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대재앙, 아시아도 위험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11.0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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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중국·인도 상륙 시간문제” 태국·일본 등에서 의심 증세 이어져

‘피어볼라’(공포(fear)+에볼라=에볼라 공포)가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과 미주 대륙으로 건너간 에볼라는 이미 아시아 상륙을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9월부터 12월까지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에서 출발하는 항공편 예약 현황을 분석했다. 에볼라 창궐 지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의 목적지 상위 10개국 가운데 9위까지는 다른 아프리카 나라와 유럽 3개국(영국·프랑스·벨기에)이었다. 10~13위는 중국·말리·미국·인도로 나타났다. 말리(11위)와 미국(12위)에서는 사망자와 감염자가 발생했다. 아직 발병 사례가 없는 중국과 인도가 에볼라의 첫 아시아 상륙지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세계 인구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모두 26억명으로 지구촌 인구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1976년 콩고(당시 자이르)에서 에볼라를 최초로 공동 발견했던 벨기에의 미생물학자 피터 파이엇 박사는 홍콩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어느 날 중국에서도 에볼라 발병이 일어날 것”이라며 “아프리카에서 많은 중국인이 일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에볼라 감염 위험이 크며, 언젠가 (감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와 같은 전염 상황이 6~12개월 더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동안 더 악화할 것이다. 30일마다 감염 숫자가 배로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볼라가 상륙 가능성이 큰 도시까지 거명됐다. 마릭 페이리스 홍콩 대학 공중보건대학장은 최근 중국 질병통제예방본부 회의에서 “아시아와 서아프리카 간 항공편과 교역량을 고려할 때, 중국에서는 베이징·상하이·광저우·홍콩이 에볼라 예방의 최전선이며, 인도에서는 뭄바이”라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와 중국 광저우 공항을 잇는 직항 노선만 160편이다. 중국은 8월23일 이후 서아프리카에서 중국으로 입국한 사람이 8600명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콩에도 하루 15명가량이 감염 지역에서 들어오고 있다.

“비행기는 에볼라 실어 나르는 모기와 같아”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에 교역도 활발해졌다.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은 중국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철광석 무역협정을 맺은 상태이고, 시에라리온에 일본은 최대 수출국이다. 인도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다. 선박 등록 사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라이베리아에 한국은 큰손이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아시아인도 적지 않다. 중국인은 수만 명에 이르고, 필리핀 사람만 8000명이 넘는다. 필리핀 정부는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에만 1700명의 근로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에볼라의 아시아 상륙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60%가 몰려 있고, 인구 밀도가 높으며, 빈민층이 많고, 공중보건 체계가 빈약한 환경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에볼라는 공기 감염이 아니어서 전파 속도가 느리지만, 사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든 비행기는 큰 모기와 같아서 수많은 감염자를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뜨리는 매개체”라며 “아시아에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의심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7일 나이지리아에서 출발해 태국 푸껫에 도착한 영국인이 최근 사망했다. 해변을 걷던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심장질환으로 판단돼 치료 후 퇴원했으나, 23일 숙소에서 코피를 흘리며 사망한 채 발견됐다. 태국 보건 당국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망 시점이나 출혈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에볼라로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태국은 이 영국인의 혈액을 추가로 검사하고, 만일에 대비해 그와 접촉한 의료진 등 25명을 11월14일까지 격리한 채 관찰하기로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잠복기(2~21일)를 고려한 조치다.

태국에 거주하는 한 호주인도 10월17일 콩고 유전지대에서 일하다 입국한 후 고열 반응을 보였다. 태국 당국은 그에게 거주 지역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라고 지시했고, 11월5일까지 경과를 관찰하겠다고 발표했다. 타릭 자사레빅 세계보건기구(WHO) 커뮤니케이션 담당관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시아에서 감염자 발생 보고는 아직 없다”면서도 “태국에서 사망한 영국인의 사망 원인은 모른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도 의심 사례가 발생했다. 10월27일 라이베리아에서 2개월 동안 취재한 한 캐나다 국적의 기자는 영국과 벨기에를 거쳐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검역 과정에서 37.8도의 열이 확인돼 병원으로 후송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10월28일 그의 혈액에서 에볼라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며칠 후 혈액 재검사를 통해 문제가 없으면 퇴원할 것으로 보인다. 에볼라에 감염된 직후에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일도 있어 일본 당국은 이 남성을 도쿄의 국립국제의료연구센터 격리 병실에 입원시켜 경과를 관찰 중이다. 일본은 이날 총리 관저 위기센터에 에볼라 정보연락실을 설치하는 등 방역 수준을 높였다.

