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김정일 대화록’ 통해 해답 찾았나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
  • 승인 2015.01.0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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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언급한 김정은 신년사 행간에 숨겨진 속내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도 만날 것입니다.” 지난 2012년 11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피력했다. 당시 이미 북한 최고 지도자로 등극해 있던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년 지도자 사이에 정상회담 테이블이 차려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로부터 2년여 만에 김정은의 화답이 나왔다. 1월1일 북한관영 조선중앙TV로 29분간 방영된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 제1비서가 직접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정은은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대로’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남북정상회담에 나설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 간 정상회담 문제가 새해 최대 정국 이슈로 떠올랐다.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월1일 0시 화려한 불꽃놀이로 새해를 맞이했다. ⓒ 연합뉴스
냉전 체제 박정희-김일성 후손 간 만남

본질적으로 양자 정상회담 성사에는 당사자인 최고 지도자 두 사람의 결단이 핵심이라는 게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했거나 지켜본 고위 당국자들의 말이다. 대내외 환경이나 정세 등의 요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정상 간 의기투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개최 용의 표명과 김 제1비서의 ‘최고위급 회담’이 제대로 접점을 찾는다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김정은 정상회담은 치열한 체제 대결을 펼친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후손 간 만남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냉전 시기 18년간 정권의 존망을 걸고 맞선 결과 경제건설과 근대화를 앞세운 박정희는 승자가 됐다. 반면 김일성은 주체이념의 모순과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패자로 전락했다.

최고 권력자의 후예란 점 말고도 공통점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김 제1비서는 10대 시절 같은 유럽 지역인 스위스 베른에서 국제학교를 다녔다. 박 대통령은 22세 때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었고, 김정은의 경우 20세에 생모 고영희를 암으로 떠나보냈다.  

분명한 차이도 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서거한 지 33년 만에 국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경우 20대의 나이에 3대 세습을 통해 ‘물려받은 권력’이다. 북한은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에 대해 ‘자손정치’란 표현을 쓴다. 북한의 권력 승계에 슬쩍 뭉뚱그려 넣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올해 31세다. 박 대통령에 비해 32년 연하다. 박 대통령이 결혼을 하진 않았지만 나이로 보면 아들뻘인 상대와 정상회담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박 대통령과 만나 환담이나 오찬을 할 수 있지만, 회담의 경우 명목상 북한의 국가수반 격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내세울 것이란 관측도 제기한다. 김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을 의미하는 ‘수뇌회담’이란 표현 대신 ‘최고위급 회담’이란 말을 쓴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 핵심 당국자는 “과거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한이 최고위급 회담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며 “나이 문제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후끈 달아오른 정상회담 분위기를 놓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잖이 제기된다. 아무리 최고 지도자의 결심에 의해 언제든 성사될 수 있는 특성이 있다고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생각보다 많다는 측면에서다. 무엇보다 김정은 제1비서의 대남 인식이 정상회담장에 들어서기에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듯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관계 경색의 책임을 전적으로 한·미 당국에 전가하면서 여러 전제조건을 달고 있는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얘기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2015년 1월1일 집무실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육성으로 발표했다. ⓒ 연합뉴스
김정일이 전한 ‘박근혜 대처법’에 관심

지난해 10월 황병서 총정치국장 일행의 인천 방문을 계기로 조성됐던 고위급 접촉 재개 분위기는 북한이 대북 전단을 문제 삼으면서 다시 꼬였다. 이런 국면을 타개하려면 상당한 단계와 시간을 거치는 해빙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육성으로 제안한 남북 대화를 남한 측이 12월 말 통일준비위원회의 대북 대화 제의에 대한 호응으로 평가한 데 대해서도 ‘엇박자’란 진단이 나온다. 불필요하게 북한의 체면을 구길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미래연합 대표 시절인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배석자 없이 한 시간 동안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정은은 그때 상황을 담은 녹음파일이나 녹취록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며 박 대통령에 대한 인물 탐구를 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이 어린 아들에게 후계 수업을 통해 전해준 대남 비책 가운데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대한 분석과 대처법이 핵심 중 하나일 것이란 점에서다.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대통령에게 ‘금단의 사과’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단 사상 첫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노벨 평화상을 거머쥐었지만 대북 비밀 송금 논란에 시달렸고, ‘대북 퍼주기’란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집권 마지막 해 천문학적 규모의 대북 프로젝트를 담은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노무현 정부는 대화록 공개라는 초유의 사태와 그를 둘러싼 소모적 남남 갈등을 불렀다.

이런 대북 접근 방식에 비판의 날을 세운 이명박 정부도 정상회담의 달콤한 유혹을 비켜가진 못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보기관이 나선 제3국 비밀 접촉이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폭로되는 파국적 상황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이제 북한의 젊은 지도자와 대(代)를 이은 애증의 게임을 펼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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