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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끗발에 장관도 벌벌 긴다

역대 청와대 비선권력 사고 반복…“우리는 아니다”는 자만심이 더 위험

김현일│대기자 ㅣ 승인 2015.01.19(Mon) 19: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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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이 장관보다 위다.” “비서관이 수석(비서관)보다 세다.”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권력 세계, 특히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성립한다. 최고 권력자(대통령)와의 ‘거리’에 따라 차관의 영향력이 장관이나 총리보다 얼마든지 클 수 있고, 비서관의 말발이 수석비서관이나 비서실장보다 더 잘 먹혀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권력암투 파동 당시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은 한 차관이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전갈’을 받아 인사를 전횡했다고 재임 시절을 회고했다.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수행 중 워싱턴 D.C.에서 성추행 소동을 일으킨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직속 상급자인 홍보수석에게 배정된 차량을 넘겨받아 타고 다닌 게 우연이 아니다. 차관의 일정을 감안해 자신의 오찬 일정 등을 조정한 전두환 정권 시절 한 내무장관의 일화는 한갓 지난날 얘기가 아니다. ‘실세’와 관련되면 기본이 뒤헝클어지는 게 권력의 세계다.

역대 실세들은 고위직…지금은 비서관급

국무총리·대통령비서실장·국가정보원장을 행정부 ‘빅3’라고 부른다. 빅3와는 별개로 국정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은 4대 권력기관장으로 통칭된다. 국정원장 대신에 감사원장을 넣어서 4대 국가 사정기관의 수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권력 엘리트라고 해서 우리 사회가 말하는 ‘실세’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정 전반에 걸쳐 얼마만큼 입김을 불어넣느냐가 진짜 실세를 가늠하는 척도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모든 의혹이 풀렸다며 이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선포’했다. 여론의 거센 비판이 대통령의 집착을 더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왼쪽부터)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현재 행정부 서열 2위인 정홍원 총리를 실제 2위의 권력자로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사실 지금의 42대 정 총리에 이르기까지 명실상부하게 실세라고 불린 총리는 많지 않다. DJP연합 정권에 따른 지분에 따라 나름의 위상을 확보한 ‘김종필 총리’의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이해찬 총리 정도를 실세 총리로 치부하는 게 일반적이다. 역대 빅3 중 대통령비서실장이나 국정원장 가운데는 그런대로 실세 소리를 듣는 실장과 원장이 꽤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이후락 비서실장 및 전 중앙정보부장(국정원장의 전신), 전두환 대통령 시절 장세동 안기부장(국정원장의 전신), 노태우 대통령 때의 서동권·이현우 안기부장 등이 그들이다. 김대중(DJ) 대통령 시절의 박지원 비서실장은 ‘소통령’ 별칭을 들을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다.

빅3는 아니라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이 반열에 든 실세는 꽤나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다. 당연한 귀결로 청와대 경호실장·의전수석·총무수석 등이 많았다. 대통령 자신의 신변을 호위하는 경호, 일상을 챙기는 의전, ‘지갑’을 관리하는 총무에게 특별한 신임이 주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박종규·차지철 경호실장은 대표적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실세로 3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 등도 거명됐으나 한때였다. 노태우 정부의 실세로는 ‘6공 황태자’ 소리를 듣던 박철언 의원과 ‘6공 금융 황태자’로 불리던 이원조 의원, 나중에 안기부장이 된 이현우 경호실장 등이 거론된다. 김영삼(YS) 정부의 실세는 그의 차남 현철씨였다. 정부 장·차관과 국장 인사는 물론 안기부·군·공기업 인사와 국회의원 공천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주요 부분이 없었을 정도다. 청와대 내부에서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서슴지 않던 이원종 정무수석과 홍인길 총무수석이 ‘실세’ 소리를 들었으나 급이 달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실세로는 DJ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권노갑 의원과 DJ 장남인 김홍일 의원 등이 있다. YS 차남 현철씨에 이어 현직 대통령 아들로서 감옥에 갔던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는 실은 실세와는 거리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실세로는 이해찬 총리나 문재인 비서실장 외에 ‘우광재-죄희정’으로 불리던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최도술 초대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꼽는다. 이명박(MB) 정부의 실세로는 역시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이 의원의 비서관 출신으로 청와대 비서관 시절 ‘왕비서관’, 행정부에 나가서는 ‘왕차관’이라는 칭호를 얻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거명된다.

