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을라” 청와대의 고민
  • 감명국·김회권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12.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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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파장…정부 여당 “환영” 이면의 속사정

숨 돌릴 틈이 없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숨 가쁜 정국이 전개되고 있다. 4월의 세월호 참사, 11월의 청와대 문건 유출 및 비선권력 암투설, 급기야 세밑에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이라는 블랙홀이 나라 전체를 집어삼켰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12월19일 오전 10시30분. 다시 대한민국은 둘로 갈렸다. 여러 단체들은 ‘환영’과 ‘분노’라는 상반된 입장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반겼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주의 기초의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헌재) 결정을 전후해 언론들은 일제히 “청와대 문건 유출과 비선권력의 인사 개입설 등으로 휘청이던 청와대가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역풍’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헌재 결정 직후 청와대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듯하다.

ⓒ 연합뉴스
“청와대 비선 파문 덮으려다간 역풍 맞을 것”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만약 여권이 이 건을 이용해 비선 국정 농단 의혹을 덮으려 하는 등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역풍을 맞을 것이다. 야권 전반에 대한 국민적 동정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청와대가 여러 의혹들로 코너에 몰렸고, 비판의 집중포화를 받던 상황에서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층의 대응 이슈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추락하는 (국정)지지율의 급반등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국민들 입장에서는 ‘(헌재 결정) 타이밍이 참 절묘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랬다. ‘어쩔 수 없이’ 헌재 결정은 일단 청와대 비선권력 의혹을 집어삼키는 모양새가 됐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사회적 관심을 돌려버리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 관계자도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날인 12월18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내일이면 여러분들 관심이 다 저기(헌재)로 갈 것 아니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기도 했다. 이현우 교수 등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섣부르게 정국의 물꼬를 ‘청와대 비선권력’에서 ‘통진당 해산’으로 바꾸려 들다간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청와대는 헌재가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강조하며 이번 결정에 대해 무관심한 듯한 모습이다. 정부와 헌재는 엄연히 별개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과 헌재가 완전히 별개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이번 결정으로 헌재가 과연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견해를 밝혔다. 헌재 재판관 9명은 대통령 추천 3인, 대법원장 추천 3인, 국회 추천 3인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추천 역시 여당이 과반 이상인 구도에서 야당 추천 몫은 1인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부·여당이 최대 8명까지 인사권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이번 결정에서 8 대 1의 결과가 나왔고, 그 유일한 반대 의견 1인이 야당 추천 몫 재판관이었다는 점은 이와 같은 헌재 구도를 대변해준다(43면 상자기사 참조).

법조계에서는 정당해산심판을 정치색이 가장 강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법무부가 대표로 나서지만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가장 정치적일 수 있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2월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갑자기 ‘종북’ 논란을 빚은 신은미·황선씨의 토크콘서트를 언급했다.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 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사안의 비중에 비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발언을 이어갔다. 자연인들의 작은 콘서트에 대해 대통령이 이렇게 비중 있는 발언을 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를 받고 있던 통진당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올라왔을 당시에도 지체 없이 재가했다.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헌재 결정 사안이라 정부의 직접적 책임은 아니라는 식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이번 건은 현 정부가 직접 관여해서 사건을 초래했기 때문에 정권 자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과 도덕적 기준도 더욱 엄격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결과적으로 이번 결정의 후폭풍으로 정윤회 문건 파문 건이나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논란 건 등에 대해 현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고 넘어가는지, 만약 국민들의 기대치에 만족하기 어려운 조치를 내놓는다면 여론의 역풍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12월19일 헌재 결정으로 통진당 해산에 이목이 쏠리기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수세에 몰린 형국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문고리 권력으로 칭해졌던 세 비서관의 사퇴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실제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김 실장은 물론, 인사 개입 등의 구설에 오르내렸던 이재만·안봉근 비서관 정도는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또 하나의 관심은 내년 4월29일 시행될 재·보선이다. 원래 2015년은 선거가 없는 해였다. 그만큼 여야 지도부뿐 아니라 청와대 역시 정치적 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번 통진당 해산 판결로 세 지역에 대한 재·보선이 불가피하게 됐다. 비록 세 곳에 불과한 ‘미니 선거’지만 사실상 내년의 유일한 선거라는 점에서, 또 그 선거가 통진당 해산으로 촉발됐다는 점에서 그 결과는 박근혜정부 집권 3년 차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2월19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직후 이정희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만약 세 군데에서 모두 여당이 완패한다면 정당 해산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으며, 이는 곧바로 현 정권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리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새정치연합에서는 이 선거를 지금껏 여권에 일방적으로 밀려왔던 정국 주도권 반등의 기회로 삼겠다는 태세다. 지역구 역시 야당에 유리하다. 광주 서구는 야당의 텃밭이고, 서울 관악을과 경기 성남중원 역시 야세가 강한 편이다. 반면 여당의 입장에서는 광주는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2곳에서 모두 패한다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 주도권을 쥐는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헌재 판결이 나오기 전 여당 내에서는 조심스럽게 통진당 해산 기각 결정이 향후 정국 운영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이라는 결정이 나올 경우 ‘민주주의 탄압’이라는 역풍이 불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 입장에서는 향후 선거에서 통진당이 해산되는 것보다 존속되는 게 야권 표 분산 차원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당은 해산, 지역구 의원은 유지’가 최상의 시나리오란 말이 있다. 내년만큼은 선거 없는 해로 가고 싶다는 뜻이겠지. 통진당 지역구 선거에 나서봐야 우리에게 유리할 게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여당 “해산 기각 결정이 우리에겐 더 유리”

