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한국의 가벌] #7. 박 대통령 외가 육씨 집안 혼맥 화려
  • 소종섭│편집위원 ()
  • 승인 2014.12.18 15: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관·법조계에 이어 재계까지…2대 걸쳐 거대 가벌 구축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가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와 물밑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친인척과 측근의 파워게임은 역사 속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권력쟁투의 한 형태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의 혼맥을 살펴봤다(이하 존칭 생략).

박지만은 1958년 12월15일,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있을 때 태어났다. 1974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해 1977년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37기)에 입학했다.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방공포병과 소위로 임관했으나, 재직 중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의무복무만 마친 후 1986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31세 때인 19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입건되는 등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의 결혼식이 2004년 12월14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박회장의 누나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 공동취재단
EG는 삼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1987년 창업했다. 충남 금산에 있는 이 회사는 산화철 및 페라이트 코어용 복합재료 등 다양한 복합재료를 제조·가공해 주로 포스코에 납품하는 전문 제조업체다. 1989년 부사장으로 이 회사에 입사한 박지만은 1990년 대표이사가 됐다. 그는 현재 25.95%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다. EG는 지난해 1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47억여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설 명절이었던 지난 1월31일 박지만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아들을 낳았다. 지난 2005년 태어난 첫째 세현에 이은 두 번째 아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 사랑’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는 자신의 신상명세서에 건강, 싸이 1촌, 조카 세현군 등 세 가지를 자신의 ‘보물 1호’로 꼽기도 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조카에게 불러주기 위해 자장가를 연습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미혼인 자신은 물론 결혼한 여동생 박근령도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박지만에게서 태어난 두 명의 조카는 ‘박정희가(家)’를 잇는 유일한 핏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가졌을 만하다. 서향희는 최근 셋째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향희 변호사, 최근 셋째 아이 가져

1958년생인 박지만은 2004년 12월4일 16세 연하(1974년생)인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했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서향희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다. 1999년 사법시험 41회에 합격해 2002년 사법연수원(31기)을 수료했다. 그해 I&S 비즈니스컨설팅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 새빛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됐다. 첫 아들을 출산한 이듬해인 2006년부터 중소기업의 감사·고문·사외이사 등의 직책을 맡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했다. 2009년 4월에는 대전고검장 출신 이건개 전 의원과 함께 법무법인 주원을 설립해 대표변호사를 맡아 포스코·코오롱 등 대기업 관련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가 2011년 법무법인 새빛을 다시 설립해 2012년 8월까지 운영했다. 그러나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주목받자 활동을 접었고 한때 외국에 나가 있기도 했다. 서향희의 동생은 지난 2011년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의 차남과 결혼했다. 박지만의 결혼 이후 한때 정가에는 ‘만사올통’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모든 길은 올케로 통한다’는 말로 서향희의 활동적인 면모를 빗댄 표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박 대통령과 남편인 박지만의 적극적인 단속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동생이자 박지만의 누나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왔다. 1982년 풍산그룹 창업주 류찬우의 아들 류청과 결혼했으나 6개월 만에 이혼했다. 2008년 10월, 열네 살 아래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와 재혼했다. 신동욱은 2009년 5월 인터넷에서 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퍼뜨린 혐의로 구속됐다 2013년 2월 출소했다. 현재 공화당 총재로 있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박 대통령에게는 언니가 있다. 박정희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김호남 사이에서 태어난 박재옥이다. 김호남은 1920년 경북 선산군 도개면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풍족한 편이 아니었고 약간의 논과 밭을 경작하는 정도였다. 학교 공부라고는 구미보통학교 교사들이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해 연 학당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호적상 박정희-김호남은 1938년 7월30일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박재옥이 태어난 날이 1938년 9월9일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937년 여름 쯤 결혼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가 20세 때로 김호남보다 세 살 많았다.