이처럼 대통령과의 친분이나 혈연 등에서 비롯한 절대적 신임을 배경으로 인사와 돈에 깊숙이 관여한 실세 대다수는 나름의 ‘내공’을 쌓은 청와대·국정원 등의 고위직이었다. 월권으로 국정 농단 시비를 불러온 역대 실세들이 고위직이었다는 점에서, 청와대 비서관급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주역으로 부각되는 지금의 ‘청와대 3인방’ 시비와 사뭇 대비된다. 과거 청와대 비서관들은 참모라는 이유로 무조건 침묵했다. 일반 비서관은 물론 수석들의 이름 석 자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물며 제1·2부속실은 아예 언급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행정관들이 밖에서 사고를 치고 전·현직 비서관이 서로 치고받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 수석비서관이 ‘항명’을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도덕 정치 내건 노무현 정부도 측근들 사고

청와대 조직, 특히 부속실은 헌정 사상 첫 독신 여성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달라졌다. 과거에는 제1부속실은 대통령을, 제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을 보필하도록 돼 있었는데, 지금은 제1부속실이 보고서 등을, 제2부속실은 대통령 관저 생활 지원과 비공식 일정 및 현장 수행을 맡는다. 민원 처리가 본 업무로 돼 있지만 곁가지다. 때문에 전에는 대통령의 수족(手足)처럼 움직이며 일정과 각종 보고서를 챙긴 제1부속실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지금은 ‘밀착도’ 등에서 제2부속실이 중심 역할을 하는 모양새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머무르면서 대통령의 심중까지를 헤아리는 부속실 관계자의 이른바 끗발은 대단하다. 직급으로만 헤아릴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장관, 심지어는 수석들조차 대통령 대면이 어려운 현 체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고리 권력’의 위세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소이다.

YS 정부 이전의 청와대 관련 보도에 부속실이 등장한 사례는 거의 없다. 부속실이 사고를 친 효시는 YS 정부 들어서다. 이후 DJ·노무현 정부 제1부속실장들이 줄줄이 일을 저질렀다. YS의 청와대 제1부속실장 장학로는 기업인·정치인·공무원에게서 27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YS가 청와대 입성 후에도 “학로야”라고 부를 만큼 가까이했던 가신 그룹의 막내였다. 장학로 파문에 놀란 DJ 정부는 김한정 제1부속실장 등이 몸조심하며 탈 없이 지나가는 듯했으나 막판 이재만 행정관이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옷을 벗는 소동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제1부속실장 양길승이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게 알려지면서 도덕성을 강조하던 참여정부에 먹칠을 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기업에서 22억원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돼 치명상을 입혔다. MB 정부 들어서는 김희중 제1부속실장이 솔로몬저축은행 뇌물 사건에 연루돼 사법 처리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MB의 비서관으로 연을 맺은 김 실장 외에, MB 정권 ‘왕비서관’으로 공직 인사를 주무르던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등으로 실형을 살아야 했다. 

대통령과의 근접성이 부속실에 권력의 부나비들을 들끓게 만든 이유였다면, 총무비서실은 대통령 복심이 청와대 안살림과 공직 인사를 맡는다는 데에서 비리 온상이 되었다. YS 정권의 홍인길 총무수석은 집권 말기에 터진 한보 사태로 감옥 신세를 졌다. 특히 그가 데리고 있던 인사비서관 ㄱ씨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엄중한 검증으로 유명했으나 막상 본인의 가짜 학력이 들통 나 중도 하차했다. 가짜 정체를 밝힌 주체는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들이다. 청와대 내 암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인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기업으로부터 22억원을 수뢰한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2003년 10월 검찰에 출두한 최 비서관. ⓒ 시사저널 임준선
민심과 괴리 큰 대통령 상황 인식이 문제 

박근혜 대통령은 1월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은 없다고 단정했다. ‘문고리 3인방’ 시비에 대해선 비리도 없고 이권에 개입한 게 없음이 확인됐다며 면죄부를 주었다. 나아가 의혹을 받았다고 내친다면 누가 자신의 옆에서 일하겠느냐는 말로 신뢰를 보냈다. 두둔을 넘어 입지를 공고히 해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권력욕으로 눈먼 비서관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부에 유출시켜 혼란을 유발한 것에 불과하다는 등의 말을 백번 수용하더라도,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사태의 수습 노력조차 않은 비서실장과 국회 출석 명령을 거부하고 사표를 던진 민정수석 행태 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답답해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간 김기춘 비서실장이 실세인 줄 알았는데 진짜 실세는 ‘3인방’임을 확인했다는 개탄과, 대통령이 ‘정진철 수석’을 알고나 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이어진다. 정 수석은 총리·장관 후보 등이 잇따라 낙마하자 검증을 강화한다며 지난해 8월 신설한 인사수석비서실 책임자다. 여기엔 이재만 총무비서관 휘하의 인사 담당에 눌려 제 목소리나 내는지 의문이라는 야유가 배어 있다. 그동안 경찰 간부 인사 등은 대통령이 휴대전화와 핸드백까지 맡길 정도로 신임하는 안봉근 비서관이 주도하는 것처럼 소문나 있었다.

박 대통령의 순수성과 충정만큼은 높이 평가하는 이가 많다. ‘베갯머리 송사’ 우려도 없고, 따로 뒷바라지해야 할 가족이나 물의를 일으킬 친인척이 적다는 현실도 그런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런 당장의 ‘긍정적’ 요소가 중·장기적으로 되레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귀담을 필요가 있다. 역대 정권들이 하나같이 측근들의 비리로 비극적 상황을 맞이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속성은 속성이다. 반복은 필연이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드러났지만,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천거라는 한마디만으로 하루아침에 그 어려운 대기업 간부로 취업되는 지금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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