다른 대륙과 동떨어진 호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호주 퀸즐랜드 주 보건국에 따르면, 18세 호주 여성이 10월15일 가족 8명과 함께 기니에서 호주로 입국했다. 그러나 의심 증세가 나타나 집에 격리된 채 지내다가 밤에 체온이 올라 로열 브리즈번 여성병원으로 후송됐고, 바이러스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10월24일 국립중앙의료원은 에볼라 대응 방호복 탈착 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간호사·의사 등 의료진을 대상으로 했다. ⓒ 연합뉴스
“국내엔 제대로 된 격리 병상 없어”

다행히 확진 환자는 없지만 의심 증상이 아시아 국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생기고 있다. 그러자 의료시설이 낙후된 북한은 아예 출입문을 걸어잠갔다. 10월24일부터 외국인 여행객의 입국을 무기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2003년 사스가 창궐했을 때도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중국과 홍콩은 2003년 사스 경험을 되살려 에볼라 통제에 적극적이다. 발병국 입국자에게 의료 기록을 제출하도록 했고 잠복기인 21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체온을 검사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수만 명의 중국 근로자가 있고 이들이 내년 춘제(설) 기간에 중국을 찾을 수 있어 상당 기간 경계 태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조류인플루엔자를 다룬 경험이 있는 100개의 병원에 대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에볼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서아프리카에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가 구성한 신종감염병 대응 전담반은 격주로 전체 의사 회원에게 에볼라 최신 동향을 배포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전담반을 조직해 진료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역학과 건강’)에 첫 에볼라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방역복을 입은 의사와 검사 전문가가 한 공간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각종 검사를 한다. 이때 의료진과 검사 인력은 방역복에 달린 공기 튜브를 통해 외부 공기만으로 숨을 쉰다. 기 교수는 “국내 격리 병상은 인플루엔자와 같은 호흡기 감염병을 가정해 만든 시설이다. 에볼라처럼 혈액·체액 등으로 전파되는 경우를 고려해 환자가 격리된 곳에서 환자의 혈액·체액 등 모든 가검물을 검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병상은 없다”며 “에볼라 환자의 가검물은 환자의 격리 병상 밖으로 절대 나가선 안 되는데, 국내 병원에선 격리 병상에서 채취한 에볼라 환자의 가검물을 외부로 보내 검사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겨울철을 맞아 진단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우주 교수는 “독감 바이러스와 에볼라의 초기 증상이 고열·기침 등 비슷해서 감별이 쉽지 않아 초동 대처에 미흡할 수 있다”며 “의료진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환자를 진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험 단계에 있는 일본의 에볼라 치료제 ‘아비간’ ⓒ EPA연합
세계보건기구(WHO)는 내년 상반기 사용을 목표로 에볼라 백신 개발에 한창이다. 다국적 제약사 GSK, 존슨앤존슨, 캐나다 공공보건기관이 각각 개발한 백신은 11~12월 임상시험을 거쳐 내년 초 환자에게 사용될 전망이다. 개발 중인 약은 백신 5개, 치료제 5개 등 모두 10개 제품이다.

약 10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 기간을 단축하면 효과를 장담할 수 없고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영국 노팅엄 대학의 조너선 볼 바이러스학 교수는 “백신이 효과를 낼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위험”이라며 “백신은 매우 낮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백신을 전달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혈청 치료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미국인 감염자 7명 가운데 4명은 에볼라 생존자의 혈청을 투여받아 완치됐다. 혈청은 혈액에서 추출한 황색의 투명한 액체로 항체가 들어 있다. 그러나 혈청 치료의 효과를 확신할 수는 없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혈액에서 바이러스가 완전히 제거되고, 항체가 존재해야 한다. 또 타인의 혈액이라서 거부·과민 반응이 나타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며 “아프리카에서는 혈청을 밀거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말라리아·에이즈 등 다른 전염병 바이러스가 들어 있을 수 있으므로 WHO의 관리하에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때 에볼라 치료제로 눈길을 끌었던 약이 지맵(zmapp)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스페인 신부와 라이베리아 환자는 지맵을 맞고도 숨졌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하에 지맵을 환자에게 투여했지만 대량 생산이 어렵고 효과가 들쑥날쑥하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자체적으로 생산한 약을 사용할 계획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자국에서 에볼라 환자가 생기면 미승인 약이지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비간’을 쓰기로 했다. 아비간은 후지필름의 계열사 도야마 화학공업이 본래 항인플루엔자 약으로 개발했으나 생쥐 실험에서 에볼라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와 기니는 11월 중순부터 아비간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정작 에볼라 발생 지역인 아프리카에서는 별다른 약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네갈과 나이지리아에서 에볼라 발병이 종식됐다고 WHO가 공식 선언했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7월부터 현재까지 모두 20명이 감염되고 7명이 숨졌지만 석 달 만에 에볼라 퇴치국이 됐다. 백신이나 치료제 투여 없이 환자가 완치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아프리카 환자들은 물을 하루에 5리터씩 마셨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타릭 자사레빅 WHO 커뮤니케이션 담당관은 “탈수를 막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환자 회복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또 GPS(위성항법장치)로 감염자와 접촉한 수만 명을 일일이 대면 관리했다. 김 교수는 “의료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에볼라가 퍼지는 형국인데 의료 후진국인 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 종식 선언이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WHO의 지원을 받아 소아마비 퇴치 운동을 펴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교육과 백신 접종 체계를 잘 갖춘 것이 에볼라 퇴치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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