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날뛰게 하는 게 ‘초이노믹스?’
  • 안성모·조현주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1.0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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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00일 ‘최경환 경제팀’, 경제는 못 살리고 전셋값만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전셋값이 화제다. 매매가 6억원인 이 아파트의 전셋값이 5억5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무려 90%가 넘는다. 집을 사는 가격과 빌리는 가격에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아파트의 전셋값은 최근 두 달 사이 무려 7000만원이나 올랐다. 박근혜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취임 전부터 부동산정책에 칼질을 예고했다. 최 부총리는 지명 당일인 6월13일 기자들과 만나 “이미 한겨울이 왔는데 여름옷을 입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규제 정책에 대해 “과거 시장이 한여름일 때 만든 여름옷과 같다”며 완화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인 이른바 ‘초이노믹스’는 현 정권의 최고 실세라는 그의 위상에 걸맞게 거침없이 추진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하지만 취임 100일이 지나는 동안 ‘최경환 경제팀’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경기 부양을 통해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는 ‘초이노믹스’에 대해 당초 가졌던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 전셋값 폭등이 있다. 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 전셋값의 경우 2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종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적인 추세다. 반면 아파트 매매가의 경우 상승 폭이 한풀 꺾였다.

최 부총리가 업무를 시작한 후 3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 전세 시가총액은 30조8000억원이나 올랐다. 반면 아파트 매매 시가총액은 10조8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10월 4주 차 시세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전세 시가총액은 1189조6141억원에 이른다. 매매 시가총액은 1816조8456억원이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전세 시가가 24조6912억원이나 올라 매매가 증가분 5조9103억원보다 4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수요를 매매로 돌려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했다는 지적부터 나온다. 올해 1~9월 사이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3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 비해 2656만원 오른 가격이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전셋값 고공비행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고집해왔다.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사라고 강권하는 모습이다. 이를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기준 금리도 잇따라 인하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반짝 효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일부 지역에서 부동산 거래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세입자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지는 못했다. 그나마도 몇몇 인기 지역의 분양 시장에만 쏠림 현상이 나타났을 뿐이다. “강남 집값 올리려다 서민들만 죽게 생겼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대책의 근저에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부동산정책을 서민의 주거복지 차원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의 수단으로 여긴 셈이다.

금리 인하,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저금리 상황이 전셋값 상승이나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은 월세를 원하고 세입자는 전세를 원한다. 자연스럽게 전셋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함 센터장은 또 “집을 사는 수요 증가보다 전셋값 상승과 월세 전환이 더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정부 대책이 나와도 체감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이러한 반응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최근 부동산써브가 부동산중개업소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금리 인하가 전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6%가 ‘전세의 월세 가속화로 전세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독자적인 판단보다는 정부의 요구에 따른 결정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 부총리 취임 이후 연이어 금리를 낮췄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5월과 6월 ‘경기 회복을 어느 정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금리를 동결시킨 바 있다. 하지만 8월과 9월 ‘성장세 회복을 위해’ ‘경기가 나빠져 불가피’ 등 이유를 들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전셋값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빚을 내서 집을 사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세대란은 이미 예상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고제헌 주택금융공사 연구원은 “주택 임대 시장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부동산정책도 가격 안정화 혹은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던 과거와 달리 전세 비중의 감소와 함께 매매가 상승률과 괴리된 전세가 상승에 대한 대응이 강조되고 있다”고 밝혔다.

10월3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소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서민 거주 지역이 전셋값 상승 주도

전셋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서민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서울에서는 성북구, 금천구, 관악구 등이다. 재개발로 인한 이주 수요가 발생하거나 신혼부부와 학생 등이 많이 사는 곳이다. 수도권에서도 고양시 일산서구와 김포시 등 서울로 출퇴근하는 서민이 많이 사는 지역의 전셋값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이 서민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전셋값만 치솟게 해 서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 셈이다.

은행 대출을 확대하는 조치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고 연구원은 “주택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이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 대출 공급 확대는 전세 공급 감소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연구원은 또 “세입자 부담 완화를 위한 전세금 대출 확대도 단기적으로 세입자들의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전세 가격 상승을 가속화하고 세입자들의 리스크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도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급등하는 전셋값과 급격한 월세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이번 방안에도 역시 시장 반응이 싸늘하다. 임대주택 공급 확대의 경우 매번 등장하는 부동산 대책 단골 메뉴이고,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은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전셋값 상승을 잠재울 만한 ‘전세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의 경우 전세의 월세 전환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한 채 월세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지원 대상이 일부 저소득층으로 한정적인 데다 결국 빚을 얻어 월세를 내라는 식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금 사정이 나쁜 세입자 입장에서 당장은 대출을 받아 월세를 내려고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빚만 더 늘어나는 꼴이 된다. 전셋값 상승과 전세의 월세 전환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계소득 증가 등 근본 대책 필요

전셋값 폭등은 단지 주거 문제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맞닿아 있어 그 심각성이 더하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기준금리 인하가 있은 후 가계대출이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1~7월 월 평균 가계대출은 2조8000억원이었다. 그런데 8월과 9월 가계대출은 각각 5조5000억원에 이른다. 정부에서는 비은행권 대출 증가가 감소해 가계부채의 질이 개선됐다고 밝혔지만, 8월 한 달 9000억원으로 증가세가 다소 꺾였을 뿐 9월에는 이전 평균 1조5000억원보다 3000억원 더 많은 1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가계대출의 질이 오히려 악화할 우려가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에 대해 경고등이 켜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서민들이 부지기수다. 해외 신용평가기관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에 우려를 표했을 정도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8월29일 저금리 환경과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가 맞물려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104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한국 은행산업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부채 발생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주거 문제다. 전셋값이 계속 치솟을 경우 가계 부채도 가파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주거가 불안정한 서민 입장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부동산TF 위원장인 윤호중 의원은 “정부가 주거 불안 해소는 하지 않은 채 가계 부실만 늘리고 있다”며 “가계부채를 유발하고 주거 안정을 저해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 및 저금리 기조에 대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리는 가운데 서민의 가계소득이 증가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셋값으로 연소득의 두 배를 더 내기 싫으면 연소득의 10배가 넘는 돈을 대출받아 집을 사라는 게 서민 주거 안정 방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부동산 시장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단기간에 부양하기는 쉽지 않다”며 “대출 규제 완화나 저금리 대출 지원 등으로 완전히 회복세에 접어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팀장은 “결국 실질적인 가계소득이 증대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 대책 말고는 특별히 내놓은 게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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