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쓰레기 데이터’ 왕창 올려봤자 소용없다
  • 이규대·엄민우·조해수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11.1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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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정부의 현장을 가다’ 기획연재 에필로그 정부-민간 ‘협치’ 없인 성공 어려워

디지털 사회에서 ‘참여’는 어떻게 디자인될 수 있을까. ‘열린 정부’가 공개하는 방대한 공공데이터는 과연 사회에 혁신을 일으키는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지난 한 달간 시사저널 특별취재팀의 기획연재 ‘열린 정부의 현장을 가다’가 화두로 삼았던 질문이다. 취재팀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영국·호주·미국 등 ‘열린 정부’ 선진국을 차례로 방문해 각국 정부 담당 부처 공무원, 관련 업계 및 시민단체 관계자, 학계 전문가를 두루 만났다.

본격적인 해외 현지 취재에 앞서 한국의 상황부터 살폈다. 시행착오의 흔적이 역력했다. 정책 추진의 당사자인 공무원들부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빅데이터 분야 비전문가인 일선 공무원들이 ‘단기 실적’에 내몰리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민간업체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데이터 관리 방식이 없다” “부처 간 칸막이가 높다” “민간과의 접점이 적다” 등의 우려를 내비쳤다. 중·장기적 비전을 염두에 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열린 정부’는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 영역에 두루 걸쳐 있는 넓은 개념이다. 취재팀은 각국 ‘열린 정부’가 특히 강점을 보이고 있는 분야들에 주목했다. 영국의 산업, 호주의 교육, 미국의 정치 등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각국 정부의 정책 운용 및 철학이 무엇인지를 현지에서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선진 ‘열린 정부’, 데이터 질 향상에 역량 집중

영국은 비영리 민간 전문 기구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관련 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호주는 일선 대학들을 중심으로 전문 인력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키워내고 있다. 적극적으로 공공데이터 개방에 나서면서 프라이버시 보호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로비스트와 정·관계 인사가 유착하는 금권(金權)정치 구조에 ‘정보공개’가 어떻게 균열을 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탈정치적인 독립 민간단체가 정치자금을 추적·공개하는 것이 가능한 미국, 이것이 불가능한 한국의 제도적 환경이 선명하게 대비됐다.

세 선진 ‘열린 정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정책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데이터의 ‘질’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시민의 수요에 맞는 양질의 데이터를 공급하는 데 자체 역량을 집중한다. 둘째, 공개된 공공데이터의 실질적 활용은 기업·학계·시민단체 등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한다. 공공데이터의 공급자인 정부, 소비자 및 활용자인 민간이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협치’(協治)야말로 이들 정부의 성공 비결이었던 셈이다.

‘열린 정부’ 선진국에 대한 연속 보도를 마무리하면서, 취재팀은 공공데이터를 직접 활용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좀 더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보기로 했다. 각종 IT 콘텐츠가 세상에 공개될 즈음엔 흔히 ‘베타테스터’들이 활동하기 마련이다. 게임 등 제품을 정식 출시하기 직전 문제점 및 개선 방안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공공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을 보장하는 ‘공공데이터법’이 제정되고 약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야말로 시행착오를 겪는 ‘정부3.0’의 베타테스터일 것이다. 이들의 경험담은 취재팀이 해외 ‘열린 정부’에서 보았던 것과 매우 상반됐다.

 

■ “지자체별로 포맷 달라 취합 어렵다”

주차공간 정보 앱 ‘모두의 주차장’ 김동현 대표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주차장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 ‘모두의 주차장’은 15만명 이상이 다운받은 인기 앱이다. 이런 ‘성공 사례’조차 현재의 공공데이터 개방 환경에서는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우선 널려 있는 정보에 대한 통합 작업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김 대표는 “지자체별로 정보를 다루는 포맷이 다르다 보니 이를 취합해 활용하기가 어렵다. 표준화가 돼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신 데이터를 묵혀뒀다가 연말에 ‘구데이터’가 됐을 때 한꺼번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전반적으로 민간의 활용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주차장 정보의 경우에도 위치 및 규모에 대한 정보뿐만이 아닌, 요금 등 실수요자에게 더 필요한 정보들이 있다”고 말했다.

