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하는 김무성, 곧 폭발?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1.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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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선제공격 따른 여당 갈등…새해 전면전 예고

그야말로 날 선 공세였다. 쌓여온 불만이 ‘직설’로 쏟아졌다. “당직 인사권을 사유화했다.” “길을 잘못 가면 지적해야 한다.” “29% 전당대회 득표율로 92%의 권한을 행사한다.” 모두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한 비난이다. 지난해 12월30일 ‘친박(근혜)계’ 의원 39명이 참석한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송년 오찬 자리는 김 대표에 대한 성토로 채워졌다. 여당의 주류인 친박계와 당권을 손에 쥔 비주류·비박(근혜)계 사이의 갈등이 새해 정국 들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양측의 대립은 지난해 말 이후 급속도로 표면화하는 양상이다. 김 대표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여의도연구소장으로 기용하려는 데 대해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것이 대표적이다.

당·청 관계의 경우 일찌감치 불협화음이 빚어졌다. 지난해 7월 비박 진영의 지지를 등에 업은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당 지도부와 청와대 사이의 관계는 계속 삐걱거렸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당 대표’를 표방했던 김 대표는 개헌 논의를 제기하는가 하면,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강행에 제동을 거는 등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지난 12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친박계 핵심 의원 7명과 비밀 회동을 가진 것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지도부를 제쳐두고, 신뢰할 만한 친박 중진들을 통해 여당 단속에 나섰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21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열린 국제민주연맹 당수회의 참석을 위해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 총선 ‘공천’ 두고 신경전 치열해질 듯

5년 단임의 대통령에게 집권 3년 차는 ‘반환점’이다. 취임 초기 강력했던 지지 기반이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때다. ‘현재 권력’이 주춤해진 틈을 타 ‘미래 권력’을 향한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이 시기에 집권 여당 내 헤게모니 다툼이 표면화하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새누리당 상황이 그렇다. 한동안 잠잠했던 당내 친박 세력이 ‘김무성 때리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는 것은 그로 인한 위기감의 발로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심을 끄는 것은 여당 내 권력투쟁이 박근혜정부에 미칠 영향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현재 권력’ 친박과 ‘미래 권력’을 꿈꾸는 비박 사이의 갈등이 점차 고조될 것이며, 이로 인해 여권 비주류 세력 상당수가 현 정권에 등을 돌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역설적이게도 야권을 향한 국민들의 지지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지지받지 못하는 야당이 정국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 지지율이 적어도 30%는 넘어야 여당에서도 이를 견제할 대응책 및 전략을 고민하게 된다. 지금처럼 야권 지지세가 지리멸렬한 상황에선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결국 여당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이 격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갈등 전선이 ‘여 대 야’ 구도로 흘러가지 못하니 ‘여 대 여’로 굳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정부·여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당내 세력 간 입장 차이가 극한 대립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의 군인·사학 연금 개혁 추진 방침이 알려지자 김 대표가 거세게 반발해 하루 만에 철회된 일도 있다.

둘째, 차기 대권을 꿈꾸는 김무성 대표가 본격적으로 ‘마이웨이’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6개월간 김 대표는 개헌 발언 등 청와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이어가면서도 이에 대해 철회하거나 사과하며 수습하는 모습을 반복했다. 하지만 정권 3년 차에 들어서면서 김 대표의 행보가 더욱 과감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친박 진영의 핵심 전략가로 통하는 여당 내 한 인사는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사이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나마 김 대표가 정권 초반, 당 대표 임기 초반이라 자중한 게 이 정도다. 하지만 김 대표도 정치적 승부수를 걸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산적한 현안에 자기 목소리를 내며 여권 내 입지를 굳히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친박 “6개월 두고 봤지만 더는 못 참아”

셋째, 당내 권력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이벤트인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치러질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 및 공천 방식을 둘러싼 파워게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한 4월 재·보궐 선거라는 변수가 떠올랐다. 20대 총선 ‘공천 전쟁’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 선거 결과에 따라 비박 지도부를 향한 공격의 빌미가 마련될 수도 있다. 5월에는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있다. 여당 권력 구도에 영항을 미칠 각종 이벤트들이 촘촘히 이어진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친박과 비박 양대 세력의 지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래 권력을 도모해야 하는 비박계 입장과 현재 권력을 강화해야 하는 친박계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협화음, 긴장 관계가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친박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김무성 대표를 향한 공세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청 간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사무총장이다. 그런데 김 대표 취임 후 주요 당직자 임명 과정에서 (친박계인) 최고위원들과 기본적인 합의가 없었다. 현재 당·청 소통 문제는 여기서 기인한 바 크다”며 “당시에는 6개월만 두고 보자며 참고 넘어갔지만 올해부터는 문제를 바로잡아 당·청 간에 원만하게 소통하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특임장관·정무장관 등을 신설해 당·청 소통을 강화하는 방안을 건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박 진영 주도의 당 지도부를 우회하는 별도의 소통 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할 정도로 위기감이 상당한 친박계의 속내가 읽힌다.

지금 박근혜정부 앞에는 격화되는 당내 헤게모니 투쟁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인 만큼 국정 운영 성과를 도출해내야 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 청와대가 친박 세력을 등에 업고 강한 정책 드라이브를 시도할 경우, ‘마이웨이’에 나선 김무성 대표 등 비박 세력이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2015년은 여러모로 정부·여당에 ‘바람 잘 날 없는’ 한 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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