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 도대체 너의 정체는 뭐냐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1.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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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도, 금연보조제도 아닌 것이…금연 위해 구입했던 흡연자들 혼란

전자담배는 담배일까, 금연보조제일까. 전자담배가 10여 년 전 세상에 나올 무렵부터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논란거리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크게 인상되면서 전자담배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전자담배에도 일반 담배와 동일한 포름알데히드·아세트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새해부터 금연을 위해 구입했던 상당수 흡연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세수 인상으로 인해 담배 소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꼼수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연 전자담배의 실체는 무엇일까.

양날의 칼처럼 전자담배에는 역기능과 순기능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자담배에 있는 중독물질(니코틴)과 발암물질은 역기능이고, 담배를 끊으려는 흡연자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순기능이다. 일방적으로 역기능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순기능을 잘 활용해 금연보조제로 유도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로 규정했는데, 사실 아무런 근거나 현실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금연 시도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으니 순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흡연자가 금연을 위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복지부는 1월16일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홍보·판매하는 행위를 단속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전자담배를 담배로 규정한 것이다. 복지부가 국내에 유통되는 전자담배 105종 가운데 상대적으로 니코틴 농도가 높은 30종을 분석한 결과, 전자담배를 피울 때 나오는 증기의 니코틴 함량이 평균 1㎎으로 일반 담배 1개비(평균 0.66㎎)보다 약 50% 높게 검출됐다. 복지부는 “전자담배를 150모금 흡입하면 성인 기준 니코틴 치사량인 35~65㎎에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150회 흡입할 경우라서 설명이 과장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았다.

“금연 성공률, 기존 금연보조제보다 높다”

농도야 어떻든 금연이 어려운 이유는 니코틴 중독 때문이다. 담배를 갑자기 끊으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 금연보조제(패치나 껌 등)는 니코틴을 소량 넣어 금단 증상을 최소화하면서 담배를 끊도록 유도한다. 전자담배에도 니코틴 성분이 있는데, 그 중독성은 일반 담배보다 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의대 공공의료·정신과 조너선 파울드 교수팀은 3600명을 대상으로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의 중독성 차이를 조사했다. 아침에 일어나 첫 담배를 피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7분이던 것에 비해 전자담배는 45분 걸렸다. 또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신경과민 현상은 일반 담배의 경우 조사 대상자의 90%가 겪지만, 전자담배는 대상자의 25%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연구팀은 “일반 담배는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지속해서 피우지만 전자담배는 두세 번 피우고 10~15분 뒤 또 피우기 때문에 혈액 내 니코틴 수준이 담배를 피울 때보다 낮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금연을 시도한 흡연자 중 상당수가 니코틴 껌을 끊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금연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니코틴 껌은 최소한 간접 흡연이나 냄새로 인한 불쾌감을 일으키는 공중보건의 문제는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점도 전자담배의 순기능이다. 정 교수는 “금연하려는 암 환자나 호흡기 환자에게 일반 담배보다 전자담배는 안전한 선택일 수 있고, 니코틴은 혈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므로 심근경색 환자에게는 이롭지 않다”며 “이런 점을 잘 구분하고, 유해 성분을 제거하고 관리하면 전자담배도 금연하려는 흡연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전자담배에 있는 발암물질도 측정했는데, 그 농도는 담배보다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물론 발암물질이 높게 나온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 국립보건의료과학원이 지난해 전자담배 증기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발암물질이 일반 담배보다 최고 10배 많이 검출됐다. 그렇더라도 4000여 가지의 유해물질이 있는 일반 담배보다 전자담배가 더 해롭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영국 보건국(NHS)은 2013년 전자담배의 위험성이 일반 담배 흡연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전자담배에 함유된 유해물질을 인정하면서도 유해성을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국내외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전자담배의 금연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미국·캐나다·영국·호주 등에서 2010년과 2011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자담배 사용자의 85.1%가 금연보조제로 이용하고 있으나 실제 금연 성공률에서는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흡연자와 그렇지 않은 흡연자 간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뒤집은 연구 결과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전자담배 사용자군의 6개월 금연 효과가 7.3%로 니코틴 패치 사용자군(5.8%)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자담배의 금연 효과가 2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로버트 웨스트 교수팀은 지난해 다른 금연 도구보다 금연 성공률이 최대 두 배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5년간 6000여 명의 흡연자를 대상으로 전자담배, 니코틴 패치·껌, 자발적인 금연 의지 등 세 군으로 분류한 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니코틴 패치와 껌을 이용한 흡연자의 금연 성공률이 10.1%에 그쳤지만, 전자담배를 통한 성공률은 20%에 달했다. 또 순수 의지만으로 금연을 시도한 시험군에서의 금연 성공률은 15.4%로 나타났다. 웨스트 교수는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금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그만큼 성공률도 높아졌다”며 “이번 연구 결과만으로 전자담배의 효용성이 높다고 섣불리 단언할 수 없기 때문에 안전성과 장기적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으로 지난해 환경 연구 및 공중보건 분야 상위급 학술지인 ‘국제환경연구공중보건저널’에는 전자담배가 흡연자의 흡연 욕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분류하는 분위기다. 미국 보건학회도 전자담배를 금연에 실패한 흡연자에게 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처럼 전자담배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제각각이어서 의료계와 담배업계의 시각이 엇갈린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관계자는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담배업체 관계자는 “전자담배에 니코틴이 있으면 담배 대체재, 없으면 금연보조제로 본다”고 말했다. 소비자도 전자담배로 금연에 성공했다는 사람과 결국 흡연을 다시 시작했다는 경우로 나뉜다.

