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울화통에 영웅이 된 광해군
  •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2.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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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왕의 얼굴> 등 사극, 젊은층의 정치적 열망 담아

과거 사극에선 주로 전쟁 영웅이나 건국 영웅, 아니면 계유정난처럼 드라마틱한 정변을 일으킨 지도자가 각광받았다. 

반면 요즘 사극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 대중의 정치적 열망이 분출되는 장으로 인식된다. 특히 젊은 시청자층, 즉 네티즌의 생각과 욕구가 사극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요즘 사극은 정사의 기록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배경에서 조선 사극 영웅의 계보가 2000년대에 다시 쓰였다.

최근 사도세자를 내세운 <비밀의 문>이 방영되고 있는 가운데, 광해군을 내세운 <왕의 얼굴>이 새로 시작됐다. 영화계에서도 광해군을 내세운 <광해>가 이미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바 있고, 내년엔 사도세자를 내세운 <사도>가 개봉될 예정이다. 사도세자는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도 영웅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드라마 ⓒ KBS 제공
사도세자와 광해군이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된 대표적인 영웅이다. 사도세자는 과거 엄한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 미치광이가 되는 소심한 인물로 그려졌다. 광해군은 과거 폭군 이미지였고 사극에서 그다지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랬던 것이 2000년대 이후엔 민중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진다.

조선시대 재조명 영웅은 정도전에서 출발한다. 과거 정략가 정도의 이미지였다가 지금은 백성을 위해 고뇌하는 영웅이 됐다. 그다음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 치세는 태평성대였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없어 주목받지 못했는데, 2000년대엔 <대왕 세종> <뿌리깊은나무> 등 세종대왕을 내세운 사극이 두 편이나 나왔다. 그 후론 임진왜란 시기로 넘어가 예나 지금이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이 등장한다.

광해군, 폭군에서 민중 영웅으로 변신

지금까진 ‘띄엄띄엄’이었지만 이제부터 갑자기 촘촘해진다. 임진왜란 직후 광해군이 영웅으로 부상했고, 광해군을 밀어낸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부각되며, 바로 이어 사도세자 그리고 그 아들인 정조로 이어진다. 2000년대 조선 사극 영웅이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집중되는 것이다. 정조 이후론 영웅의 맥이 끊겼다가 조선 말에 이르러 대원군이 <닥터진>에서 잠시 조명을 받았다. 이들은 왜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이며, 왜 영웅 출현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요즘 사극은 현재 대중, 특히 젊은 네티즌의 정치적 열망이 분출되는 장이다. 최근 가장 크게 나타나는 젊은 층의 정서는 특권적 기득권 집단과 양극화 구조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려 말 양극화 구조에 분노하며 귀족 집단과 대결했던 정도전이 영웅으로 재조명된 것이다.

밋밋했던 세종대왕 시대에서 2000년대 대중은 태종과의 대립 구도, 한글을 둘러싼 사대부와의 대립 구도라는 포인트를 찾아냈다. 태종은 권위주의, 폭압의 정치, 극단의 정치를 상징한다. 반면에 세종은 서민적 소탈함, 소통의 정치, 공존의 정치를 상징한다. 불통의 현대가 소통의 세종을 호출한 셈이다. 한글도 그렇다. 한글은 정보를 평민에게까지 소통시킬 매체였다. 특권적 사대부는 정보를 자기들만 독점하려 반발했다. 대중에게 한글이란 소통의 무기를 쥐여주기 위해 싸우는 세종대왕을 현대 대중은 민중의 수호자로 소환했다.

이순신 장군은 과거부터 언제나 주목받던 존재였다. 그런데 이미지가 조금 변했다. 과거엔 그저 구국의 영웅, 애국의 화신이었다면, 지금은 기득권을 버리고 솔선수범하는 지도자, 백성을 보살피며 구체제와 대립하는 지도자의 이미지가 강화됐다.

광해군은 서인에 의해 밀려났는데, 이 대목이 중요하다. 서인이 바로 현대 네티즌이 공적으로 여기는 노론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인과 대립한 광해군이 ‘우리 편’으로 호출됐다. 서인은 오로지 사대주의를 외치며 나라가 어떻게 되건 말건 기득권 수호에만 혈안이 됐던 집단이라고 네티즌은 여긴다. 광해군은 이에 반해 자주외교를 추진하고 대동법이란 세제 개혁을 통해 부자 증세를 시도했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외교정책과 세금이 논란이 됐던 참여정부 시절부터 광해군이 네티즌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현재의 분노, 과거를 호출하다

서인은 반청(反淸) 정책을 명분으로 광해군을 밀어내고 인조를 옹립했다. 그런데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는 서인 정권을 거스르며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인조-서인 집단이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추노>에서 ‘우리 편’이 소현세자의 사람으로 설정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경종의 석연치 않은 죽음 이후 노론은 영조를 내세워 집권한다. 사도세자는 소론을 가까이하며 노론 정권과 대립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네티즌은 믿는다. 사료엔 사도세자가 광인이었다고 나오지만 네티즌은 믿지 않는다. 현재의 공적 정보를 강자의 목소리라며 불신하는 것처럼, 과거 기록도 강자의 것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료와 상관없이 노론의 적 사도세자는 영웅이 됐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뜻을 이어받아 노론과 대립했기 때문에 결국 독살당했다고 여긴다. 서인-노론 기득권 체제에 맞선 이들은, 현재의 기득권 체제에 맞서고는 싶지만 무력한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영웅이 됐다.

조선시대 사극 영웅이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집중되는 이유는 바로 그때가 서인-노론과의 결전기였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에도 사림이 훈구 기득권 세력과 대결하긴 했지만, 그 사림이 결국 노론 신귀족이 되는 걸 네티즌이 알기 때문에 전기는 주목을 덜 받는다. 그러다 서인-노론 신귀족과의 대결이 본격화하는 광해군 때부터 조명이 시작돼 노론과 최후의 결전을 펼치는 정조가 21세기 사극 ‘끝판왕’이 됐다. 정조 이후론 완전한 노론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에 영웅이 나타나지 않다가 조선 말에 이르러 대원군이 노론 세도정치와 대결했던 까닭에 잠시 조명을 받았다.

네티즌에게 노론은 이기적 기득권, 사대주의, 특권, 독점 등을 상징하는 이름이고, 지금 현재의 기득권 집단도 똑같다고 여긴다. 그래서 현재의 ‘그들’에 대한 분노가 서인-노론에 대한 분노로 폭발하면서 그 반대편 인물이 차례로 영웅으로 떠올랐다. 정도전부터 이어지는 조선 사극 영웅의 계보를 보면 모두 귀족 집단과 대립한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정도전은 고려 귀족, 그 이후의 영웅은 조선 신귀족인 사대부와 대립했다. 귀족 같은 ‘갑’에 대한 ‘을’의 울화가 ‘조선 영웅’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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