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의 음흉한 ‘성 갑질’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1.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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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검사·장군·교수

사회 지도층의 성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전직 국회의장에 전직 검찰총장, 국립대 교수에 군 장성까지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할 유력 인사들이 성범죄 혐의로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이라 사실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사회 지도층의 성추문에 국민적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흐지부지 식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달라질 게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性) 갑질’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갑’의 지위를 가진 지도층 인사들이 ‘을’의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이른바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드러난 것이 이 정도라면 물밑에서 숨죽이고 있을 피해자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출범 초기부터 성폭력을 4대악 중 하나로 규정하며 성폭력 근절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운 박근혜정부로서는 ‘윗물 단속부터 철저히 하라’는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상황이다.

성폭력 근절의 책임을 진 검찰의 위신부터 말이 아니다. 대전고검장 출신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부산고검장 출신에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캐디(경기 보조원) 성추행에 이어 검찰총장 출신의 골프장 회장 ㅅ씨가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검찰권력의 최정점에서 일선 검사들을 호령했던 이들이 연이어 성추문에 휘말리면서 ‘성검찰 공화국’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특히 지난 11월12일 외부로 알려진 ㅅ회장의 성추행 의혹은 그가 검찰 총수를 지낸 최고위층 인사라는 점과 함께 ‘절대 갑’의 위치에 있는 골프장 회장이 ‘절대 을’의 입장인 골프장 여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대인 이 여직원 입장에서 ㅅ회장은 말 그대로 ‘최고의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갑’의 농담 한마디도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게 ‘을’의 현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당사자들의 주장은 엇갈린다. 성추문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이다. 여직원 측에 따르면, 2013년 6월22일 밤 10시쯤 ㅅ회장이 경기도 포천 시내에 위치한 골프장 기숙사로 찾아왔다. ㅅ회장은 당시 샤워 중이던 여직원을 나오게 한 뒤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또 ‘내 아내보다 예쁘다’ ‘애인 해라’ 등 터무니없는 말로 치근대다가 5만원을 손에 쥐여주고 돌아갔고, 치욕감을 느낀 여직원은 돈을 찢어버렸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여직원은 골프장을 그만뒀다. 이후 아버지까지 피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반면 ㅅ회장 측은 “어떤 부적절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며 “허무맹랑한 고소에 당당하게 법적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단 기숙사를 찾아간 사실은 인정했다. 방문 이유에 대해서는 퇴사하려는 여직원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골프장 간부도 함께 갔었고 숙소에 있던 직원 3명에게 모두 5만원씩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야 고소를 한 데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분위기다.

여직원 설득 굳이 밤늦게 방까지 찾아가 하나

일각에서는 골프장 경영권 다툼으로 인해 이번 사건이 불거진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ㅎ골프장의 운영회사는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ㅇ씨가 가장 많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ㅅ회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시사저널이 해당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결과 ㅅ회장의 외아들이 지분 22%를 가진 2대주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본인과 아내, 딸 등 가족 명의 지분을 합치면 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운영 주체도 마찬가지다. 해당 회사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ㅅ회장의 아내 ㅈ씨가 2006년 12월부터 2009년 7월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ㅈ씨는 남편인 ㅅ회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기에다 ㅅ회장의 장녀가 현재 감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0년 6월에는 ㅅ회장이 인천의 한 저축은행을 찾아가 경영진에 폭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저축은행의 회장이 골프장 부지 매입비용으로 68억원을 빌려줬는데 돌려주지 않는다며 대여금 청구 소송을 낸 게 화근이었다. 당시 소송 대상은 골프장 운영회사였다. 그런데 ㅅ회장은 자신에게 소송을 걸어왔다며 4시간여 동안이나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골프장의 실제 주인이 ㅅ회장일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거론된다.

