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는 ‘야인’이 아니라 ‘실력자’였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12.0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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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인터뷰 통해 ‘일반인’ 아닌 ‘실세’ 정황 드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사고 있는 정윤회씨는 지난 7월 시사저널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본지가 자신을 비선 실세로 주장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었다는 것이다. 정씨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인 ‘공적’ 인물이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야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비선 실세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서 정씨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닌 공적 인물, 더 나아가 막강한 실력자들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것도 다른 데서가 아닌 바로 정씨 자신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다.

■ “당선 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했다”

정윤회씨는 12월1일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접촉이라고는 당선 후 (박근혜)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 한 번 한 게 전부”라며 “3인 비서관과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밝혔다. 자신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됐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로 ‘국정 개입 의혹’의 한가운데 선 정윤회씨. YTN 화면캡쳐
그러나 정씨의 의도와는 달리 이 말로 인해 정씨의 비선 실세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2012년 대선 승리 후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걸어 당선 감사 인사를 건넨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 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멤버 중에도 당선 직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없다. 캠프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고위직도 3인방 등 보좌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정씨와 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박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을까”라고 되물었다.

■ “올해 4월 이재만에게 연락했다”

“3인방과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됐다”는 정씨의 주장도 거짓임이 들통 났다. 조선일보는 정씨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조 전 비서관이 “올 4월11일 퇴근길에 이(재만) 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고 밝혔다. 즉, 정씨가 이재만 비서관과 4월11일 이전에 접촉했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는 정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이 비서관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조 전 비서관은 “지난 4월10~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상황을 정리하면 정씨에게 조 전 비서관의 연락처를 알려준 사람은 이 비서관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비서관의 행태에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다. 조 전 비서관은 정씨의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직속상관이다. 즉 조 전 비서관은 감사자 격이고, 정씨는 피감사자 격이다. 피감사자에게 감사자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심지어 전화를 받으라고 요구했다는 것은, 이 비서관과 정씨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 내사자가 박관천인 걸 어떻게 알았나

정씨는 11월29일, 30일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내가 (박 경정에게) ‘사실대로 얘기해라. 이젠 다 알려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박 경정)가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더라”며 “자기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 그것을 밝히려면 윗선에서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 그 사람들이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이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야인’이라는 정씨는 어떻게 박 경정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을까. 본지는 지난 3월 말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는 기사에서 내사 담당자를 ‘ㄴ’씨로 익명 처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 중인 경찰관은 10여 명에 이른다. 정씨가 내사 주체로 박 경정을 지목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당시 정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경찰관이 누구냐. 제발 가르쳐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박 경정의 연락처를 어떻게 확보했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 민정 라인에서 근무하다 경찰서 과장으로 발령 난 경찰 고위직 연락처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와대 내부의 조력자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 청와대 대변인은 정윤회 대변인?

정씨의 청와대 내부 조력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이 비서관은 조 전 비서관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접촉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정씨의 ‘입’을 자처했다. 민 대변인은 정씨와 이 비서관의 접촉 사실을 알린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12월2일 오전까지만 해도 “본인들 주장”이라며 사실상 부인했다. 그러다 정씨가 통화 사실을 인정하자 오후 브리핑에서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이 비서관과 접촉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만남은 없었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정씨와 이 비서관이 직접 만난 사실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라는 표현은 청와대가 비선 실세 논란에서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관천 경정은 지난 3월13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청와대 민정팀이 정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했음을 내비쳤다. 정씨가 3월27일 이혼조정신청을 내기 전에 이미 이혼 임박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박 경정은 당시 민정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고위 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등 공직기강 확립과 VIP(박근혜 대통령) 관련 주요 인사들을 관리한다. 정씨를 ‘일반인’으로 보는 사람은 청와대 내에서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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