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사회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11.2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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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지냈던 사람으로부터 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건네온 말은 ‘돈 좀 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세살이를 하는데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더 올려 받겠다고 해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습니다. 딱한 사정을 잘 아는 같은 세입자 처지에서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오래도록 먹먹했습니다. 이처럼 급전을 빌려달라는 간절한 요청은 최근 들어 더욱 자주 들려옵니다. 이른바 전세대란 탓입니다.

공급과 수요가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 왜곡이 바로 전세난입니다. 내주겠다는 전셋집은 적고 얻겠다는 전셋집은 많아서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전셋집이 품귀를 빚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금이 매매가에 거의 육박하기까지 합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세난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전세보증금이 올라, 또 월세가 올라 한숨 쉬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게다가 담뱃값도, 자동차세도 올랐습니다. 모두 서민들에게 부담이 큰 지출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질적인 가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보다 자꾸 쉬운 길 쪽을 기웃거립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해 손쉽게 빚을 지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돈을 풀어서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당장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 즉 ‘초이노믹스’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셉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 부총리는 소득 주도형 성장 정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당장 찐빵의 팥소 같은 ‘소득 주도’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1980년대 미국 경제를 한창 달뜨게 했다가 여러 부작용을 남기고 사라진 ‘레이거노믹스’나 초기에 환호를 받다가 최근 들어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를 듣는 ‘아베노믹스’처럼 초이노믹스의 미래도 현재로서는 매우 불투명합니다. 오히려 가뜩이나 위태로운 가계부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경제정책은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국정 설계입니다. 숙고하고 또 숙고해서 내놓아도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먼 미래 세대까지 배려하는 깊이가 보태져야 합니다. ‘창조경제’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돈 풀어 경제 살리기’라는 쉬운 길만 찾아서는 곤란합니다. 빚이 아닌 소득을 안겨주는 ‘진짜 경제’를 추구해야 합니다. 시름에 겨운 서민들에게는 지금 상황에서 한 계단만이라도 더 오를 수 있도록 해줄 희망의 사다리가 절실합니다. 빚으로 엮은 사다리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지금 자신을 수렁에서 벗어나게 해줄 진짜 사다리가 나타나길 열망하는 국민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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