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치부 기자 만날 일 없을 것”
  • 전남 강진=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12.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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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토굴’에서 만난 손학규 전 고문…정치적 언급은 피해

산은 고요했다. 가을비가 풀과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적막하게 울렸다. 백련사 뒤편으로 난 산길을 5분 정도 올랐을까. 승려들이 묵언수행을 하는 작은 암자를 지나 다시 몇 분을 더 오르면 허름한 흙집이 나온다. 스님들이 사찰 이외 장소에 마련하는 개인 수행 공간인 ‘토굴’이다. 탁 트인 시야 너머로 푸른 강진만이 보이는 만덕산 자락. 여기에 한 ‘전직’ 정치인이 기거하고 있다. 지난 7월31일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다. 취재진이 전남 강진의 토굴을 찾은 11월26일 오전 10시 무렵, 손 전 고문은 책상에 바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차나 한잔 마시고 내려가시라”

여의도를 떠나 강진에 눌러앉은 지 어느덧 넉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손 전 고문은 대외 노출 및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며 칩거생활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정치권의 관심은 오히려 커지는 모양새다. 손 전 고문이 보유한 정치적 지분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손학규 전 고문이 부인과 함께 칩거하는 전남 강진 백련사 인근의 토굴. ⓒ 시사저널 임준선
현재 새정치연합은 비상대책위 체제로 표류 중이다. 내년 2월 차기 당 대표·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세력을 상대로 기타 계파들이 ‘비노(非盧)’로 결집하는 구도다. 비노 진영의 여러 계파 가운데 응집력이 강하다는 ‘친손학규계’의 수장인 손 전 고문이 움직일 경우 당권 경쟁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남쪽에서 또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손 전 고문이 강진에 새로운 주택을 건축 중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일정 기간 칩거가 아니라 상당 기간 지역에 머무를 생각으로 보인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이유다.

기자가 손학규 전 고문의 부인 이윤영씨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 그가 툇마루로 나왔다. 예기치 않은 방문에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얼핏 비쳤다. 불쑥 거처를 찾은 데 대해 양해를 구하는 기자에게 “무엇을 물어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앉아 차 한잔 마신 뒤 내려가시라”며 웃음을 보였다. 칩거에 들어간 이후 손 전 고문은 정치권이나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사전에 인터뷰를 타진하려 강진 현지의 측근에게 연락했을 때도 “정치인이나 기자에 대해선 만남을 사양하고 있어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비노 진영으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중진급 인사들이 잇따라 강진을 찾았다. 하지만 손 전 고문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친노 세력을 상대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 10월 초 토굴을 찾았다. 하지만 산책 중이었던 손 전 고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차기 당권 도전 의사를 내비친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11월15일 강진을 방문했으나 역시 손 전 고문을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후 손 전 고문과 안부 전화만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손 전 고문과 만나 식사를 함께 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원내대표는 “안부 인사차 만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처음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였다. 손 전 고문은 기자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묻지 말아달라” “아무것도 물을 생각 말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저 웃음으로 넘겼다. 정치권 및 현 시국에 대한 질문은 물론, 강진에서의 생활 및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자신의 발언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자체를 극도로 경계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약 30분간의 만남은 손 전 고문이 말하는 주변 풍광에 대한 감상, 현재 생활에 대한 사담 등으로 채워졌다.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 또한 정중히 거절한 손 전 고문은 토굴 주변을 촬영하는 것은 허락했다. 토굴 오른쪽 공터에는 손 전 고문 내외가 일군 텃밭의 흔적이 있었다.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한 대화를 기약하겠다”는 기자에게 손 전 고문은 “나는 이제 정치부 기자를 만날 일이 없다”는 말로 응수했다. 이미 자신이 정치권을 떠난 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손학규 전 고문의 칩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2년간 강원 춘천의 농가에 머무르며 정계를 떠나 있었다. 당시에도 정치권 및 언론의 접촉을 피하며 은둔했다. 2010년 8월 “우리가 그렇게 피땀 흘려 이룬 민주주의가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할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은퇴 선언’의 무게가 다르다.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 했던 모든 짐을 이제 내려놓는다”며 정치를 그만둘 의사를 밝힌 만큼 쉽사리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손 전 고문이 강진에 새 거처를 마련하는 등 ‘정착’을 꾀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가 춘천에 칩거할 당시 지인의 집을 빌렸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다른 것이다. 손 전 고문은 토굴이 있는 백련사 인근으로부터 약 3㎞ 떨어진 곳에 정식 주거지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산초당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7월31일 손학규 전 고문이 국회에서 정계 은퇴 선언을 한 후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다산초당 인근 마을에 새 집 마련

