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떨어질 때마다 속이 쓰리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4.12.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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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값 하락에 DLS 가입자 울상…전문가 “환매 서두를 필요 없어”

2014년 세밑 최대의 화두 중 하나는 원유다. 가격 하락세가 급전직하다. 중동산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6개월 사이에 반 토막 났다. 원유가 전체 수출의 75%를 차지하는 러시아는 부도 위기다.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수입 물가 하락으로 내수 경기엔 긍정적이지만 글로벌 변동성이 커졌다. 내수주를 포함한 코스피 주가가 지지부진한 이유다. 직격탄을 맞은 원유 DLS(파생결합증권) 가입자들은 더욱 울상이다. 증권사마다 중도 환매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국제 원유 가격은 전례 없는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WTI 가격은 올 6월만 해도 배럴당 107달러였는데 현재 55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불과 반년도 안 돼 50%가량 추락했다. 브렌트유 역시 같은 기간 배럴당 115달러에서 59달러까지 낮아졌다. 둘 다 2009년 이후 최저치다.

ⓒ 일러스트 최길수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미국이 셰일 에너지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원유 공급량이 대폭 늘어났다. 미국이 40여 년 유지해온 원유 수출 금지 정책을 접고 수출을 재개한 배경이다. 결정적인 건 중동 산유국들의 움직임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단체 행동에 나서길 주저했다. 오히려 주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떨어져도 감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선 ‘강(强)달러’ 현상을 저유가의 핵심 배경으로 꼽고 있다.

통화 가치가 급락한 러시아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디폴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부채가 많은 산유국 베네수엘라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2015년 WTI 가격이 배럴당 5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황금알’인 줄 알았던 원유 DLS도 애물단지로 변했다. 상당수가 손실 가능 구간(녹인·knock-in)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DLS는 주가연계증권(ELS)과 같은 구조의 파생형 금융상품이다. ELS가 특정 종목의 주가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있는 반면, DLS는 원유·금·은·구리·신용·환율 등 주가 이외의 상품·지표를 추종하는 점이 다르다. 기초자산을 원유·금 등 2개로 정하는 게 대부분이다. 둘 중 하나라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면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만기의 기초자산 가격이 발행 때와 비교해 40~60%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연 10% 안팎의 비교적 높은 수익을 지급한다. 이 밑으로 내려가면 하락률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만기는 1~3년이다. 보통 100만원 이상 10만원 단위로 청약한다.

지금까지 원금 손실이 발생한 원유 DLS의 발행 잔액은 2000억원 규모다. 발행 종류는 120여 종이다. 하락률이 가파른 WTI형 DLS의 손실액이 가장 많다. 증권가에선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까지 낮아지면, 손실 구간에 진입하는 원유 DLS가 8000억원대로 급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원금 손실 조건이 공개되지 않은 사모형 DLS의 피해는 더욱 클 수 있다. 저금리 시대의 총아로 각광받아온 DLS 시장도 급속히 위축될 조짐이다. 손실 위험이 커졌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가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를 보면, 올 11월 DLS 발행액은 1조3836억원이었다. 전달인 10월(2조1804억원)에 비해 36.5%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같은 달의 1조7939억원과 비교해도 22.9% 줄어들었다.

상품 DLS 줄줄이 손실 위기

DLS가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섰다고 해서 당장 환매할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일단 환매하면 현재 시점의 손실이 그대로 확정되는 데다 각종 수수료 부담까지 져야 하기 때문이다. DLS의 상품 구조를 보면, 일시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손실을 보는 건 아니다. 기초자산인 원유 가격이 반등하면 원금 회복은 물론 일정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손실 폭 확대가 불가피하겠지만 상환일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강유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2015년 상반기 이후에는 배럴당 평균 70달러 선으로 회복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며 “워낙 변동성이 큰 게 원자재 시장이어서 DLS 만기 전까지 손실을 만회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DLS에 가입하기 전 상품 구조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판매사에 환불을 요청하거나 금융당국에 민원을 제기해도 된다. 다만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서약서에 자필 서명을 했다면 구제받기가 쉽지는 않다.

새로운 원유 DLS를 저가 매수하는 방법은 어떨까.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원금 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는 게 낫다는 조언이다. 예컨대 일부 증권사는 만기 가격이 계약 시점보다 떨어지면 원금만 지급하고 상승하면 18~20%까지 수익을 주는 원유 DLS를 선보이고 있다. 이런 원금 보장형 상품의 만기는 1년짜리가 다수다.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원유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많아 투자자가 많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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