 곡선을 가진 멜로디 메이커 서태지의 작법은 <소격동> <Prison Break> <비록> 등 이번 앨범에도 여전히 유효한 음악적 지문으로 남아 있다. 장르나 형식 등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유려한 멜로디와 편곡의 조화만으로 이 앨범에 다가간다면 그 자체로는 즐겁게 들을 만한 아홉 트랙들이다. 다만 6집 이후에 좀처럼 찾을 수 없던 ‘엣지’ 같은 것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미묘한 멜로디의 해석에 탁월함을 가진 아이유에게 <소격동>을 맡긴 것은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점에서는 좋은 보험이었던 셈이다.

서태지는 ‘혁명가’로 기록됐지만 어떤 의미로 ‘도피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성격은 전작 8집의 연장선에서 전자 음원과 동화적 상상력을 빌려 좀 더 농밀해졌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5집 이후로 가장 서태지스러워진 음악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늘 가장 트렌디하고 아주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시대를 호흡하는 그저 한 명의 음악가로서 스스로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 했고 이 앨범은 그런 점에서는 성공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다행히 그의 선율감은 퇴색하지 않았고, 가사는 잠시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들 힘이 남아 있으며, 편곡이나 가사의 디테일에서도 특별히 과잉된 자의식이나 시대에 대한 오판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위상과 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역할과 소통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서태지가 <90s ICON>에서 고백한 것처럼 한때 누구 못지않게 실험적이며 파격적인 음악 행보를 거듭했고 그것으로 위상을 점유했던 그에게 트렌드를 제시하거나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 않는 이 멜랑콜리하고 개인적인 사운드는 역시 완전한 해답이 아닌 고민의 산물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앨범을 혁명가도, 아이콘도 아닌 뮤지션 서태지(혹은 정현철)의 정체성 탐구, 그 과정의 한 단면이자 전환점 정도로 결론 내리고자 한다.


ⓒ 시사저널 임준선
□ 표절 논란에 대해

나를 문익점, 수입업자라고 부르는 얘기가 있다. 일정 부분 맞다. 난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최초의 수입업자라고 부른다면 오케이다. 그게 7집 때까지는 그랬다. 8집 때부터는 그런 쪽(서구 쪽의 새 트렌드)의 작업은 손을 놓았다. 영향을 받은 팀도 없다. 이번에도 내 안에서 해결하고자 했고 레퍼런스 음반도 없다.

표절 얘기는 3집 <교실이데아>에서 데스메탈, <컴백홈> 때는 사이프러스 힐을 흉내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런 음반을) 레퍼런스를 한 것은 맞다. 그게 표절 논란으로 이어졌는데 표절 아니다. 내가 전에 힙합 장르는 이렇게 저렇게 들릴 수 있다며 해명하기도 했다. 지금은 표절에 대해 해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언젠가는 이런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음악을 많이 듣고 판단해주시라. 

 

□ 서태지는 흘러갔다

서태지의 시대는 1990년대에 끝났다. 내가 2000년대에 컴백했지만 마니아틱한 음악을 했다. 그렇게 하면서 <울트라맨이야> 때부터 대중을 버렸다. 마음속으로 미안했다. <90s ICON> 가사(한물간 별 볼일 없는 가수)에 나오듯이 (물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막을 수도 없고.

나도 30~40대를 지나고, 팬도 나이가 들고. 새로운 주류가 나오고. 우리는 주변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다들 그런 느낌을 가질 것이다. 어느 정도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대신 소중한 추억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음원 성적은 저조한데 8집 때는 ‘광탈’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아이유 덕분에 <소격동>도 롱런하고 후배들도 잘 들어주고. 지금은 성적이 밑에 있지만 성적보다는 개개인이 좋은 음악, 나쁜 음악 이런 식으로 판단해줬으면 한다. 학교 다닐 때도 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싫어서 학교를 그만뒀다(웃음). 음악도 성적보다는 음악으로 평가받았으면 한다. 

 

□ 사회 비판적 메시지 전달자

이번 앨범의 <소격동>이나 <크리스말로.윈>을 두고 ‘기무사를 다룬 게 아니냐’는 등 논란이 일었다. 나는 이런 논란이 좋다. 내가 어렸을 때 소격동에 살았다. 예쁜 동네였다. 하지만 그때 집에서 보안사가 보였고 민방위 훈련을 하면 탱크가 지나갔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담는 것도 꼭 필요했다. 소격동이 예뻤지만 살벌했던 풍경도 함께 있었다. 내가 느꼈던 공포도 노래에 담았다. <소격동>이 아름답지만 공포도 느꼈다는 팬들 반응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아싸’했다. 특별히 사회 비판이라기보다는 그런 논란이 담기기를 바랐다.

 

□ 안티 팬

내가 음반을 내면 팬과 안티 팬이 콜라보레이션을 한다. 논란이 있는 것은 좋다. 악플은 너무 오래됐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뭘 해도 안 좋은 기사만 쏟아져 나올 때도 있었다. 2000년에 안티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그게 쭉 이어져오고 있다. 그게 나를 (이슈의) 중심에 있게 한다. 8집 이후에는 내가 (안티 팬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줬다. 떡밥을 던져준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음악이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관심 덕에 내 음악을 조금이라도 듣게 된다면 좋다. 앞으로도 팬과 안티 팬의 콜라보가 계속됐으면 좋겠다.

 


□ 의도된 신비주의

나를 두고 늘 신비주의라고 하는데 나조차도 ‘내가 신비주의인가?’ 고민한다. 이번에 신비주의를 벗어던졌다고 하는데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가수이기에 음반이나 공연을 통해 평가받고 싶었다. 예능 프로 등 노출을 안 하니까 붙은 별명 같다. 어린 친구들에게 서태지란 존재는 없는 존재일 것이다. 마음 같아선 매해 음반을 내고 싶다. 신비주의 소리 듣더라도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                                김진령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