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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1. 신하들이 권력 잡으려 왕을 독살하다

조선 후기 당쟁이 ‘택군’으로 변질…합법적 ‘대통령 당선자’ 갈아치우는 격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ㅣ 승인 2015.01.15(Thu) 18: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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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당쟁은 ‘택군(擇君)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말기 증상을 보였다. 신택군(臣擇君)이라고도 하는데, 신하들이 임금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왕조 국가에서 신하는 임금을 선택할 수 없었다. 임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지,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선택해서 임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조선 당쟁이 정상적인 정당정치의 길을 벗어나 비정상적인 궤도를 달리게 된 것은 모두 택군에서 비롯되었다. 신하들이 무력으로 임금을 내쫓고 의중의 인물을 추대하는 반정이란 이름의 쿠데타는 택군의 극단적 형태였다. 조선 후기에 횡행했던 국왕 독살설도 택군의 변형된 형태였다.

노론, 연잉군을 왕에 올리기 위해 청에 뇌물

인조반정 이후 숙종의 아들이자 희빈 장씨 소생이었던 세자(경종)를 두고 택군이 시작되면서 숱한 비극이 발생했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은 숙종 때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다. 소론과 남인은 세자(경종)를 지지한 반면 노론은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영조)을 선택했다. 왕조 국가의 법도에 따르면 노론이 연잉군을 선택한 자체가 역모였다. 경종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세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선거를 통해서 결정된 합법적인 대통령 당선자였다. 다만 즉위 날짜가 미정이라는 점만 달랐다. 그러나 노론은 희빈 장씨의 아들을 임금으로 모실 생각이 없었고, 이런 비(非)신하적인 사고가 거대한 비극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영조와 노론의 영수 김택이 대립하는 드라마 <비밀의 문>의 한 장면. ⓒ KBS 제공
노론은 숙종과 손잡고 세자를 연잉군으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병석에 누운 숙종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바람에 실패하고, 결국 경종이 즉위하게 되었다. 그러자 노론은 경종을 끌어내릴 여러 방책을 마련했는데, 이 계획에 청나라까지 동원했다. <경종실록>의 사관은 경종의 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청나라에 간 이이명(李?命)이 막대한 은화를 가지고 가서 청나라 고관들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노론은 끝까지 청나라를 부인하고 이미 망한 명나라를 임금의 나라로 섬기는 정당인데 왜 자신들의 정체성까지 부인하고 청나라 고관들에게 뇌물을 주었을까. 그 이유는 청나라 사신이 와서 국왕의 동생, 즉 연잉군을 만나보겠다고 한 데서 드러났다. 노론이 임금으로 추대할 인물은 연잉군임을 주지시키기 위해 청나라 고관들에게 뇌물까지 뿌렸던 것이다. 이는 결국 노론의 ‘친명 사대주의’가 임금(광해군)을 끌어내리기 위한 쿠데타 명분에 불과했음을 말해준다. 노론이 여러 방법을 동원해 경종을 끌어내리려는 와중에 경종 1년(1721년) 12월 소론 강경파 김일경(金一鏡) 등이 노론 4대신을 사흉(四凶)으로 공격하는 신축소를 올리면서 정권이 소론 강경파로 넘어갔는데 이를 ‘신축환국(辛丑換局)’이라고 한다.

김일경을 필두로 소론 강경파가 정권을 잡자 경종 2년(1722년) 3월 목호룡(睦虎龍)이 “성상(聖上)을 시해하려고 모의하는 역적들이 있는데, 혹 칼로써, 혹 독약으로, 또 폐출(廢黜·왕을 쫓아냄)을 모의한다고 합니다. 나라가 생긴 이래 없었던 역적들이니 급하게 토벌해서 종사를 안정시키소서”(<경종실록> 2년 3월27일)라고 고변하면서 정국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이것이 ‘삼급수(三急手) 고변’ 사건, 또는 ‘목호룡 고변’ 사건이다. 이 역모에는 대다수 노론가(家) 자제들이 가담했는데, 고변자 목호룡이 여기에 깊숙이 개입했던 인물이란 점에서 정국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목호룡은 남인가 서자로서 종친 청릉군(靑陵君)의 가노(家奴)였는데, 풍수지리에 능해 연잉군 모친의 장지를 정해준 대가로 속신(贖身·노비에서 양인으로 신분 상승)돼 왕실 소유의 장토(庄土)를 관리하는 궁차사(宮差使)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목호룡은 당초 연잉군 쪽에 섰다가 신축환국으로 소론이 정권을 잡자 고변 쪽으로 돌아섰는데, 이 고변 사건으로 김창집(金昌集)·이이명을 비롯한 노론 4대신과 수많은 노론가 자제들이 사형을 당했다. 이 모두가 신하들이 임금을 택하는 택군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 사건을 임인옥사라고 하는데 더 큰 문제는 노론가 자제들이 경종을 제거한 후 추대하려던 임금, 즉 역모의 수괴가 세제(世弟) 연잉군이었다는 점이다. 경종이 좀 더 권력 지향적이었다면, 이 사건 때 연잉군은 사형당하든지 강화도 교동에 유배돼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경종은 비록 이복형제지만 선왕 숙종의 유일한 핏줄인 연잉군을 아껴서 처벌하지 않았다. 또한 이광좌를 비롯한 소론 온건파가 연잉군 보호에 나서면서 연잉군은 사형은커녕 세제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영조 즉위 후 노론과 소론 온건파 당쟁 가열