결혼 이후 김호남은 시가인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로 왔는데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엄한 아버지의 지시로 결혼을 하긴 했지만 박정희가 원하던 결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호남은 거의 박정희와 떨어져 딸 박재옥을 키우며 홀로 살았다. 생활비는 박정희의 큰형 박동희가 농사를 짓는 것으로 충당했다. 결국 두 사람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0년 11월1일 합의 이혼했다. 이후 김호남은 불공을 드리는 등 불교에 의지했고 박정희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김호남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큰아들인 박재석이 생활과 교육을 책임졌다. 박재옥은 동덕여고-동덕여대 가정과를 졸업했다. 박재석은 일찍 작고한 삼촌 박상희(박정희의 셋째 형)의 딸 박영옥(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의 아버지 노릇도 대신했다. 사촌오빠가 동생들을 보살핀 셈이다.

박재옥은 유엔 대사를 지낸 한병기와 결혼했다.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에서 태어난 한병기는 6·25가 일어나자 동생 한병국과 월남한 뒤 통역장교로 군에 들어가 박정희의 부관이 되었다. 두 사람은 박정희의 혼인 권유에 따라 결혼에 이르렀다. 1961년 외무부장관 비서관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한병기는 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지내고 캐나다 대사, 유엔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98년에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두 사람은 2남 1녀를 뒀다. 장남 한태준은 중앙대 교수로 있고,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차남 한대현은 설악산 권금성 산장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주)설악관광 대표다. 영어가 능통해 국제가요제에서 차인태 아나운서와 함께 통역을 맡기도 했던 딸 한유진과 결혼한 박영우는 대유신소재 회장이다. 박영우는 2012년 대선 국면 때부터 ‘주가 조작 의혹’에 시달렸다. 지난해에는 스마트저축은행으로부터 부당 이익을 지급받았다는 혐의로 고발됐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박정희는 박성빈-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다. 원래대로라면 6남 2녀였으나 장남은 두 살 때 죽었다. 큰형은 박동희인데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고향 상모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1972년 사망했다. 박정희보다 22세나 많았던 그는 ‘대통령은 내 동생이지 내가 아니며 내가 근신하는 것이 동생을 돕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막내 동생의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서울 나들이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한전에서 상모리에 전기를 가설하려고 하자 “대한민국의 모든 마을에 전기를 넣은 다음 상모리에 가설하고 그중에서도 맨 나중에 우리 집에 전기를 넣어라”라고 말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남 1녀를 두었는데 박재홍 전 국회의원이 아들이다. 11대 때 처음 등원한 박재홍은 4선 의원을 지냈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김대중 후보를 지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딸 박재선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정동하와 결혼해 미국에서 생활했다.

3년 전 사촌끼리 의문의 살인 사건 일어나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는 5·16이 일어나기 전인 1960년 사망했다. 구미에서 연필 장사를 했던 장남 박재석은 훗날 국제전기산업 회장을 지냈다. 블록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차남 박재호는 동양육운 회장을 지냈다. 딸은 구미에서 결혼해 살았다. 2011년 9월, 박재호의 차남 박용수가 박재석의 4남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정희에게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셋째 형 박상희는 39세 때인 1946년 대구 10·2 폭동에 가담해 현장에서 즉결 처분됐다. 구미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던 그는 1남 5녀를 남겼다. 외아들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사촌지간인 박재홍 전 의원과 13대 총선에서 맞붙는가 하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친박연합’이라는 정당을 만든 후 3500만원을 받고 시의원 공천을 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박준홍의 누나인 장녀 박영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박영옥-김종필은 박정희의 주선으로 1951년 봄 부산에서 결혼했다. 차녀 박계옥은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했던 김용태와, 3녀는 총리실에 근무했던 반기언과 결혼했다. 막내딸 박설자는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과 혼인했는데 그는 김인득 벽산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박정희의 넷째 형 박한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결혼하기 전인 19세 때 사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누이는 박귀희·박재희다. 박귀희는 박정희가 태어나기 전에 경북 칠곡의 은용표와 결혼해 칠곡군 석적면에서 살다가 죽었다. 3남 2녀를 뒀는데 장남 은희은과 차남 은희준은 6·25 때 전사했고, 장녀와 차녀는 구미와 대구에서 살았다.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다 장충동에 있던 ‘사파리클럽’ 회장을 지낸 삼남 은희만이 가문을 이었다. 은희만은 김연순과 결혼해 3남 3녀를 두었는데 막내이자 3남이 가수 은지원이다. 박정희가 대구사범에 다닐 때 뒷바라지를 해주었던 손위 누이 박재희는 한정봉과 결혼했다. 5·16 이후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것을 청산하고 서울로 왔다. 누이의 상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박정희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한정봉은 1966년 사망했다. 아들 한희승은 필터회사 사장을 지냈다.

