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일가·재벌가, 뉴욕·하와이 부동산 집중 매입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1.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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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 인사들, 1970년대부터 불법으로 해외 부동산 사들여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은 ‘재벌 해외 부동산 취득 관련 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21개 그룹 관련자 등 117명이 직접 또는 해외법인 등을 통해 272건의 해외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효성·SK·한화·한진그룹 등의 재계 인사들이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최근 금감원 조사가 마무리되면서 65건의 위반 사실이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KCC 이주용 회장 일가(2건)와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대표(2건),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1건) 등 5건은 심각한 위반 사항이었고, 금감원은 이를 검찰에 통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16쪽 표 참조).

금감원 조사로 해외 부동산을 소유한 재벌가 인사들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해외 부동산을 사서 되파는 ‘재테크’는 비단 재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정치인들도 1970년대부터 해외 부동산을 매입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재미교포 블로거 안치용씨는 2012년 발행한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통해 정·재계 권력자들의 해외 부동산 불법 매매와 불법 해외 재산 유출 현황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정·재계 인사들이 콘도와 저택을 매입한 뉴욕 맨해튼 일대. ⓒ AP 연합
전직 대통령 일가 불법 부동산 매입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따르면 정계의 해외 부동산 불법 매매는 ‘전직 대통령 일가’에서 주로 이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는 1998년 최태원 SK 회장과 결혼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집을 샀다. 매입 가격은 51만5000달러(5억6000만원)였다. 노소영·최태원 부부가 거래하던 미국 은행들이 뉴욕 주 재무부에 최태원 회장의 휴면계좌를 신고하면서 밝혀진 이들 부부의 주소지는 뉴욕 맨해튼 57가의 한 콘도였다. 이 콘도의 소유주는 ‘티볼리’라는 법인이었다. 그런데 티볼리의 사장이 바로 SK 미주법인 이사였다. 사실상 SK그룹이 이 콘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정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도 마찬가지로 미국 부동산을 대거 매입했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는 탤런트 박상아씨와 결혼하면서 불법으로 미국 부동산을 구입하는 등 비자금 일부를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2003년 구입한 36만5000달러(4억원)의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주택과 2005년 매입한 뉴포트비치의 저택 등 박상아씨 명의로 된 부동산이 재용씨의 차명 재산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연합뉴스, ⓒ 국회사진기자단 , ⓒ 매일경제
‘해외 부동산 한도’ 무시한 채 매입

전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재만씨는 이희상 동아원 회장의 맏딸 윤혜씨와 결혼했다. 장인인 이 회장은 미국 내 부동산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5년 최초로 구입한 뉴저지 주택과 1987년 매입한 뉴욕 맨해튼의 콘도(31만 달러)를 비롯해 2001년 콘도 매입을 대행한 회계사와 공동으로 구매한 340만 달러(37억1000만원)의 단독주택 등이 있다. 장남 이건훈 FMK 대표와 함께 2007년 매입한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콘도는 2009년 일부 지분을 이윤혜씨에게 팔아 전재만 부부도 소유주가 됐다. 전재만씨는 곧바로 자신의 지분 전체를 부인 이윤혜씨에게 넘겨 ‘전두환 비자금 몰수’의 불똥을 피했다.

전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도 부인 전춘지씨와 아들 창규씨 명의로 전 전 대통령 퇴임 직전인 1988년 뉴저지의 주택을 사들였다. 1995년 전두환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6년 동안 주택을 보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이복언니인 박재옥씨와 남편 한병기씨 부부도 1976년 뉴욕 부동산을 사들였다. 당시 20만5000달러(2억2000만원)에 매입한 집은 현 시세로 400만 달러(43억6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박정희 대통령이 실각할 경우 망명할 곳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박재옥씨 부부는 하와이에서도 부동산을 매입했다. 1997년 사들인 하와이의 콘도는 24만 달러였고, 이 부동산 취득 역시 불법이었다. 2006년 5월 이전까지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구입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주거용 해외 부동산만 살 수 있었고, 실제 살고 있는지도 입증해야 했다. 주거용 부동산이라도 매입 한도가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 주거용으로 매입할 수 있는 해외 부동산 한도는 10만 달러(1억1000만원), 2005년 7월1일 이전까지는 30만 달러(3억3000만원)였다. 액수에 제한 없이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은 2006년 3월2일부터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맡았다.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는 ‘철강왕’ 박 명예회장에게는 4명의 딸이 있다. 그중 둘째 딸인 박유아씨는 ‘고시 3관왕(사법·외무·행정고시)’으로 유명한 고승덕 전 의원과 결혼했고, 2002년 합의 이혼했다. 박씨는 1992년 뉴저지의 콘도를 매입했다. 2003년에는 뉴욕 맨해튼의 단독주택을 사들였는데, 당시 매입 가격이 무려 320만5000달러(35억원)에 달했다. 2006년과 2008년에는 맨해튼의 콘도를 구입했고, 2009년에는 옆 동 콘도 2채를 한꺼번에 사들였다. 하루 동안 매입한 금액이 200만 달러(21억8000만원)에 달했다. 이에 고 전 의원의 ‘해외 부동산 매입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고 전 의원은 2009년 “박유아의 미국 부동산 쇼핑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해명했고, 실제 고 전 의원은 해당 부동산의 매입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휴양지로 유명한 하와이 와이키키 주변도 한국 권력자들이 탐내는 곳이다. 이곳에 밀집된 전망 좋은 콘도 가운데 백사장 바로 앞에 있는 워터마크 콘도는  50% 이상의 입주자가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입주자 상당수가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관련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인 박영우·한유진 부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신정화 부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 효성 회장의 아들 조현상 효성 부사장 등이다. 2009년 국세청 조사 결과 이 콘도의 국내 거주자 44명 중 28세대가 거래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채 거래한 사실이 밝혀졌다. 해외 부동산 투자 한도를 없앤 뒤라 신고만 하면 불법이 아닌데도 양도소득세나 법인세 등을 내지 않기 위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와이·뉴욕에 한국인 부동산 많아

