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그대’, 잠룡인가 잡룡인가
  • 윤희웅 민(MIN)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 ()
  • 승인 2014.11.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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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주자 여론조사 1위 반기문 지지율에 숨겨진 함정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반 총장을 꽃가마에 올려놓았다. 여권에도, 야권에도 반 총장은 현재 가장 ‘쓸모’ 있는 연장이기 때문이다. 75세가 되는 2018년에 실제로 대통령에 취임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즉각적으로 유용한 카드이기 때문에 꺼내든 것이다. 본인이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가장 주목받는 차기 지도자 후보가 되고 말았다.

반 총장이 급히 필요했던 곳은 현 정권을 창출한 여권 핵심 세력이다. 이른바 ‘친박(親朴)’이다. 고분고분하던 여당이 고삐를 풀어버리려고 하는 상황을 당장 막아야 했다. 반기문 카드는 이러한 흐름을 막기 위해 필요했다. 반 총장이 유력한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뉴스 그 자체는 김무성 대표와 여당의 원심력을 제어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마침 한 여론조사(한길리서치 10월17일 조사)에서 반 총장의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이 40%에 육박한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3년 8월22일 인천국제공항에 환영 나온 대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 일각에서 반 총장을 거론하는 것도 배경은 비슷하다. 야당 비주류 일각에서 주류가 된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세력의 확장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함이다.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인물이 마땅히 없던 차에 현 야권과 정치적 인연이 있는 반 총장을 제법 괜찮은 깜짝 카드라고 본 것이다. 물론 이를 주도한 동교동계의 권노갑 상임고문 본인의 존재감 과시 의도도 있었겠고, 여권에서 반 총장을 독점하려는 것에 대해 김을 빼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10년 전 고건 전 총리 사례와 닮아

이러한 여야의 화려한 구애에 반기문 총장의 꽃가마는 분수 솟구치듯 하늘 위를 날고 있다. 실제로 반 총장은 매우 매력적이다. 국정 경험이 차기 지도자의 중요한 자격 요건인데 반 총장은 외교통상부장관 직을 수행했다. 그 전엔 외교 전문가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또 지금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반 총장이 첫손에 꼽힌다. 39.7%나 나왔던 반 총장 지지율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대에서 45.7%나 되는데 이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50대에서는 44%, 60세 이상에서는 49%나 나왔는데 이들 장년 및 노년층에는 국가적 자부심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지역이 중요한 우리 선거 구도를 감안하면 영호남 어디와도 연대할 수 있는 충청 출신이라는 것도 반 총장을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다. 더구나 현재 독보적 지지를 얻고 있는 대권 주자가 없다는 것도 반 총장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온갖 욕을 뒤집어쓰고 있는 여의도로부터도 떨어져 있어 흠집이 날 일이 없다. 임계치에 다다른 국민의 정치 불신 기류는 새 인물에 대한 갈구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반 총장으로 향하고 있다. 또 서로 끌어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여야 어디에서도 대놓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도 반 총장이 유력 주자이면서도 현실정치에 없으니 대통령을 흔들지도 않을 것이고 보면, 그만큼 고마운 차기 주자도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막강 후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레드카펫만 놓인 게 아니다. 반 총장 지지율을 과연 독자적인 정치적 지지율로 볼 수 있을까. 고건 전 총리 사례에서 보듯 아직은 새로운 대안에 대한 모색 과정에서의 관심 성격이 강하다. 반 총장이 어떠한 정치적 가치를 외쳐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타적 지지층이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은 정치 불신에 따른 반사이익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지 않은 시멘트는 기울기가 생기면 이리저리 흘러내리는 법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2004년과 2005년 고건 전 총리 역시 30%를 넘는 지지율을 자랑했다. 당시 안정적 리더십을 원해 고 전 총리를 초반에 주목하는 대중의 시선이 존재했지만 대선 시장이 채 열리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분명한 가치와 비전 그리고 오랜 시간으로 버무려지지 않은 지지층은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운 것이다.

2007년 1월16일 유력 대선 예비 주자이던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30~40대 지지율이 낮다는 점도 변수

우리 사회는 지금,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외교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답안을 내놓아야 한다. 반 총장에게 이것이 준비되어 있는지, 앞으로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40% 가깝게 나온 조사 결과에서 사회·경제적 문제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30~40대(30대 28%, 40대 32%)에서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지지율이 훨씬 떨어진다는 점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게다가 지지율이 높게 나온 조사 결과 뒤엔 특혜성 질문 구성도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기존 대권 주자들을 묻고 나서 다음 질문에서 반 총장을 별도로 언급하며 묻는 형태이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높게 나온 측면이 있다. 또 지금은 진보·중도·보수 모두에게서 관심을 받지만 정작 어느 정파를 택하면 이탈 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초기 안철수 현상과 비견된다고도 하는데 실은 제법 다르다. 당시 안철수 교수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근본적 희망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현상’이라는 표현까지 붙은 것이다. 지금 반 총장이 받고 있는 관심은 이러한 근본적 기대라기보다는 ‘마땅한 주자가 없어서’인 측면이 더 크다.

반 총장이 사진 속에서 걸어 나와 현실적 대권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첩첩산중을 헤쳐 나와야 한다. 회의적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그럼에도 앞으로 상당 기간은 유의미하게 언급되고 존재할 것이다. 앞서 말한 ‘정치적 필요’가 소멸되지 않는 한 말이다. 또 하나 개헌론이 살아 있는 한 역시 반 총장은 ‘황제주’의 위상을 유지할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확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치와 외치를 분리한다는 설명에 ‘외치의 반기문’이 떠올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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