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검장, 2인자 넘어 '쩜오' 등극?
  • 노현웅│한겨레 사회부 기자 ()
  • 승인 2014.11.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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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부 폐지 후 검찰총장 위상 약화…중앙지검장이 실질적 사령관 역할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가게무샤(그림자 무사)가 돼야 한다. 그림자에 머물러야 한다. 사실상 중요 사건 대부분을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총장 자리를 노리기 시작하면, ‘과천’(법무부) 또는 ‘강북’(청와대)과 직거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총장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특별수사에 밝은 한 전직 검찰 간부는 몇 해 전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이자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이 비일비재한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이 ‘윗자리’를 탐하면 중립성 논란 등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었다. 이 간부가 근심 어린 말을 내뱉은 시점은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물망에 오르던 2011년 무렵이었다.

역대 중앙지검장, 권력 핵심과 핫라인 구축

한상대 전 총장이 과천 또는 강북과 ‘직거래’를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한 후 사건 처리 결과를 놓고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먼저 당시 검찰은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대선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던 BBK 의혹의 당사자인 에리카 김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은 수사팀의 강한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개인 비리로 마무리됐다. 검찰은 권력 핵심부와 가까운 곳에 제기된 의혹을 ‘클리어(clear)’해주는 역할을 맡았고, 이듬해 그는 그토록 원하던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2월2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대 전 총장 이전에도 ‘직거래’ 의혹은 계속 있어왔다.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도 지검장 재직 시절 ‘차기 총장 1순위’로 거론되곤 했다. 특히 노 지검장 시절 정치권에서는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한명숙 전 총리 뇌물 수수 사건 등과 관련해 지검장이 김준규 전 총장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직거래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가게무샤’가 전면에 나서면서 중립성 논란이 계속됐던 셈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948년 서울지검으로 개청했다. 서울지검장은 검사장 중에서 임명돼 왔는데, 2004년 서울중앙지검으로 개편되면서 고검장급으로 격상됐다. 그러면서 ‘검찰 조직 빅4’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4명이 핵심 요직으로 손꼽힌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고, 대신 서울중앙지검에 특수4부가 새로 설치되며 서울중앙지검장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지금 서울중앙지검에는 30개 수사 부서에, 200명 넘는 검사가 소속돼 있다. 명실상부한 검찰 조직 ‘넘버2’이자 실질적 야전사령관으로 위상이 강화된 것이다.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 ⓒ 시사저널 박은숙
‘방산 비리 합수단’은 총장의 반격 카드?

그 사이 검찰총장의 입지는 크게 좁아들었다. 특히 중수부 폐지의 여파는 상당했다. 총장은 자신이 직접 휘두르던 큰 칼을 내려놓아야 했다. ‘검찰은 수사 결과로 말한다’는 불문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수부가 사라진 대검찰청은 실권 없는 참모본부로 보이기 십상이다. 더구나 검찰에 대한 인사권은 법무부장관이 틀어쥐고 있다. 인사권도 수사권도 없는 총장이, 해당 사건마다 직접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사들을 호령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국가 최고 사정기관의 수장인 검찰총장이 밖으로 드러나는 발언을 통해 검찰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그동안은 총장이 직접 책임지는 중수부 수사를 통해 의중을 밝히고 전국 검찰청에 사실상 지휘명령을 내려온 셈인데, 이제는 그처럼 선 굵은 총장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서울중앙지검장은 2인자를 넘어 ‘쩜오’(1.5)를 향하고 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정권에 고분고분한 검찰의 행보가 계속되면서, 최근 검찰 안팎에서는 “총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로 정치적 위기에 부닥친 정권을 위해 ‘돼지머리 수사’로 이름 붙인 유병언 일가 수사에 골몰했다. 군 병력까지 동원한 유례없는 추적의 결과물로 검찰은 허망한 주검만 찾아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명예훼손이 도를 넘었다”고 언급하자, ‘SNS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황당한 대책을 발표하며 망신만 샀다. 총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검찰 안팎의 아쉬움은 ‘김진태 총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을 넘어, ‘권력의 외풍을 막으며 수사를 챙기는 검찰총장 본연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중의적 표현인 셈이다.

이렇게 존재감이 약해진 검찰총장과 ‘쩜오’ 서울중앙지검장 사이의 묘한 역학관계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김진태 총장은 가토 전 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 대해 “이런 사건을 어떻게 기소하느냐”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가토 전 지국장은 명예훼손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3차례나 소환조사를 당한 뒤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반성문을 쓰건 정정보도를 하건 (박 대통령의) 처벌 의사를 돌릴 기회를 주기 위해 3차례나 부른 것인데, 계속해서 잘못이 없다고 버티는 통에 기소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심기를 먼저 살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총장 의견에도 눈감아가며 사건을 처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목에서 방산 비리 합수단의 수사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은 대검 중수부의 후신 격인 반부패부 산하에 방산 비리 합동수사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합동수사단장은 ‘특수통’으로 손꼽히는 김기동 고양지청장에게 맡기고, 수사 상황은 대검에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파견 검사 숫자만 18명에 군 검찰,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 정부 부처 소속 직원 105명으로 구성된 ‘역대급’ 합동수사단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에 있던 특수3부 인원을 대부분 합수단으로 돌리고, 이를 대검에 직접 보고하게 한 점에서, 임기 1년여를 남긴 김 총장이 처음으로 자신의 책임 아래 수사를 벌이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 얘기가 부쩍 많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특수통인 김 총장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수사 결과에 따라, 총장의 위상은 물밑으로 더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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