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같은 정의파 검사는 없나
  • 하재근│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5.01.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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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에선 검찰을 권력자 파수꾼·자본 끄나풀로 묘사

최민수가 MBC 연기대상 황금연기자상 수상을 고사하면서 그가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오만과 편견>이 화제에 올랐다. 최민수는 이 작품에서 검사 역할을 맡고 있는데 ‘다른 때도 아니고 요즘은 제가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 살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뭐 잘한 게 있어야 상을 받죠, 그죠?’라며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나 할까요?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에 말입니다’라고 수상을 고사한 이유를 밝혔다.

<오만과 편견>은 15년 된 미제 사건을 추적하던 검사들이 윗선의 방해를 하나하나 뚫고 거악에 접근해간다는 설정이다. 여기서 최민수는 정의파 소장 검사의 수장인 민생안정팀 부장검사 역할이다. 일종의 이상화된 검사인데 그런 역할을 하다 보니 현실의 부조리가 더 크게 느껴진 것으로 보인다.

ⓒ MBC 제공
검찰에 대한 기대와 배신감

최민수가 지적한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이란 세월호 희생자와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가리킨다. 세월호 사건의 총체적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유병언 일가의 엽기적인 스토리로 관심이 옮겨가더니 유병언의 죽음으로 사건이 급하게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최민수는 검사만 열심히 달려들면 이런 일들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로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의 책임을 지고 수상을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의 부조리도 검사가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민수가 검찰에 대해 갖는 기대는 우리 국민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 하기에 따라서 사건의 실체가 덮일 수도 명명백백히 드러날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현실의 검찰은 서민을 위한 창이 아닌 권력과 금력의 방패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며 분노하거나 냉소한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혹시라도 검찰이 그 권력을 사용해 진짜 진실을 밝혀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요즘 드라마엔 이런 분노와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오만과 편견>의 이현주 작가는 “우리나라는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검사가 정말 열심히 일하면 살기 좋아질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검사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렇게 순수한 검찰의 모습을 단지 판타지라고 냉소한다. 드라마도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극 중에서 정의파 부장검사는 부하 검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쁜 놈들 잡는 거 다 네 능력인 줄 아니? 착각하지 마. 네가 잡아온 놈들 다 너보다 약한 놈들이야. 진짜 센 놈 잡으려면 다른 힘센 놈들 허락 받아야 해. 그것 없으면 검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못 잡아” “그게 말이에요. 반복돼왔던 이곳의 역사예요.”

극 중에서 정의파 검사들은 한 대기업의 비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더 큰 기업이 경쟁 기업을 누르기 위해 검사를 이용한 것이었다. 주요 보직에 있는 검사는 출세를 위해 고위직 인사와 개인적 주종 관계를 맺거나 자본의 끄나풀 노릇을 한다. 진실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이 권력자의 뜻을 대변하는 검찰에 의해 조작되거나 선별적으로 밝혀진다는 설정이다.

검찰을 그린 또 다른 드라마 <펀치>에선 더 우울한 풍경이 펼쳐진다. ‘공안검사로 수많은 조작 사건을 만든 전력을 반성하지 않고 검찰 내 파벌을 만들어 자기 사람을 주요 보직에 앉힌’ 사람이 ‘2000여 검사를 지휘하는 수장이자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법의 제왕’인 검찰총장이 돼 정의는커녕 악의 축 노릇을 한다는 설정이다. 그의 배후에도 자본이 있다. 극 중에서 검찰총장은 ‘검찰 봉급 받으나 콩밥 먹으나 나랏밥 먹기는 매한가지 아이가’라고 하는데, 이는 검찰이 하는 일과 범죄자가 하는 일 사이에 차이가 별로 없다는 냉소가 극명히 드러난 대사였다. 극 중에서 대검찰청 반부패부장도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미운 놈에게만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더 큰 권력자를 위한 창 정도로 쓴다.

드라마 속에서 검찰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어떤 사건을 조사할지, 누구의 뒤를 캘지를 검찰이 알아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조사하던 사건을 덮는 것도 검찰 마음이다. 이런 힘을 가진 검찰이 권력자와 ‘부당 거래’를 일삼는다는 것이 영화 <부당거래>의 내용이다.

검찰이 ‘검새’로 불리는 현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검찰이 이런 식으로 묘사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검찰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스폰서 파문, 성적 일탈 등이 일어나며 ‘떡찰’ ‘검새’ 같은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다. 검찰 수사를 못 믿기 때문에 정치권에선 툭하면 특검이나 국정조사 논란이 벌어진다. 예컨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권력형 비리 혐의가 무혐의로 처분되고 일부 개인 비리로만 불구속 기소됐을 때도 편파수사 논란이 일었고, 2011년엔 검찰의 정치적 행태에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며 검사가 사직한 사건도 있었다.

최근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으로 검찰의 행태가 다시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와대가 설정한 가이드라인에 수사를 짜 맞추는 것이 아닌지, 정윤회씨가 출두했을 때 ‘황제 의전’을 펼친 것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서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가 검찰 집단을 권력자의 파수꾼으로, 자본의 끄나풀로 묘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법의 제왕’에 대한 기대도 놓칠 수 없다. 검찰이 그런 권능을 갖고 있는 만큼 그 힘을 서민과 진실을 위해 써주길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희망이 드라마에서 대리만족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 대리만족의 주인공인 정의파 검사 역의 최민수가 수상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현실의 검사도 이 정도의 기개와 소명의식을 가져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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