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의사’가 당신 얼굴에 칼 들이댄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1.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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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의 안전불감증과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수술 후 사망, 수술실 생일파티, 음주 수술 등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연이어 성형외과에서 벌어졌다. 그럼에도 온갖 꼼수 마케팅으로 화장한 채 끊임없이 환자를 유혹한다. 시사저널은 한 여대생의 사망 사건을 통해 성형외과의 감춰진 민낯을 들여다봤다. 환자도 모르게 집도하는 유령 의사, 보따리 마취과 전문의, 간호사 행세를 하는 간호조무사 등 추악한 모습이 드러났다.

 


최근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21세 여대생 정 아무개씨가 사망했다. 4시간 동안 광대뼈와 턱뼈를 깎는 안면윤곽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밤 11시쯤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 성형외과는 정부로부터 우수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성형수술 후 사망 및 합병증 사례가 이제는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로 잦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성형외과업계가 안전불감증을 넘어 도덕적 해이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번 여대생 사망 사건은 성형외과의 적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전화 주문 오면 출장 다니는 마취과 의사

성형수술 후 사망하는 경우, 십중팔구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발생한다. 지혈해놓은 혈관이 재채기 등으로 터지고 출혈이 생겨 기도를 막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얼굴은 복잡한 혈관과 신경이 지나고 있어 다른 부위보다 출혈이 많다. 이런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면 사망까지 이르진 않는다. 때문에 수술 후 24시간 정도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게 원칙이다. 특히 사망한 정씨처럼 전신마취 환자는 수술 후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마취과 전문의가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수술 후 정씨 곁에 의사는 물론 간호사도 없었다. 그 성형외과는 평소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정직한 병원’이라고 홍보해왔다. 그 시각에 마취과 의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심재항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수술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기 쉬운 상태로 마취시키고 이어 또 다른 수술실로 향하기 바쁜 게 성형외과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돈벌이가 우선인 병원에서 환자 안전은 공염불이라는 것이다. 정씨의 사망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던 셈이다.

기자가 만난 한 마취과 전문의는 성형외과를 성형공장으로, 의사는 공장장으로 표현했다. 그는 “수술을 많이 하는 성형외과에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마취과 의사가 상주한다는 것 자체를 광고할 정도로 마취과 의사를 채용한 성형외과는 드물다”고 밝혔다. 마취과 전문의가 있는 성형외과는 10곳 중 2곳뿐이고, 국내 최고의 성형외과가 밀집한 서울 강남에 있는 병원에도 심장충격기 등 응급 장비를 갖춘 곳은 1%에 불과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상당수 성형외과는 ‘프리랜서 마취과 의사’나 ‘보따리 마취과 의사’를 활용한다. 프리랜서 마취과 의사는 A병원·B병원·C병원에 적을 두고, 각 병원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대신 세 곳을 오가며 의료행위를 한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마취과 의사 4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한 명이 보통 2~3개 병원에 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수술 후 회복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은 한가로운 소리다. 성형외과는 적은 비용으로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는 병원’이라고 홍보하며 환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보따리 마취과 의사는 팀을 짜서 사무실을 얻은 다음 주변 성형외과들로부터 전화 주문을 받는다. 해당 날짜에 여러 성형외과를 돌며 수술 전 마취를 해주고 보수를 받는다. 대리운전 기사처럼 시간을 아껴 여러 병원을 돌아야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한 마취과 전문의는 “성형외과에서 콜(전화 요청)이 오면 그 병원으로 가서 마취를 해주고 곧바로 다른 성형외과로 가기 때문에 환자 회복 과정을 지켜볼 시간이 없다”며 “마취과 의사 없이 성형외과 의사나 간호사, 심지어 간호조무사가 마취를 하는 성형외과도 있다”고 밝혔다.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사가 마취 행위를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관성적으로 마취과 의사 역할을 대신한다는 설명이다. 성형외과는 인건비를 절약하겠지만 환자의 안전은 담보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유령 의사로 인한 수술 피해자 10만명 이상”

여대생 정씨의 사망 사건에는 ‘섀도 닥터’(유령 의사)도 개입돼 있다. 정씨는 성형외과 의사와 상담했고 그 의사가 집도할 것으로 알았지만 실제 수술은 치과 전문의가 맡았다. 마취 상태의 환자는 어떤 의사가 집도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의사를 유령 의사라고 부른다. 해당 병원장을 아는 한 대학병원 교수는 “그 원장은 안면윤곽수술 전문가가 아니어서 구강외과 전문의에게 수술을 맡겼다”고 말했다.