박정희의 재혼한 부인 육영수는 충북 옥천에서 유명한 갑부의 딸이었다. 부친 육종관은 옥천·대전 일대에서 최초로 자가용 차를 가진 사람이었고 당시 유명 연예인·영화인들과 사귀기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경령과의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차녀가 육영수다. 위로 큰언니 육인순과 오빠 육인수, 아래로는 동생 육예수가 있었다. 이경령은 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아무리 속이 상하고 분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하고, 화난 얼굴로 남편과 시부모님을 대해서는 안 된다. 네 몸이 귀히 되어도 자만심을 갖지 말고 언제나 웃고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육영수가 박정희와 결혼한 것은 1950년이다. 외가 오빠뻘 되는 송재천이 중매를 했다. 송재천은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의 박정희 밑에서 포로 심문관으로 있었다. 육영수의 부친 육종관은 두 사람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다. 당시 박정희는 34세, 육영수는 26세였다. 두 사람은 대구 천주교성당에서 육종관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한승수 전 총리, 김세연 의원, 가수 은지원도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은 22세 때인 1935년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온 홍순일과 혼인했다. 당시 일본의 관리 양성 기관인 대동학원에 다니며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만주국 마정과장을 지낸 홍순일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홍순일은 6·25 때 납치당했다. 육인순은 1963년 서울특별시립부녀사업관장으로 임명되었고, 1969년에는 서울 망우동에 혜원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1972년 암으로 사망했다.

육인순의 장남 홍세표는 외환은행장을 지낸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있다. 장녀 홍은표는 고시 3과에 합격한 수재로 유명한 장덕진 대륙종합개발 회장의 부인이다. 차녀 홍소자는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냈는데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남편이다. 보스턴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은 홍소자는 5·16 이후 한동안 육영수의 개인 비서를 맡기도 했다. 한승수-홍소자의 장남 한상준은 이수영 OCI(동양제철화학에서 개명) 회장의 조카딸과 결혼해, 장인이 지배하는 회사인 유니드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승수-홍소자의 사위는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이다. 김세연의 부친은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진재다. 3녀 홍정자는 유연상 전 영남대 이사장과 결혼했다. 홍정자는 육영수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기르고 보살폈던 조카였다. 4녀 홍지자의 남편은 정영삼이다. 정영삼은 한국민속촌을 경영하는 조원관광진흥(주)의 회장이고, 장남인 정원석이 대표이사 사장이다. 5녀 홍재희는 윤석민 전 국회의원의 부인이다. 두 사람은 전 경기여고 교장이던 주월영씨의 소개로 1973년 결혼했다. 육인순의 차남 홍국표는 미국에 살고 있다. 막내인 3남 홍민표는 현대자동차 상무를 거쳐 혜원학원 이사장으로 있다.

육종관의 장남이자 육영수의 오빠인 육인수는 5·16 전에는 서울고·경동고 등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이후 공화당 공천을 받아 고향인 옥천·보은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5선 국회의원(6~10대)과 국회 문화공보위원장을 지냈다. 육영수의 여동생 육예수의 남편 조태호는 박정희와 대구사범 동기동창인데 부산일보 회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