 

■ “교육 데이터 대부분 쓰기 힘든 수준”

정인모 아이엠컴퍼니 대표

아이엠컴퍼니가 제작한 앱 ‘아이엠스쿨’은 각 학교의 가정통신문 및 일정 등의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당사자는 매일 번거로운 수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정 대표는 “직접 일일이 각 교육청 사이트 등을 뒤져 자료를 모아 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개하는 자료는 필요한 정보가 이용 가능한 형태로 제대로 취합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앱 개발에 적합한 형식으로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정 대표는 취합되지 않은 채 공개된 정보의 질 자체도 대부분 활용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대다수 교육 공공데이터는 연감에 올릴 것을 나눠서 올린 수준이라 거의 쓸 수가 없다. 잘못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며 “시장의 파이를 키우려면 다른 ‘팔로워’들이 나와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제대로 된 데이터 개방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 “품질 떨어지는 데이터 너무 많다”

공공데이터 플랫폼 개발업체 임원 ㄱ씨

민간이 공공데이터를 쉽게 제공받아 활용하도록 돕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임원 ㄱ씨는 ‘정부3.0’ 초반을 이렇게 회상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보공개 포털에 주로 문서 형태의 첨부파일로 공개가 많이 됐다. 데이터 자체를 개방해야지, 문서로 가공 정리해 올리는 것은 별 효용이 없다.”

이후 상황은 점차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품질이 떨어지는 의미 없는 데이터가 상당수다. 정부가 관리에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고는 하지만, 데이터 자체가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도 많다.” 개방하는 양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품질 확보가 우선이라는 것이 ㄱ씨의 말이다. “제공되는 데이터 품질이 제일 중요하다. 정부는 자신들이 가진 공공데이터가 무엇이고, 이 중 무엇을 어떻게 좋은 품질로 가공해 공개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쓰레기 데이터’ 많을수록 시민들은 멀어져”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공개하는 공공데이터의 질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공공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민 및 개발자들의 오픈커뮤니티 ‘코드나무’의 활동가 강현숙씨는 “모든 부처에 일률적으로 목표가 할당되다 보니 시민들에게 불필요하고 활용도가 떨어지는 데이터라도 공개해 목표치를 맞추려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쓰레기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공공데이터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강씨는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데이터는 적고, 신청을 해도 데이터를 받기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시민들의 수요를 파악해 공개가 시급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민간의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들이 한 것처럼 발표하거나 표절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민간과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일선 공무원들의 기본 마인드도 개선 대상으로 지적된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외국은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을 중시하는데 우리는 유독 정보를 쥐고 있는 곳이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끌어모아 쌓아두고 정부3.0을 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정보공개에 대한 폐쇄적 마인드와 공급자 위주의 생각이 제대로 된 정책 수행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개해서 괜히 문제 일으킬 바에

야 왕창 올려 평가만 잘 받자’ 식의 정보공개는 이를 활용하는 사용자 측과 공급자인 정부 사이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공공데이터의 질 끌어올리기, 민간과의 효과적인 협업. 이것이야말로 지금 정부3.0 앞에 놓인 핵심 과제다.


2008년 설립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운동을 펼쳐 사회의 투명성 및 책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온 비영리단체다. 전진한 소장은 현재의 정부3.0이 민간과의 효과적인 협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3.0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공개 청구 과정에도 문제가 많다고 들었다.

각 부처가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미루다가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다. 정보공개에 대한 정부의 기본 인식 자체가 문제다. 불과 4년 전 국가기록원에 박정희·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을 청구해서 한 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저작권 위반’ 운운하며 계속 연락이 왔다. 전 세계 사례를 뒤져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4년 전의 이런 인식 수준에서 지금 얼마나 많이 개선됐는지 의문이다.

정부3.0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것 하나를 꼽는다면.

우선 공무원들이 단 한 달만이라도 민간 IT회사에 몸담아볼 필요가 있다. 주로 정부3.0 정책을 수행하는 분들은 각 부처 과장급인데 대다수가 경력 20년을 넘는다. 공공데이터를 주로 활용하는 시민이 20~40대인데, 수요를 파악하는 데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정보가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민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과의 협력이 미흡하다는 것인가.

몇 가지 상징적 사건이 있다. ‘정보공개 시스템’이라는 정부 행정정보공개 사이트가 있는데 오류가 많다. 이 사이트를 만들 때 실제로 사용할 민간의 의견을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올라온 정보들을 보면 이른바 ‘힘 있는’ 부처일수록 공개에 소극적이다. 그나마 공개한 자료들도 커피 구입, 출장 내역 등 시민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게 태반이다. 정보의 중요성으로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적을 채우기 위해 공개되고 있다. 원래 정부3.0 정책은 민간과 함께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인데, 추진 과정에서 민간은 배제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 민간 인사들도 어느 정도 참여하지 않나.

자문을 제공하는 정도에 그친다. 내부 추진 과정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도 행정학과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교수들은 행정 전문가이지만 어떻게 정보가 유통되고 활용되는지에 대해선 어둡다. 해당 분야의 사업자 및 시민단체, 학계 관계자들로 위원회를 만들어 공공데이터 개방에서 가장 핵심 정보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1년 정도 고민하고 개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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