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빅딜 봇물 터진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2.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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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한화 2조원대 M&A…LG·GS 등도 방계 기업과 합종연횡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은 11월26일 2조원 규모의 초대형 빅딜을 발표했다. (주)한화가 삼성테크윈 지분 32.4%(8400억원)를 인수하고, 한화에너지와 한화케미칼은 삼성종합화학 지분 30.0%와 27.6%(1조600억원)를 나눠 인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번 거래로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의 합작 자회사인 삼성탈레스와 삼성토탈의 경영권까지 넘겨받게 됐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매각 대상 회사의 임직원은 물론이고, 그룹의 고위 인사들조차 “우리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시장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9월부터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분할, 삼성웰스토리 분사, 제일모직과 삼성SDI 합병,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 삼성SDS 상장 등이 이어졌다. 조만간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상장도 예정돼 있다. 비핵심 사업으로 분류되는 석유화학 및 방산 부문까지 매각하면서 주력 사업인 전자와 금융, 중공업 및 건설 등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사진 공동취재단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청와대 제공
한화그룹도 ‘규모의 경제’로 원가 절감과 사업 다각화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한화그룹의 방위사업 부문 매출은 1조184억원으로 국내 3위를 기록했다. 삼성테크윈(9635억원), 삼성탈레스(6176억원)를 인수하면서 한국항공우주산업(1조3452억원)과 LIG넥스원(1조2082억원)을 제치고 국내 방산업계 1위로 올라서게 됐다. 석유화학사업 역시 18조823억원으로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17조5452억원)을 제치고 업계 1위가 된다. 한화그룹의 재계 순위는 한진그룹을 제치고 9위로 한 계단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은 이번 빅딜이 3세 승계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번 거래는 민간 회사 차원에서 진행된 자율 빅딜의 첫 사례”라며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주주사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그룹 측도 “이번 인수로 한화그룹은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생산 규모를 세계 9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며 “나프타-콘덴세이트-LPG로 다각화된 원료 포트폴리오로 북미나 중동의 석유화학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당초 한화는 삼성테크윈의 인수 의사만 삼성 측에 타진했다. 그런데 협상 진행 과정에서 매각 대상이 늘어났다. 삼성이 석유화학사업도 매각 대상에 추가하면서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일가의 재가 없이 이런 빅딜을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3세들이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지분만 현금화해도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석유화학 및 방산사업 빅딜 역시 후계 구도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현재 삼성종합화학 지분 4.95%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와의 거래로 이 사장은 1000억원 가까운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이 자금 또한 향후 승계에 필요한 지분 매입이나 세금 납부 등에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승연 회장 일가도 승계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을 각각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두게 된 한화에너지는 현재 여수와 군산에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691억원, 298억원이다. 한화에너지는 매년 그룹 계열사의 지원을 받으며 급성장했다. 2013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4434억원, 1622억원이다. 하지만 빅딜을 주도한 한화에너지가 화학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11월27일 논평을 통해 “한화에너지는 2008년 한화건설이 보유한 지분을 매각해 한화S&C의 100% 자회사가 됐다”며 “인수 주체로 한화케미칼 외에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인 한화에너지가 포함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한화 “오너 일가 후계 구도와 무관” 

재계에서는 한화에너지의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S&C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한화가의 3형제가 지분 모두를 보유하고 있다.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이 50%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그룹 디지털팀장과 삼남인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도 각각 25%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의 빅딜로 한화에너지의 몸집이 커지면서 100% 지분을 보유한 한화S&C의 기업 가치 또한 높아질 것”이라며 “향후 한화S&C가 상장하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 하버드 대학 동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실장이 이번 협상의 물밑에서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벌 오너 일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래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11월6일 공동으로 무인경비회사인 에스엔에스영상정보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에스엔에스에이스가 물적 분할해 설립된 회사다. 이 회장이 이 법인의 지분 49%(15억원 상당)를 매입하는 형식으로 합자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회사의 용도에 대해 두 그룹은 말을 아끼고 있다. 한화그룹 측은 “오너 일가끼리의 거래인 만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사업의 수익성 제고 차원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CJ그룹 측도 “단순한 투자 목적”이라고만 말했다.

그런데 합자회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승연 회장은 2012년 수천억 원의 손실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에스엔에스에이스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 회사는 그동안 한화 계열사의 경비 용역을 독점하며 고성장을 이어왔다. 내부 거래 비중이 73%에 이른다. 에스엔에스에이스는 2013년 3월 실소유자인 김승연 회장 명의(100%)로 주주를 변경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김 회장 입장에서는 내부 거래율을 희석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에스엔에스에이스가 최근 에스엔에스영상정보로 회사를 분할하고, 이재현 회장 측에 49%의 지분을 넘긴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향후 CJ그룹이 지분만큼 일감을 몰아줄 경우 내부 거래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CJ그룹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다. 에스엔에스영상정보에 지분 49%를 출자한 회사는 C&I레저산업이다. 이 회사는 2006년 3900억원 규모의 ‘굴업도 오션파크 개발 사업’을 위해 설립됐다. 현재 이재현 회장(42.11%)과 장남 선호씨(37.89%), 장녀 경후씨(20%)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이 회사가 이 회장 일가의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굴업도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개발 사업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번에 C&I레저산업이 에스엔에스영상정보 지분을 취득한 것도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 아니겠느냐고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는 최근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업체인 실리콘웍스를 인수했고, 물류회사인 범한판토스의 인수도 추진 중이다. 실리콘웍스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사촌인 하국선씨가 운영하던 회사다. 범한판토스 역시 구 회장의 6촌 동생인 구본호씨가 대주주로 있다. GS그룹의 지주회사인 (주)GS도 지난해 사돈 기업인 LG상사와 함께 STX에너지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GS에너지를 통해 방계 회사인 코스모신소재 인수를 검토 중이다. 코스모그룹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동생 허경수 회장이 운영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실명 전환한 회사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개인 회사인 C&I레저산업이 49%의 지분을 출자해 주목된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2013년 6월 C&I레저산업이 추진했던 굴업도 개발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승연·이재현 설립한 경비회사 용도는?

이렇듯 재계의 지배구조가 급격히 소용돌이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계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만 목을 맸다. 재벌 기업이 2세나 3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핵 분열했고, 생존 전략 차원에서 사업 다각화 전략을 고수했다. 알짜 사업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 기업끼리도 경쟁할 정도였다.

2013년 초 불어 닥친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재계의 무차별 확장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그룹 물량에 안주하면서 몸집을 키우던 재벌 기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국회는 물론이고 공정위와 국세청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재벌들의 확장 전략에 급제동이 걸렸다.

국내 제조업의 위기론도 재벌 기업의 구조조정에 불을 붙였다. 갈수록 기술력이 향상되고 있는 중국과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의 협공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재벌 기업은 너도나도 비상 경영을 선포하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이번 빅딜은 과거 정부가 주도한 반강제적인 구조조정과 차원이 다르다”며 “‘지금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 향후에도 유사한 빅딜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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