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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차관’의 P호텔 모임, 자원외교 주물렀다

MB 정권 실세 박영준 전 차관이 주도한 ‘토요모임’ 실체

엄민우·안성모 기자 ㅣ mw@sisarpess.com | 승인 2014.12.04(Thu) 10: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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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이 그냥 커피(인스턴트커피)라면, 자원외교는 진짜 커피(원두커피)다.”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논란이 한창인 여의도 정가에서는 자원외교와 4대강을 비교해 이 같은 말이 돌고 있다. 규모나 문제의 심각성 등으로 볼 때 자원외교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해외 자원개발 국부 유출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노영민 의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4대강과 관련한 돈은 그나마 국내에서 돌지만, 자원외교 건은 해외로 다 빠져나갔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39쪽 기사 참조). 여당에서는 ‘친박(親朴)계’와 ‘친이(親李)계’가 온도차를 달리하지만, 야당 진상조사위가 당시 정권 실세들의 구체적 개입 정황을 포착하면서 점차 국정조사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박영준, ‘비공식 회의’ 결과 MB에게 보고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 당시 자원외교를 지원하기 위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주도의 비공식 회의가 수차례 열렸다는 구체적 의혹이 제기됐다. 정권 실세가 주도한 해당 모임은 공식 기록도 없이 이뤄진 비공식적 모임임에도 대통령 외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예상된다. 해외 자원개발 국부 유출 진상조사위원을 맡고 있는 홍익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자에게 “박 전 차관이 주최하는 모임이 서울 P호텔 등에서 조찬 모임 형식으로 수차례 열렸고, 해당 내용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됐다”고 밝혔다. 해당 내용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실제로 본지가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인사들도 해당 모임에 대해 알고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임준선·사진공동취재단
홍 의원을 비롯해 시사저널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복수의 관계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해당 모임은 박 전 차관 주도하에 이뤄졌다. 박 전 차관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일 때부터 차관이 된 후까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호텔에서 조찬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토요일에 모임이 자주 열려 ‘토요모임’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모임이 이뤄진 장소는 주로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P호텔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위치도 좋고 음식 가격도 다른 호텔에 비해 저렴한 편이어서 과천정부청사에 근무하는 이들이 조찬 등 모임 장소로 즐겨 이용하는 곳이다. 해당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자원 3사(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 관계자 및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등과 지식경제부 과장 및 정책기획관급 인사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모임은 주로 이 전 대통령의 자원 관련 정상회담 전에 이뤄졌다고 한다. 대통령이 자원외교에 나서기 전 관계된 공사 및 기관 인사들이 참석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전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다면, 해당 지역 관계자들과 자원 관련 공사 관계자들을 부른다. 해당 국가가 석유와 광물자원은 있지만 가스자원이 없다면,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를 소집한다. 경우에 따라 3사 모두 참석하는 때도 있다. 특히 코이카는 참석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홍 의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공적개발원조)는 자원외교와 세트로 움직였다. 자원 협력 주요 대상 국가가 곧 ODA 중점 전략 국가였다. 카메룬·미얀마·우즈베키스탄 등에 ODA가 많이 갔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ODA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사실 이 모임에서 미리 세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ODA는 자원외교 계약 체결에 대한 일종의 지불금과 같은 성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의 경우 우리 정부는 21억 달러 ODA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해당 모임 대상 기관 소속으로 당시 상황을 지켜본 한 인사에 따르면, 기관장 및 임원 등은 해당 모임에 불려가는 것을 ‘학수고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강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세 차관에게 눈도장이라도 한 번 더 찍자”는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당시 ‘왕차관’이라고 불리던 박영준 전 차관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모임에서 회의를 통해 나온 결론은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호텔 내 비공식 모임에서 나온 내용이 국가 외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홍 의원은 “비공식적인 행위가 어젠다로 채택돼 사실상 정상 외교에 공식 반영된 것이다. 이건 국무조정실 차장의 권한을 넘어서는 범위이며 정상적인 정부 회의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총리실에서 각 부처 산하 단체장들을 불러 회의를 하는 것 자체를 월권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박영준 전 차관이 여러 위기를 겪고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리며 자원외교에 공을 들인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말을 투자해가며 열심히 일했던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와 방법을 생각하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중론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회의는 비용 및 행정적 노력이 들어가는 공식 행위이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게 된다. 회의 등 정부 행위는 문서번호로 분류돼 각 부처 소관별로 보관된다. 그런데 당시 회의는 이런 기본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조 원이 오가는 국가 사업임에도 비공식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고 어떤 식으로 전달됐는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공식 회의가 아니다 보니 비용 처리도 특이한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 모임의 밥값을 참석하는 단체들이 돌아가면서 계산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밥값 액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이 비용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여부”라고 꼬집었다.

공식 협의체가 있는 상황에서 정권 실세가 주도하는 비공식 모임이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정부에는 공식적인 협의체 및 협회가 존재했다. 총리실 산하 에너지협력외교지원협의회가 대표적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총리실 자료에 따르면, 이 협의회는 2008년 3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총 18차례 열렸다. 사실상 정권 출범 때부터 말기까지 쭉 이어진 것이다. 참석자는 매번 회의 때마다 조금씩 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회의 주재는 늘 국무총리실장이 맡았다. 회의 안건은 자원 관련 내용뿐 아니라 원전과 관련된 것도 상당수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관련 건 등 굵직한 사안들이 이곳에서 다뤄졌다.

   
2010년 11월2일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앞줄 맨 오른쪽)이 짐바브웨를 방문해 장기라이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사 자원외교 관련 모임 우후죽순 생겨

2011년 11월11일 열린 16차 회의 때부터는 해외자원개발협회도 참석했다. 해외자원개발협회는 2008년 3월 발족했다. 에너지자원외교지원협의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생긴 것이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두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상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구상이 취임 전부터 이뤄졌음을 방증한다. 노영민 의원 역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자원외교지원협의회를 보면) 4대강과 자원외교는 인수위가 아니라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당시엔 자원외교와 관련해 여러 가지 모임이 생겨났다. 보통 ‘협력 모임’ 혹은 ‘협의회’ 등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볼리비아와 관련해서는 이상득 전 의원이 참석하는 모임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속으로 해당 모임들을 조사했던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해당 모임의 비용 사용내역을 보면 대부분 식비 등에 지출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렇게 진행된 자원외교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투입된 돈은 4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대강 사업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그런데 여전히 지출되는 건도 있다고 하니 그 액수가 얼마에 달할지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시사저널이 ‘MB(이명박) 정부 VIP 자원외교 현황 자료’를 입수해 작성한 지도를 보면, 실제 지난 정권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곳에서 자원외교가 이뤄졌고 실패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40~41쪽 그림 참조).

그중에서 특히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1호로 꼽히는 쿠르드 유전 사업을 보면 구체적 실패 스토리를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해당 지역을 방문했던 노영민 의원에 따르면 쿠르드 자치구는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또 이라크 내 자원 반출에 대한 결정권은 자치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계약 자체가 위험한 결정이었다. 결국 계약을 맺은 한국석유공사는 이라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입국조차 쉽지 않게 됐고, 국회에서 한국가스공사가 이라크 석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주는 상황도 연출됐다. 당시 해당 사업을 진행했던 가스공사의 고위 관계자들은 최근 “그때 그 사업을 진행하면 안 됐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털어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 의원은 “쿠르드에서 받은 3개 광구 중 하나는 실패로 반환했고, 다른 하나는 내년에 계약이 끝난다. 그나마 15% 지분 투자한 것 하나 정도가 성공했다고 여겨진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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