이번 결정을 바라보는 새누리당 분위기는 복잡 미묘하다. 겉으로는 “환영” 입장을 나타내고 있으나, 내심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이 결정된 그 역사적 현장에 집권 여당으로 기록되는 부담감 탓이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은 향후 선거 등 여야 정치 구도상 통진당 해산이 결코 여당에 이롭지 않다는 점이다. 윤희웅 센터장은 “결과적으로 통진당 해산으로 인해 야권 표가 분산되는 경향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반면 여권은 ‘종북’을 고리로 한 보수층의 결집이나 확장을 꾀하기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유창선 박사 역시 “다음 선거에서 여권이 종북 카드를 쓸 수 없게 됐다는 점은 오히려 정부·여당에 악재”라고 평가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어차피 통진당 해산 문제는 진보와 보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정국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새정치연합이 헌재를 비판하고 나선다면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이 되기 때문에 부담이 될 것이다. 또 문재인 의원이 또 한 번 통진당을 두둔하게 된다면,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야당이 이 문제를 쉽게 정치 쟁점으로 몰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야권은 청와대를 표적으로 정부의 경직성과 공안몰이를 집중 부각시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현우 교수는 “지금처럼 자유가 확대되는 추세에 역행해서 앞으로 국민들의 표현이나 행동에서 자기통제가 수반되는 등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유창선 박사는 “국민들 사이에서 ‘박근혜정부가 참 독하구나’라는 인상이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현 정부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을 해산시킨 비민주적 정권”이라는 야권의 공세 프레임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박근혜정부에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벌써부터 박정희 정권 때 빚어진 민청학련·인혁당 사건과 오버랩하려는 시각도 제기된다.

 

 


헌재, 정권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나 


노무현 정부 때의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심판을 받았다면, 해산명령 결정이 이뤄졌을까. 거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이 아닌 2014년 지금 탄핵심판을 헌재에서 받는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런 만약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가정이다.

헌재는 과거에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마다 ‘심판자’ 노릇을 했다. 2004년 3월에는 국회에서 통과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재의 손으로 넘어왔다. 노 대통령의 정치중립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멈춰 선 동안 세상의 모든 눈은 헌재로 모아졌다. 두 달간 집중심리가 벌어졌고 5월 탄핵소추안은 기각됐다. 당시 헌재 9인의 재판관 중 2인은 노 대통령의 임기 중에 임명됐고 나머지 7명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임명됐다. 재판관과 임명의 상관관계가 당시 기각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이번에 대한민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정당해산심판은 법조계에서도 정치색이 가장 강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나섰기 때문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명령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위헌정당해산 심판제도는 소수정당을 보호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헌재의 판단 덕에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적지 않게 쏟아진다.

이번 재판관들 9명의 면면을 보면 전체적으로 보수색이 짙다. 보수정권이 연속해 집권에 성공하며 생긴 현상이다. 박한철 헌재소장과 안창호 재판관은 공안 검사 출신이다. 이진성 재판관과 김창종 재판관은 보수색이 짙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았고, 서기석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보수 일색도 그렇지만 2017년 1월에 있을 헌재소장 인사도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 박 소장을 제외한 나머지 8인이 모두 잠재적인 후보다. 각자 소신 있게 판단했을 거라 믿고 싶지만 임명권자의 정치적 견해와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처럼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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