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2조원 유전회사 인수하며 ‘건성건성’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2.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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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자원외교 ‘하베스트 인수’ 관련 석유공사 이사회 의사록 입수

“자원외교 사업을 한다고 하면 이사회가 열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몇 명이 반대합니다. 사실 그 내용을 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실무자가 강하게 주장하면 결국 그 안건은 통과됩니다. 반대하는 이들도 꼬리를 내리죠. 수많은 국부가 이렇게 유출된 겁니다.” ‘이명박(MB) 정부 해외 자원개발 국부 유출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 위원인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은 비상식적인 자원외교 계약 성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권의 뜻을 받들어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자원 관련 공기업들의 초라한 현실이다.

시사저널은 그중 MB 정부의 대표적 자원외교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 유전 개발업체 ‘하베스트’ 인수와 관련한 한국석유공사 이사회 의사록을 입수해 내용을 분석해봤다. 하베스트 인수 실패 건은 MB 정부의 자원외교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끈다. 날린 액수도 큰 데다 얽혀 있는 굵직한 인물도 많아 진상조사위에서도 국정조사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자회사 ‘날(NARL)’을 인수하고 투자하는 데 2조원을 들였다가 200억원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 EPA 연합·일러스트 배중열
시사저널이 입수한 것은 2009년 10월14일 열린 358회 의사록과 같은 달 29일 열린 359회 의사록이다. 모두 하베스트 인수 계약 건과 관련된 것으로 하베스트가 2주 만에 인수 조건을 변경하면서 두 번 열렸다. 강영원 당시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포함한 임원 14명과 실무진인 기획조정실장, 신규사업처장 등이 회의에 참석했다. 엄청난 손실을 불러온 하베스트 인수 건은 이미 이사회 내에서도 그 위험성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은 회의 과정에서 대수롭지 않게 다뤄졌다. 다음은 당시 사업을 도맡아 추진했던 신규사업처장과 감사가 나눈 대화의 한 부분이다.

 

감사: 지금 또 하류 부문(계열사)을 포함한 회사 전체를 인수하다 보니까 우리가 부득이하게 대상 회사의 부채나 제3자에 대한 책임까지도 떠안게 됐는데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책임이 우리 공사에 부담 될 위험성은 없습니까?

신규사업처장: 일단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모든 부채 이런 부분은 정확하게 공시가 되어 있고요. 저희들이 실사 과정에서 일단 부채 상황 이런 부분은 다 파악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확인되어 있는 부채는 약 22억7000만 달러로 되어 있고요. 그 이외에 다른 부채는 없는 것으로 저희들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업 추진 강력 주장한 처장에 대통령 표창

신규사업처장은 2조원이 훌쩍 넘는 부채를 안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 외 부채는 없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감사: 재무 현황을 살펴보면요. 2008년 매출액하고 영업이익이 캐나다 달러로 55억 달러하고 5억 달러인데 지금 금년 상반기에 보면 13억 달러하고 마이너스 1.8억 달러 정도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금번 인수를 위해 기 보유한 자금 23억 달러를 투입해가지고 또 17.2억 달러 또 차입을 했지요. 그렇지요? 그 다음에 부채 비율이 지금 88%에서 120% 증가가 된다고 봅니다. 그렇지요?

신규사업처장: 지금 현재 이 회사 부채가 22억7000만 달러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지금 22억7000만 달러로 되어 있고, 만약에 저희들이 이 회사를 인수하게 되면 전체 우리가 지금 평가를 할 때는 저희들이 부채를 다 상환하고 클린 회사 형태에서 향후 운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그걸 판단 기준으로 해서 평가를 했거든요. 만약에 저희들이 회사를 인수하고 부채를 다 상환했을 경우에는 이자 상환이라든지 부채 상환 이런 부분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랬을 경우에는 그런 쪽에서 이자라든지 부담했던 그런 비용이 전혀 없어지는 것이고요.