미국 부동산은 재벌에게도 인기가 많다. 삼성·GS·한국타이어·효성 등의 재계 인사들은 하와이 호놀룰루·와이키키뿐 아니라 뉴욕·샌프란시스코 등의 부동산을 고가에 매입했다. KBS는 지난해 6월 <시사기획 창>을 통해 재벌들의 미국 부동산 보유 내역을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삼성은 2013년 말 하와이의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카할라 해변에 있는 땅을 1325만 달러(144억4000만원)에 샀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도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있는 부동산을 89만5000달러(9억8000만원)에 매입했다고 한다. LA에는 이미경 CJ 부회장이 보유한 4채의 저택이 있고, 이 저택들의 가격은 총 550만 달러(60억원)에 달한다. 이 부회장은 저택 4채를 한꺼번에 사들여 인근 주민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LA 인근 바닷가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장(593만 달러)과 조현준 효성 사장의 별장(450만 달러)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구자홍 LS미래원 회장(360만 달러),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330만 달러), 구본무 LG그룹 회장 장녀 구연경씨(355만 달러)의 부동산이 있다. 뉴욕 역시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한진·효성·쌍용·SK·금강제화 등 재계 일가의 아파트와 콘도 등이 몰려 있다.

재벌가의 미국 부동산 매입은 투자용 부동산 취득이 불법이던 시절부터 이뤄졌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동생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고문은 1978년 하와이에 부동산을 사들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부인 이영학씨와 함께 아파트를 매입했고, 동생 조중식 전 한진건설 회장도 같은 아파트 다른 층을 사들였다. 2003년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동생 허용수 GS홀딩스 전무도 부친 허완구 승산그룹 창업주와 함께 나대지를 구입했다. 주거용 부동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불법이었다. LG가 구인회 창업자의 막내 동생 구두회 일가도 2003년 하와이 콘도 2개의 지분 일부를 샀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딸 최기원씨는 1999년 미국에서 불법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 대지가 1200평에 이르는 저택으로 당시 300만 달러(32억7000만원) 이상을 지불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별장을 470만 달러(51억2000만원)에 매입했다. 김 회장은 이 별장을 구입한 혐의로 1994년 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페이퍼컴퍼니’에 해외 부동산 숨겨 


정·재계 인사들의 해외 부동산 매입은 해외 투자를 금지했던 시절부터 시작됐다는 점, 투자가 가능한 시점에도 제한된 한도를 넘어 구매했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기에다 부동산을 거래한 수법이 ‘불법’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부동산 거래의 상당수는 페이퍼컴퍼니(유령 회사)를 이용했는데, 개인이 부동산을 구입한 후 법인에 넘기는 방식을 취했다. 소유주가 바뀌면 현재 소유주인 법인만 열람이 가능해져 원 소유주 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2008년 195만 달러(21억4000만원)에 매입한 미국 맨해튼의 콘도는 하루 만에 ‘39F1PROTERTY LLC’라는 회사에 0달러에 매각됐다. 이에 대해 애경그룹 측은 “개인보다는 법인에 넘기는 것이 세금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외동딸 김 아무개씨(30)가 구입한 센트럴파크 콘도도 의혹을 샀다. 콘도의 현 소유주는 페이퍼컴퍼니로 밝혀졌는데, 이 콘도에 김씨가 거주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개인 거래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해 법인으로 명의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부동산 취득과 관련한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쌍용그룹은 해외 자산과 관련한 수사가 진행됐을 때도 검찰의 눈을 피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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