실제로 복수의 마을 주민들로부터 “손 전 고문이 살 집터가 마을 북쪽 산등성이에 마련됐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손 전 고문의 한 지인은 “집이 들어설 자리가 166평, 텃밭이 들어설 자리가 500평 상당이다. 지난 8월 손 전 고문 내외가 이곳을 직접 찾아 자리를 정했다. 현재까지는 터만 잡아뒀으며, 내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헌 한옥을 뜯어 옮기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이 집 지을 자리를 물색하는 것을 돕는 과정에서 “임시로 머무를 거처를 마련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곳에 완전히 정착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손 전 고문이 전남 강진으로 향한 이유를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경기 시흥이 고향이면서도 이렇다 할 연고가 없는 호남에 머무르는 데는 향후 정계 복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반면 손 전 고문 주변에서는 다산 정약용을 의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손 전 고문의 한 지인은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다산의 생가가 있는 경기 남양주시에 실학박물관을 개설하는 등 관심이 많았다. 과거에도 다산초당 인근을 수차례 찾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 자신도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경기도지사 시절 가장 역점을 들여서 했던 것 중 하나가 실학(관련 문화사업)이다. 실학축제를 열고 실학박물관도 만들었다. 또 다산 실학 실천 운동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손학규 전 고문이 집을 지을 것으로 알려진 부지. 백련사에서 약 3km 떨어져 있으며 현재 터만 잡아둔 상태다. ⓒ 시사저널 임준선
다산초당에서 손 전 고문이 머무르고 있는 토굴, 그리고 백련사로 이어지는 경로는 과거 다산이 자주 거닐었던 길로 알려져 있다. 손 전 고문은 기자와의 대화에서도 다산에 대한 관심을 언급했다. 주변 풍광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다산의 시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다산이 시를 2500수나 썼다.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시를 쓰는 일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다. 시를 쓰려면 우선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느끼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야 꽃의 아름다움이나 구름이 떠도는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강진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산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는 별다른 대답 없이 침묵했다.

과연 손학규 전 고문은 다산의 길을 좇게 될까. 이미 정계 은퇴를 선언한 만큼 초야에 묻힌 학자로 여생을 보낼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제 정치부 기자 만날 일 없다”는 말, 다산초당 인근에 본격적으로 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향후 새정치연합의 리더십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그를 향한 러브콜이 꾸준히 제기될 것인 만큼, 정치권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 전 고문의 강진행이 ‘호남’이라는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하고 ‘다산’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갖는 이미지를 자신에게 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손 전 고문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바깥세상의 온갖 말들을 뒤로한 채, 그는 마치 고요한 산처럼 아무런 말이 없다.


손학규 행보 따라 ‘反친노’ 무게감 달라져 



내년 2월 선출될 새정치민주연합 차기 지도부는 2016년 4월 실시될 20대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20대 총선 결과는 그 이듬해에 펼쳐질 19대 대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012년 1월 전당대회에서 ‘친노(親盧)’의 한명숙 대표 체제가 출범한 것을 계기로, 그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친노가 장악한 것이 단적인 예다. 앞으로 전개될 제1야당의 당권 경쟁이 친노와 비노(非盧) 양 계파의 ‘혈전’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비노 진영은 적극적으로 세 규합에 나서고 있다. 친노 진영의 당권 장악이 ‘특정 계파에 의한 사당화’라고 주장한다. 정동영 상임고문이 중심이 된 ‘구당구국 모임’이 대표적이다. 정대철·이부영·천정배 전 의원 등 원외 원로 및 중진급 인사를 비롯해 비노로 분류되는 전·현직 의원 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주홍·김영환·이종걸·박주선·장병완 의원 등이 소속된 원내 비노 온건파 모임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와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구당구국 모임 및 민집모에는 당내에서 비주류로 꼽히는 김한길·안철수계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손학규 전 고문의 정치적 움직임이 주목받는 것은 그의 행보에 따라 비노 진영에 실리는 무게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손학규계로 꼽히는 원내 의원은 10명 정도다. 신학용·김동철·김우남·조정식·양승조·오제세·이찬열·이춘석·임내현·최원식 의원 등이다. 당내 한 계파를 이끄는 중진인 손 전 고문이 비노 진영의 세 규합에 힘을 보태고 나설 경우 당내 반(反)친노 기류는 더욱 거세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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