그러나 경종이 재위 4년(1724년) 8월 초부터 병석에 누우면서 정국이 또 한 번 요동쳤다. 와병 중의 경종에게 극심한 흉통(胸痛)과 복통(腹痛)이 발생했는데, 그 원인에 대해서 <경종실록>은 “여러 의원들이 어제 게장을 진어(進御·임금에게 올림)하고 곧이어 생감을 진어한 것은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리는 것이라 해서 두시탕(豆?湯) 및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진어하도록 청했다”(<경종실록> 4년 8월21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때 경종의 곁에서 시약(侍藥)하고 있던 세제 연잉군이 ‘인삼과 부자(附子·바꽃의 어린 뿌리)’를 쓰려고 하자 어의 이공윤(李公胤)이 “신이 진어한 약을 복용하신 후 삼다(蔘茶)를 진어하면 기를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반대했다. 자신이 처방한 약에 인삼이 가세하면 세상을 뜰 것이라는 반대였는데도 연잉군은 이공윤을 꾸짖으며 기어이 삼다를 올렸다. 결국 경종은 그날 새벽 3시쯤 창경궁 환취정(環翠亭)에서 재위 4년 2개월 만에 만 서른여섯의 나이로 승하하고 말았다.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보낸 인물이 연잉군을 옹호하던 대비 인원왕후이고 이를 경종에게 진어한 인물이 연잉군이라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또한 이공윤을 꾸짖으며 삼다를 올린 사실도 유포되었다.

연잉군이 즉위하자 경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것은 당연했다. 영조가 즉위 직후 소론 강경파 김일경과 고변자 목호룡을 사형시킨 것이 이런 소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영조가 재위 1년(1725년) 1월 경종의 능인 의릉(懿陵)을 참배하기 위해 출궁하자 군사(軍士) 이천해(李天海)가 큰소리로 저주하는 초유의 사건도 발생했다.이천해를 국문하던 영조는 “차마 들을 수 없는 음참한 말이어서 입에 담을 수 없으니 좌우의 사관은 쓰지 말라”고 명했고 사관 역시 “그 말이 극히 음참하기 때문에 초책(草冊·실록의 초고)에 쓸 수 없습니다”(<영조실록> 1년 1월17일)라고 답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28세의 청년 이천해는 24번의 압슬형을 받았으나 아프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죽었는데, 이천해의 말도 경종 독살설과 관련된 것이었다. 영조 즉위에 대한 반발이 잇따르자 노론은 목호룡의 옥사 때 세제 연잉군을 도왔던 소론 온건파까지 제거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나섰지만 더 이상 왕위 자체가 정쟁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영조는 재위 3년(1727년) 정권을 노론에서 소론 온건파로 바꾸는 정미환국(丁未換局)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 정미환국이 결과적으로 영조의 왕권을 계속 유지하게 했다.

정미환국으로 소론 온건파가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영조 4년(1728년) 3월15일 밤 일단의 무장 세력이 충청도 청주 병영을 점거하는 것으로 시작된 무신란(戊申亂), 즉 이인좌(李麟佐)의 난이었다. 이들은 행상(行喪·주검을 산소로 나르는 일)을 핑계로 상여에 병기를 실어 성 앞 숲속에 몰래 숨겨놓았다가 일어선 것이었다. 봉기 세력은 소론 강경파와 일부 남인들이 주축이었는데 군중에 경종의 위패를 모셔놓고 조석(朝夕)으로 곡하고 싸우러 나가는 군대였다. 봉기 세력이 보기에는 영조와 노론이 역적이었는데, <영조실록>은 “(청주)성 안의 장리(將吏)로서 적에게 호응하는 자가 많았다”고 전할 정도로 승패는 알 수 없었다. 이들은 소현세자(인조의 장남)의 증손 밀풍군 탄(坦)을 추대했는데, 이는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지는 ‘삼종의 혈맥’이 연잉군(영조)의 역모 가담으로 끊긴 것으로 보고 새 왕통은 소현세자의 혈통에서 나와야 한다는 정통론을 내세운 것이었다.

   
소론 강경파·남인 주축 ‘이인좌의 난’ 일으켜

봉기군은 각지에 관문(關文)과 격문(檄文)을 뿌렸는데, 영조는 이를 모두 불태우게 하고 이를 지니거나 전하는 자는 목을 베라고 명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영조는 노론 출신의 총융사 김중기(金重器)에게 출전을 명했으나 두려워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노론은 위축되었다. 이때 진압을 자처하고 나선 인물이 소론 온건파 오명항(吳命恒)과 박문수(朴文秀)였다. 이인좌는 이들에 의해 안성에서 패배하고 도주했다가 체포됐다. 결국 소론 강경파인 준소(峻少)가 일으킨 이인좌의 봉기는 소론 온건파인 완소(緩少)에 의해 진압되었다. 정미환국이 없어서 소론 전체와 남인 대다수가 가담하는 전국적인 내란으로 확대되었다면 영조나 노론이 진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국군사이버사령부와 국가정보원 일부의 불법 선거운동은 국민들의 대통령 선택권을 부인하고 자신들이 대통령을 선택하려 한 택군에 해당한다. 이것이 대선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벌백계로 재연을 막아야 할 사안이다. 이인좌의 난 이후 노론에서 다시 소론 온건파까지 공격하자 영조가 “지금 역변이 당론(黨論)에서 일어났으니 당론을 하는 자는 역률로 다스리겠다”면서 탕평책을 시행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영조는 말과 달리 이후에도 노론의 당론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이는 사상 초유의 비극으로 나타났다. 이 모두가 헌정질서를 벗어난 택군이 낳은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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