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도박, ‘소비세’ 악마를 불러내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4.11.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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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해산하고 12월14일 총선 역대 정권 소비세 건드렸다 참패

아베 총리는 APEC과 G20 정상회담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1월18일 “국회를 해산하고 12월14일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올해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하자 경제가 위축됐다. 실질 국내총생산이 2분기에 7.3%, 3분기에 1.6% 감소했다. 아베 총리는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자 내년 10월로 예정했던 소비세 인상(8%→10%)을 2017년 4월로 연기하는 데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며 중의원 해산을 선택했다.

하시모토의 참회 “소비세 인상 사죄”

일단 민주당의 집요한 공격이 문제였다. 지난 10월 가을 임시국회는 난항을 거듭했다. 민주당은 정치자금을 빌미로 오부치 유코 경제산업상과 마쓰시마 미도리 법무상을 계속 공격했고 이 둘은 결국 물러났다. 민주당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1월7일 외유에 앞서 후생노동위에 출석한 아베 총리는 야당의 출석 거부로 1시간 30분 동안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 탓에 ‘더 이상 민주당의 페이스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국회 해산을 결정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선거를 다시 실시해 야당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다.

중의원 해산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는 아베 총리. ⓒ EPA연합
특정비밀보호법과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이 계속 공격받으면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도 우려됐다. 여기에 더해 재무성 관리들의 반감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아베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미루려는 움직임을 감지한 재무성 관리들은 자민당 파벌의 리더 격인 모리 전 총리를 비롯해 자민당 의원들을 만나 “소비세 인상을 연기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자칫하면 관료들에게 휘둘릴 수 있겠다는 판단에 국회 해산을 서둘렀다는 후문이다.

왜 아베 내각은 굳이 소비세를 건드려 위기를 불러온 걸까. 일본 정부는 매번 소비세의 저주에 의해 몰락했다. 보통 조세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법인세·소득세·소비세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법인세나 소득세는 쉽게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소비세를 새로운 내각이 들어설 때마다 건드려왔다.

하지만 소비세를 통한 증세의 역사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1979년 1월 오히라 내각은 재정 건전화를 목적으로 일반소비세 도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반감이 커지자 백지화를 선언했음에도 같은 해 10월 치러진 총선거에서 대패했다. 1987년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매출세’라는 이름으로 소비세를 도입하려 했지만 이 역시 국민적 반발에 부닥쳐 폐지됐다.

1988년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 시기에 와서야 소비세가 최초로 도입된다. 소비세는 1989년 4월부터 세율 3%로 시행됐다. 소비세로 생기는 국민의 세 부담 증가분은 연간 3조3000억 엔에 달했다. 하지만 소비세를 시행하고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다케시타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케시타 내각을 이어받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정권에 저주를 내린 소비세를 폐지하고 국민복지세 구상을 발표했는데 이것 역시 연립정권의 반대에 부닥쳐 발표 다음 날 바로 폐지해야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1997년 4월 소비세를 5%로 인상했다. 국민의 부담액은 9조 엔 정도였다. 하지만 하시모토 총리 역시 소비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하고 선거에서 대패했다. “재정을 건전화하겠다는 일념만으로 너무 서두른 나머지 경제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소비세 인상을 결정해 결과적으로 불황에 빠지게 한 점에 대해 사죄한다”라는 하시모토 전 총리의 참회가 소비세의 저주를 증명할 뿐이었다.

역대 정권들이 저주받는 모습을 지켜본 민주당은 2008년 9월 “소비세를 4년간 올리지 않겠다”는 선거 공약으로 정권을 쟁취하며 54년 자민당 독주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학습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을 이어받은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6월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10% 인상을 용기 있게 발표했다. 총리의 입에서 10%라는 숫자가 나오자마자 민심은 동요했고 선거는 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54년 만에 어렵게 잡은 정권이 소비세 때문에 기울기 시작했다. 이어 등장한 노다 전 총리 역시 ‘2014년 4월에 8%, 2015년에는 10% 소비세를 인상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선거를 치렀으나 결국 대패했고 정권은 단 3년 만에 자민당의 품으로 돌아갔다.

소비세 인상으로 재정 문제 해결하려는 아베

소비세의 저주를 알고도 아베 총리 역시 소비세 인상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본 재정 구조 때문이다. 2014년 일본의 일반회계예산은 95조9000억 엔이다. 조세 수입은 54조6323억 엔으로 나머지 43%에 해당하는 41조2500억 엔은 공채를 발행해 충당하고 있다. 세출 구조를 보면 95조9000억 엔 중 국채 상환비가 13조1383억 엔, 국채 이자 상환비가 10조1319억 엔이다. 정부 예산의 24.3%가 오로지 빚을 갚는 데 사용되고 있다. 국채 금리가 1% 올라가면 이자 부담이 1조5000억 엔 늘어날 정도다. 여기에 사회보장비가 30조5175억 엔으로 31.8%를 차지하고, 지방 교부비도 16조 엔 정도로 16.8%에 달한다. 이 세 가지 부문을 합하면 72.9%다. 인구 고령화로 사회복지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국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 부채를 개혁하지 않고는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다.

소비세 인상 시기를 2017년으로 연장하고 총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아베노믹스가 만들어낼지도 모를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모두가 피하지 못한 소비세 인상의 저주가 아베 내각을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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