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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고마움에 더해 면죄부까지 주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

하재근│문화 칼럼니스트 ㅣ 승인 2014.12.04(Thu) 11: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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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다. 기획 의도부터가 그렇다. 윤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당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를 바라보며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만든 영화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가 아버지에 주목하면서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국제시장>처럼 노골적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영화는 없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나의 독재자>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자식의 시점에서 불화했던 아버지를 이해의 정서로 접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지만,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덕수(황정민)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흥남에서 남한의 부산으로 피란 와서 고모(라미란) 댁에 얹혀산다. 덕수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전쟁 통 피란길에 자신의 실수로 헤어진 아버지(정진영)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그의 마음속에 너무나 크게 자리 잡으면서 평생을 괴롭히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 ⓒ CJ 엔터테인먼트
이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헌사

대신 덕수는 홀로 된 엄마와 두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돈 버는 일에만 열중한다. 서울대에 입학한 남동생 등록금을 마련코자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나고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에 기술근로자로 건너가 총상을 입는 큰 사고에도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마련한다.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릴 법도 하지만, 덕수는 도리어 “힘든 세월에 태어나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지 않으냐며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덕수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반세기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관통하는 <국제시장>은 특정 개인의 경험이 아닌 아버지 일반에 대한 영화라 할 만하다. 특히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된 덕수가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지나온 삶에 대한 호소의 정서가 물씬하다. 

한국인이라면 쉬 공감할 한(恨)의 정서를 건드려 그동안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던 아버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겠다는 것. 꽤 영리한 대중적 접근이다. 이는 아버지를 다루고도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나의 독재자>와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에 비유한 <나의 독재자>와 백수인 아버지가 보기 싫어 타인에게 빌려(?) 주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일반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그에 반해 <국제시장>의 설정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이들의 사연이라는 점, 그 세대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경험치가 감정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예컨대 온 국민을 울렸던 이산가족 상봉의 장에서 덕수가 헤어진 아버지를 찾겠다며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사연을 읊을 때 관객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확실히 윤제균 감독은 한국인의 집단 정서를 감정적으로 건드리는 데 도가 튼 연출자다.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년) 때부터 그랬다. 조폭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설정은 황당하지만, 학력 위주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학원 폭력에 대한 비판이 호응을 얻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해운대> (2009)는 우리에게 익숙한 해운대를 배경으로 초대형 쓰나미가 덮친다는 스펙터클에 가족주의를 접목하면서 무려 114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윤제균, <해운대> 등에서 대중 정서 간파

윤제균 감독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영화로 옮기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국제시장> 제작 의도만 해도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아버지를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드 SF로 분류되는 <인터스텔라>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등 어려운 개념인데도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데는 극 중 딸을 향한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영향이 크다.

<국제시장>의 흥행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데 극 중 아버지를 다룬 방식에 동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등장한 한 마리의 나비가 부산의 국제시장을 훑은 후 집 앞마당 대청에 앉아 있는 노령의 덕수와 영자(김윤진) 부부에게로 이동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의 오프닝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장면이다. <포레스트 검프>(1994년)의 하얀 깃털이 바람에 휘날리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로 떨어지는 오프닝을 연상시킨다. 

그뿐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1960~70년대 미국의 주요 현대사의 현장에 우연히 개입하면서 마침내 입지전적 인물로 우뚝 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진행 방식은 그대로 <국제시장>과 일치한다. 한국판 <투모로우>로 불렸던 <해운대>처럼 윤제균 감독은 전부터 유명 할리우드 영화를 가져와 거기에 한국적 드라마를 대입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는 부분마저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온 혐의가 짙다.

<국제시장>이 다루는 현대사의 경험과 여파는 고스란히 역사로 쌓여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질곡의 현대사를 통과하면서 우리네 삶의 철학은 오로지 잘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약됐다. 이를 <국제시장>은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로 포장함으로써 아버지들의 신화로 격상시킨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일명 왕회장의 에피소드를 삽입한 건 단순히 웃음을 주려는 시도만은 아닐 것이다.

CG(컴퓨터그래픽)로 세련되게 구현한 스펙터클과 고증을 통한 시대 재현, 회고 형식 등 한없이 낙천적으로 과거를 향수하는 영화의 태도는 잘사는 것만을 유일한 가치로 내세운 아버지 세대가 남긴 부정적 유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책 없이 지워버린다. 덕수가 회고를 마치면서 휘황한 부산의 정경을 큰 화면으로 잡아낸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 이 정도로 살게 된 건 다 우리 때문’이라는 아버지 세대의 자기만족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윤 감독의 말에 비추면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결말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진다. 자식 세대의 치열한 삶과 고민은 싹 빠진 채 아버지 세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국제시장>은 그럼으로써 현실과 합을 맞추기보다 결과적으로 판타지로 향한다. 그것이 영화로 현실을 잊고 싶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지향하는 대중영화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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