각국의 규제도 혼란스럽다.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국(홍콩, UAE의 두바이)이 있는가 하면 자유롭게 판매를 허용하는 나라(중국, 독일, 헝가리, 폴란드)도 있다. 담배의 일종으로 분류해 중한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한국)와 니코틴 보조제의 일종으로 의약품으로 규정하는 경우(덴마크, 오스트리아)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부정적인 편에 섰다. 전자담배의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업계가 전자담배를 금연보조 수단으로 판촉·광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담배에 대한 기준·규제 필요

국내에서는 업체가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전자담배를 수입해 판매할 수 있다. 업체는 하나같이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홍보하고 있다. 또 전자담배에 무슨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파악도 안 된 상태다. 전자담배의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박사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현재,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여기고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전자담배를 담배 또는 금연보조제로 삼으려면 그에 준하는 기준·규제·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자담배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찬반론은 팽팽하지만 청소년의 이용은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내놓았다. 한국 여성가족부는 2011년 전자담배를 청소년 유해 물건으로 지정했다. 이철민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전자담배가 담배보다는 덜 해로울 것이라는 기본적인 전제에는 동의하지만,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금연 목적으로 전자담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청소년이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개인보다 그 직장인이 속한 부서에 금전적 포상을 하면 금연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끈다. 이상학 성바오로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은 병원 근로자 중 흡연자 28명을 대상으로, 금연할 경우 해당 부서에 인센티브를 제공했더니 3개월 후 금연 성공률이 61%, 6개월 후 54%, 1년 후에도 50%를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금연 약과 행동요법 등을 이용한 1년 금연 성공률(15~30%), 흡연자의 의지에 의한 금연 성공률(5%)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다. 이 교수는 “흡연을 하지 않는 동료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금전적 보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부서)에 줬다”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금연 후 일주일이 지나면 한 사람당 5만원, 한 달 후엔 5만원, 3개월 후엔 10만원, 6개월 후엔 10만원을 금연 성공 지원금으로 제공했다. 부서 내에서 담배를 끊은 사람이 한 사람이면 30만원, 다섯 사람이면 150만원을 해당 부서에 준 셈이다.

이번 연구에선 나이가 들수록, 또 흡연 경력이 오래될수록 1년 후 금연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평소 흡연이 해롭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던 장기 흡연자가 특별한 동기가 없어 선뜻 금연에 나서지 못하다가 직장 동료의 격려와 지원을 받으면서 금연 결심을 굳히고 이를 지속시킨 결과로 해석된다. 금연을 시도하는 동료가 힘들어하면 물 한잔 마실 것을 권하는 등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소변 검사를 통해 체내 니코틴 양을 측정해 금연 여부를 확인했다”며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동료가 금연 실천과 지속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시사점”이라고 덧붙였다.

2009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의학지(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기업이 담배를 끊은 개인에게 경제적 보상(금연 프로그램 이수 100달러, 6개월 금연 250달러, 1년 금연 400달러 제공)을 했더니 9~12개월 후 금연 성공률이 14%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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