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사옥에서 세금이 샌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1.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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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10대 대기업 사옥 공시지가 분석 시세 반영률, 주거용 아파트 비해 현저히 낮아

대한민국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 매각은 2014년 국내 경제계의 핫이슈였다. 한전 본사 부지는 지난해 9월18일 부지 매각 입찰 결과,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 컨소시엄을 구성한 현대차그룹이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았다. 한전 본사 부지 매각 이슈는 감정가의 3배에 이르는 고가 매입과 부지 매입 후 사업의 현실성 여부 등과 관련한 논란을 빚었다.

한전 본사 부지 매각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또 다른 시사점이 있다. 주로 기업이 보유한 업무용 부동산(토지)의 공시지가 산출 과정에서 불거지는 적정성 여부다. 매각 당시 한전 본사 부지(서울 강남구 삼성동 167번지)의 감정가는 3조3346억원이었다. 하지만 2013년 기준 한전 본사 부지의 공시지가는 1㎡당 1870만원이었다. 전체 면적은 7만9342㎡로 공시지가 기준으로 지가(地價)는 1조4830억원에 불과했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환산한 한전 부지의 땅값은 감정가의 44.5%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매각대금이 10조원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공시지가는 시세의 10% 수준밖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따라 오는 5월로 예정된 공시지가 산정에서 실제 시세를 얼마만큼 반영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하지만 한전 본사 부지의 공시지가가 현실에 맞게 책정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동안 기업이 보유한 업무용 빌딩의 토지 공시지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어서다. 주거용 아파트의 공시지가 산출과 달리 상대적으로 시세 반영률이 떨어지는 제도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시세와 따로 노는 대기업 사옥 공시지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11년 12월, 재벌 사옥의 과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경실련은 삼성·현대차그룹 등 국내 15대 재벌 사옥의 공시지가와 주변 대형 빌딩의 거래 현황을 비교해, 재벌 사옥의 공시지가가 실제 시세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재벌 사옥의 시세 반영률은 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후 재벌 사옥의 공시지가는 얼마나 현실화됐을까.

시사저널은 경실련의 2011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근 3년간 대기업 보유 사옥의 공시지가 변화 추이를 살펴봤다. 2014년 기준 재계 순위 10대 대기업을 표본으로 삼았다. 이들 대기업이 서울 지역에 보유한 사옥의 2014년 5월 기준 공시지가를 파악하고, 이를 재벌 사옥 주변에서 거래되는 대형 빌딩의 거래 시세와 비교했다.

삼성전자 사옥 시세 반영률 29.5% 불과

재벌 사옥의 매매 거래가 흔치 않은 만큼, 분석의 주요 변수인 주변 시세는 2011년 경실련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감정원의 지역별 토지 시세 상승률을 적용해 추정했다. 또 재계 순위 10대 재벌 중 서울에 별도 사옥이 없는 현대중공업은 제외했고, 대신 재계 순위 11위인 KT를 조사에 포함시켰다. 또 호텔이나 상가가 대거 입주한 복합건물을 대표 사옥으로 쓰고 있는 한화그룹(한화금융플라자)은 63빌딩을, 롯데그룹(롯데호텔)은 양평동 롯데제과 사옥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분석 결과, 10대 재벌 사옥의 공시지가 시세 반영률은 37.4%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1년 경실련 당시 조사에서 나타난 32%에 비해 5.4%포인트 상승한 수치지만, 여전히 30%대에 머물렀다. 각종 조사에서 나타난 아파트 공시지가 시세 반영률인 70%대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업무용 빌딩에 적용되는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사옥(서초구 서초동 1320번지)의 공시지가는 3.3㎡당 9477만6000원으로, 시세반영률은 29.5%였다. 10대 재벌 사옥 중 시세 반영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조사 당시 삼성전자 사옥의 시세 반영률은 25.8%였다. 공시지가 기준 장부가액은 3764억원이지만, 실제 시세 추정액은 1조2746억원으로 8900억원가량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231번지에 있는 현대차그룹 사옥의 토지 공시지가는 3.3㎡당 2109만6000원으로 시세 반영률 37.5%로 나타나 2011년 조사 결과(34.2%)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주요 대기업 사옥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GS타워(강남구 역삼동 679번지)의 시세 반영률은 35.5%, SK 서린동빌딩(종로구 서린동 99번지)은 39.3%, 포스코 본관(강남구 대치동 892번지)은 33.1%로 조사됐다. 시세 반영률이 40%대를 넘는 경우는 KT 광화문빌딩(종로구 세종로 100번지)과 한진빌딩(중구 소공동 32-7번지), 롯데제과(영등포구 양평동 4가2) 등 세 곳으로 각각 47.2%, 48.5%, 58.6% 정도였다. 분석 결과를 보면, 땅값이 비싼 강남구에서 시세 반영률이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대기업 업무용 빌딩 공시지가 산정의 적정성이 논란을 빚는 것은, 대기업에 상대적으로 과세 특혜를 더 많이 누리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공시지가는 양도세, 상속세, 증여세, 토지 초과 이득세 등 과세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세정의 중요한 잣대다. 재벌 사옥의 경우 대부분 일반 업무용 빌딩에 비해 요지에 자리 잡고 있고, 대지가 넓은 만큼 세제 혜택이 클 수밖에 없다.

경실련이 15대 재벌 사옥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재벌 사옥의 시세 총액이 262조원으로 추산됐는데, 공시지가 기준으로 장부가액은 83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시세보다 178조원이나 낮게 책정돼 한 해 1780억원(보유세 실효세율을 0.1%로 가정할 경우)의 과세 혜택을 누린 것으로 추정됐다.

업무용 토지 공시지가 개선 법안 ‘계류 중’

대기업이 보유한 업무용 빌딩의 공시지가 산정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정부가 경제 활성화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개선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특혜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5일 일반적인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 투자비에 신·증축하는 업무용 건축물의 건설비와 토지 매입비 등을 포함하기로 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업무용’의 범위에 대해서는 올해 2월 중 확정한다는 구상이지만, 이를 두고 벌써부터 특혜 시비가 나오고 있다. 기업의 사내 유보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부동산 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당장 지난해 한전 본사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한 현대차그룹이 최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대기업 부동산의 공시지가를 현실화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는 업무용 빌딩과 고가 주택 등의 공시지가 반영률이 시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부동산 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이미 2011년 3월 발의했다. 하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19대 국회에 들어와 2012년 12월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의 대표발의로 다시 발의됐지만, 현재 관련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태로 2년 넘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공시지가가 현실화할 경우, 땅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들이 입법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실련 부동산팀 최승섭 간사는 “거래가 흔치 않다는 이유로 대형 빌딩에 제대로 세금을 물리지 못하면서 아파트에 사는 일반 국민과 재벌 간의 과세 형평성이 깨지고 있다”며 “실거래가에 근접해 과세되고 있는 일반 아파트처럼 재벌 사옥을 비롯한 업무용 빌딩도 시세를 고려한 공시지가를 산출해 공정한 과세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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