ㅎ골프장의 지분 구조와 운영 주체 등을 놓고 볼 때 경영권 다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여직원 성추행 여부와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성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게 음모론이다. 그럴듯한 사안을 끼워넣어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킨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직원은 1년 4개월여가 지난 후 고소를 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줘 고소한다”고 밝혔다. 권력자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인 만큼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결단을 내리기까지 걸린 1년 4개월여 시간은 길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대목은 ㅅ회장의 해명이다. ㅅ회장 측에서 밝힌 것처럼 퇴사하려는 여직원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밤늦은 시간에 여성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방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었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수도권의 한 골프장 대표는 “골프장이라는 곳이 그렇잖아도 말이 많은 동네인데 회장이라는 분이 한밤중에 여직원 기숙사를 찾아갔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 지도층의 성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격려차’ ‘위로차’ 등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이 이번에도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군대 내 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 10월15일 국방부 앞에서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여군 ㅇ대위의 1주기를 맞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리의 상아탑’ 대학도 성추문으로 시끌

ㅅ회장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11월12일 또 한 명의 사회 지도층 인사가 성추문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 공공보건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수장을 지낸 서울대 의대 ㅇ교수다.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ㅇ교수가 최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ㅇ교수는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근무하던 2013년 8월께 당시 계약직이던 20대 여직원의 신체 일부를 만지거나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여직원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다양한 보직을 수행했으며, ㅇ교수가 핵심 역할을 해온 학회에서도 행정직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있은 후 사직했고 1년여가 지난 올해 9월 ㅇ교수를 경찰에 고소했다. ㅇ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차기 의료원장 선임 과정의 음모 같다”고 주장했다.

ㅇ교수는 올해 8월 말 사표를 제출해 9월1일자로 국립중앙의료원장에서 물러났다. 임기 만료를 3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돌연 사퇴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교수로서 정년을 마무리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추문이 불거지려고 하자 급히 자리에서 물러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 내에서도 성추문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서울대 수리과학부 ㄱ교수가 여학생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학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ㄱ교수는 학계에서 촉망받는 수학자로 국제 수학계의 저명인사다.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터졌다. ㄱ교수는 7월 말 회식을 마친 후 한강공원 벤치에서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던 20대 여학생 인턴을 무릎에 앉히고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여학생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인턴 직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후 서울대 내부에서는 ㄱ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추가 증언이 이어졌고, 이에 서울대 인권센터가 자체적으로 ㄱ교수에 대한 진상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성 군기’ 문란으로 군인사회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별을 단 장성도 예외는 아니다. 육군본부 중앙조사단은 지난 10월9일 수도권 한 부대의 사단장을 맡고 있던 ㅅ소장을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역 사단장이 성추행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은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ㅅ소장은 8월과 9월 두 달 동안 자신의 집무실에서 여성 부사관을 뒤에서 강제로 껴안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육사 동기 중에서 가장 잘나가던 ㅅ소장은 장성 인사에서 요직으로 꼽히는 육군본부 정보작전부장으로의 영전을 앞두고 있었다. 군 인사 검증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사건은 특히 피해 여군이 다른 부대에서 성추행을 당해 전속돼온 부하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ㅅ소장은 그런 여성 부사관을 격려·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불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ㅅ소장은 또 다른 여군 한 명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군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남성 중심의 군 문화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성 군기 위반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0년 13건에서 2011년 29건, 2012년 48건, 2013년 59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8월 말까지 34건이 발생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계급문화에서 상관이 강요할 경우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폐쇄적인 조직 특성상 사고가 일어나도 은폐되기 쉽고, 설령 밝혀지더라도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2013년 10월16일 여군 장교 ㅇ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ㅇ대위의 심리 부검 결과 직속상관이던 ㄴ소령의 성추행과 모욕,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해 우울 기분이 있는 적응장애를 겪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주요 우울장애라는 정신질환 상해를 입은 것으로 분석됐다. 앞서 지난 3월 군사법원은 강제 추행의 정도가 약하고 초범이라는 이유를 들어 ㄴ소령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성범죄 무관용의 원칙을 강조하던 국방부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대표적인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상당히 강화됐다. 문제는 법 적용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다. 범행을 부인하고 변명만 일삼으며 버티기에 나서는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게끔 합당한 처벌을 내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권력을 쥔 사회 지도층에도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져야만 한다. ㅅ회장을 고소한 골프장 여직원이 “검찰총장을 하고 나온 위세와 권력으로 유전무죄·무전유죄 사회적 관행이 반복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권력층은 여전히 옛 습관에 젖어 있어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민의 인식도 한층 성숙해졌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더 이상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상당수 권력층은 여전히 옛 습관에 젖어 있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힘없고 지위 낮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 자신이 하는 그릇된 행동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이렇게 신경 써주는 걸 영광으로 알라’는 식의 비뚤어진 권위의식이 감춰져 있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향유하던 권력층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자신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경각심이 커졌지만 내 문제로 보지 않으니까 조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자신의 요구가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으로 본다. 이처럼 잘못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성차별뿐 아니라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 성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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