감사: 별도의 재무구조를 위한 대책은 없다고 보십니까? 지금 우리 처장님 하신 말로 하면 전혀 문제가 없겠습니까?

신규사업처장: 지금 저희들이 부채 부분은 다 인수하는 것으로 지금 가정을 하고 회사를 인수하는 거 아닙니까? (생략)

 

신규사업처장의 말은 회사를 인수할 때 부채를 모두 상환한 상태를 기준으로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또 “부채를 상환한 다음에는 부채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황이 된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까지 하며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사회 내내 다른 이사들의 우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강력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신규사업처장은 이로부터 2년 후인 2011년 해외 기업 인수에 공헌을 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그는 석유공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후폭풍은 남은 직원과 국민이 고스란히 맞고 있는 셈이다.

“1등 평가 목표로 적극 추진해보시는 게…”

MB 정부 당시 자원 관련 공기업들이 자원외교를 강력히 추진하려 했던 것은 결국 ‘평가’ 때문이다.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을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머뭇대다간 쫓겨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해당 이사회 의사록에는 평가에 대한 부분도 있다.

 

박○○ 이사: 올해는 많은 실적을 쌓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한번 1등을 목표로 잡아가지고 적극적으로 추진해보시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장: 감사합니다. 저희도 사실은 지금 임직원들이 ‘내년도 경영평가는 우리가 1등을 받자’라고 하는 슬로건을 저희들이 내걸고 있습니다.

 

해당 사업이 계획대로만 추진됐으면 위험이 덜했을 수도 있다. 원래 하베스트 인수는 해당 회사의 상류 부문의 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358회 이사회 때만 해도 참석자들 사이에서 “하류 부문까지 주식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상류 부문 자산만 인수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떠안을 필요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갑자기 하베스트가 “상류 및 하류 부문까지, 자산이 아니라 모든 주식 100%를 인수하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해외에서 국제무역 업무를 하며 자원외교 사업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은 자원외교 부문에서 ‘봉’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곳들이 정권 눈치를 보기 위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2주 만에 다시 열린 이사회는 기존보다 위험성이 훨씬 더해진 조건임에도 위와 같은 과정 속에서 2시간 40분 만에 인수를 결정했다. 이번에 2조원을 들여 200억원에 팔게 된 하베스트의 자회사 ‘날’은 하류 부문에 해당된다. 2조원은 우리나라 국공립 어린이집 1000개를 더 만들 수 있는 비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사로 불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 뉴시스
최근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는 ‘2+2 회동’을 통해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의혹 중 자원외교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특히 ‘하베스트 인수 건’이 주목받고 있다. ‘이명박(MB) 정부 해외 자원개발 국부 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하베스트 유전 인수 건을 국정조사에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이 하베스트 인수 건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40년 MB 책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 김형찬씨가 직접적으로 관여돼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 시절 투자자문사 메릴린치는 석유공사로부터 하베스트 인수 건을 비롯해 4건의 해외 투자 사업에 대한 자문을 맡았다. 이를 통해 자문료 248억원을 챙겼는데, 이때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이 바로 김형찬씨다. 하베스트를 인수할 때 자문제안서도 그의 이름으로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릴린치는 선정 과정부터 의혹투성이였다. 해당 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적해온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 의원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해외 투자 자문사를 선정하기 위해 2009년 3월 10개 업체를 상대로 3차례 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메릴린치는 1차 계량평가 부문에서 중·하위권인 5위에 머물렀으나, 선정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인 비계량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1위로 1차 평가를 통과했다. 보름 후 열린 2차 평가에서도 계량평가로는 4개 업체 중 3위를 차지했으나, 비계량 점수를 높게 얻어 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석유공사는 2위를 한 메릴린치를 최종 선정했다.

김형찬씨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계는 물론 정계에도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됐다. 자원외교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진상조사위의 여러 인사들은 그를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형씨와 가까운 사이”라고 밝히고 있다. 향후 자원외교 국정조사의 칼이 하베스트 인수 건을 타고 어디까지 올라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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