다른 의사가 집도한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사람(의사가 아닌 경우도 있다)이 환자와 보호자를 속인 채 수술하는 행위는 범죄 행위다. 이런 행위가 만연한 가운데 지난해 2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유령 의사로부터 눈·코 성형수술을 받은 여고생이 뇌사 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까지 유령 의사 문제가 제기됐다. 국감에 출석한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돈에 눈이 먼 의사들이 벌이고 있는 심각한 범죄”라고 말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유령 의사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이례적으로 자정 선언을 했다. ‘과대광고에 속지 말고 유령 수술에 당하지 마세요’라는 유인물을 제작해 회원 의료기관에 배포했고, 유령 의사 수술에 대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암세포’라는 표현까지 쓰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추정한 유령 의사 수술 피해자는 10만명 이상이고, 서울 강남에만 유령 의사가 300명에 달한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측은 “불법적인 광고나 유명 연예인을 이용한 광고, 인터넷 카페,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을 통한 알선 광고, 할인 유혹 광고 등을 하는 병원들은 의사의 실력 또한 검증된 적이 없으며 유령 의사가 수술을 하고 있거나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유령 수술을 할 병원으로 의심하라”고 권고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내에 설치된 성형외과 광고판들. ⓒ 시사저널 최준필
“성형외과 의사라도 양악수술 막 해선 안 돼”

여대생 정씨가 받은 안면윤곽수술이나 양악수술은 얼굴의 뼈를 자르고 붙이는 고난도 수술이다. 선천적 기형, 외상, 화상 등으로 심한 외형적 변형이 있는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고안된 양악수술은 수술 경험이 10년 넘은 의사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다고 한다. 워낙 수술 부위가 좁고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있는 뼈를 잘라야 하는 데다 턱 부위에는 뼈·근육·기도·신경 등 다양한 조직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위아래 턱은 치아와 연결돼 있는 만큼 외국에서는 치과 전문의가 양악수술을 한다. 미국 퍼시픽 치과대학 교정과 교수로 7년간 재직했던 조헌제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 회장(앵글치과 원장)은 “미국에서는 치아 교합(입을 다물었을 때 위아래 턱의 치아가 서로 맞물리는 상태)을 아는 치과 전문의, 그중에서도 구강외과나 교정과 의사가 양악수술을 한다”며 “성형외과가 양악수술을 하면 큰일 나는 것으로 여긴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이 수술을 하는 경우는 그 의사가 의대에서 양악수술 관련 수련을 마친 경우뿐”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경험을 쌓은 의사가, 그것도 치아 교합을 잘 아는 구강외과·교정과 의사가 양악수술을 하는 것이 국제 표준인데, 한국에서는 의사라면 누구나 양악수술을 할 수 있다. 국내에 치과는 약 3만개다. 하지만 대학에서 치아 교정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의사는 3%가 채 안 된다. 한 치과 전문의는 “성형외과 의사 가운데 양악수술을 제대로 수련한 의사는 거의 없다”며 “있더라도 대학에서 정식으로 수련한 것이 아니라 어깨너머로 배운 정도로 환자를 수술하다 보니 수술 후 합병증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합병증은 음식물을 씹지 못하거나 신경 손상으로 감각이 마비되는 증상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더라도 수술 합병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전체의 20~3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치과·성형외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구강외과나 교정과 수련을 받아 양악수술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가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얼굴 모양이 엉망이 되거나 사망하는 등 다양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연합뉴스
“양악수술 환자 95%는 수술 필요 없어”

지난해 초 한 젊은 여성은 돌출된 입 때문에 고민하다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치아와 양악 상태를 살펴본 치과 전문의는 양악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환자라고 진단했다. 치아 교정만으로 될 일을 성형외과가 수술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한 치과 의료계 관계자는 “돌출 입, 무턱, 주걱턱을 가진 사람이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수술 환자의 95% 정도는 수술이 필요 없다”며 “수술 환자의 대부분은 치아 교정만으로 균형 잡힌 얼굴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으로 사망 사고를 포함한 성형외과 의료분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회 남윤인순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 445건이던 의료분쟁이 2013년 731건으로 60% 넘게 급증했다. 이상일 울산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성형외과 진료 특성상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망·합병증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술 경험이 적거나 없음에도 병원 수익을 위해 무리하게 수술을 진행하는 비뚤어진 의료계 현실도 이번 여대생 사망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본다. 성형외과가 포화 상태여서 경쟁이 심해지자 돈이 되는 양악수술이나 안면윤곽수술을 시도하는 의사가 늘면서 부작용과 사망 사고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성형외과뿐 아니라 모든 병원이 수익이 나는 비급여 진료를 늘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의대생도 내과·외과보다 돈이 되는 성형외과·피부과로 쏠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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