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4명 ‘마약의 덫’에 걸렸다
  • 홍순도│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15.01.15 19: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광둥성 교민 야구 동호회원 마약 운반 혐의로 체포돼

지난해 12월28일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의 바이윈(白雲)공항에서는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연출됐다. 호주로 출국하려던 한국인 14명의 가방 안에서 무려 20kg이 넘는 다량의 필로폰이 발견된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광저우와 선전(深) 등 광둥성의 대도시와 홍콩 일원의 야구 동호회 소속으로 서로가 잘 아는 사이였다. 누가 보더라도 조직적으로 필로폰을 밀수·밀매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가방 운반만 했을 뿐, 마약 전혀 몰라”

과거 영국과 아편전쟁까지 치른 아픔 탓에 마약 트라우마가 있는 중국의 공안 당국은 즉각 이들을 마약 사범으로 판단하고 구속해버렸다. 혐의가 입증되면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1kg 이상의 아편이나 50g 이상의 헤로인·필로폰을 밀수·판매·운반·제조할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명문화하고 있다.

2014년 5월 중국 공안이 베이징에서 마약 단속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영화 소재로 부족함이 없다. 그다음 사연은 아예 영화 그 자체다. 14명의 한국인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해당 마약과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가방을 그저 운반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과 판박이 포맷이다. 광저우 주재 한국 총영사관 고위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들의 주장은 억지만은 아닌 듯하다. 다음은 기자가 관계자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그분들은 모두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중소기업 주재원으로 일하는 광둥성 일대 교민들이 맞아요. 같은 동호회에서 정기적으로 야구를 해온 분들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에요. 다들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나름 괜찮은 팀을 꾸리기도 했죠. 그러다 최근에 호주 아마추어 동호회의 초청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도 경기를 하기 위해 출국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해요. 호주 측 대회 관계자의 부탁으로 출국하려고 했던 22명의 동호인 중 14명이 가방을 나눠 들었다는 겁니다. 당연히 마약이 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총영사관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14명의 한국인은 마약 사범 누명을 언젠가는 벗을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처벌 역시 가벼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저우 해관(세관에 해당)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는 14명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무혐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녹록하지 않다. 무엇보다 마약 사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경우 중국 당국은 일반 민·형사 사건과는 달리 유죄 추정을 원칙으로 한다. 심지어 현지 교민들도 이들 14명을 동정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을 정도다. 자신들의 주장대로 실제 마약 사범이 아닌데도, 설마 하다가 만에 하나 사형 집행으로 비명횡사하거나 장기간 수형 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그럴 리가 있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마약 사범에게 유난히 혹독한 중국의 형법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는 중국이 금세기 들어 사형에 처한 외국인 마약 사범이 적지 않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인을 제외한 외국인을 보면 일본인 5명, 필리핀인 5명, 영국인·파키스탄인 각 1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모두가 2009년 이후 희생자들이다.

한국인 수도 만만치 않다. 모두 5명에 이른다. 첫 희생자는 지난 2002년 사형당한 신 아무개씨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4명은 최근 6개월 사이에 사형이 집행됐다. 특히 마지막 희생자는 지난해 마지막 날에 목숨을 잃었다. 이 경우는 사형이 집행된 지 일주일 만에 한국 정부에 통보돼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국가적 무능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항의도 변변히 못했다는 것이 교민 사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1월6일 중국 TV에 한국인 마약 사범 사형 집행 뉴스가 보도됐다. ⓒ 연합뉴스TV 캡처
비난 여론 의식, 총영사관 기민한 대응

한국인의 경우는 이게 다가 아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유예받은 마약 사범도 1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더 이상 집행이 유예되지 않는다면 희생자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여기에 14명이 무죄에 대한 증거를 대지 못하고 일부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사형수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이 마약 사범에 관한 한 중국의 최대 골칫거리 국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와 달리 이번 광저우 사건 14명의 경우, 우리 총영사관의 조력을 비교적 잘 받고 있다는 점이다. 양창수 총영사의 전언에 따르면, 현재 전담 영사를 두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고 한다.

마약은 지하경제 중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다. 시쳇말로 한 건 크게 하면 평생 먹고살 돈을 손에 쥐는 것이다. 하지만 마약 사범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고 엄혹하게 처벌하는 중국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안룰렛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무모한 도전을 계속한다. 중국 정부를 잔인하다고 비난만 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불어 한국인 마약 혐의자 14명에 대한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하는 것 역시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마약에 관해서만큼은 털어서 먼지가 안 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광저우 사건의 14명 한국인 혐의자들은 처지가 안타깝지만 방어 논리가 궁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