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대란’, 정부가 불렀고 국회는 눈감았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1.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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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세법개정안 국회 기재위 회의록 분석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것이다.” 2013년 8월 박근혜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주도한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과거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콜베르 재무상의 발언을 인용해 한 말이다.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 ‘증세(增稅) 논란’을 야기하자, 중산층의 세 부담 증가는 미미할 것이라는 의미로 나온 발언이다. 하지만 당시 조 수석의 말과는 달리, 거위들이 ‘고통 받는’ 강도는 훨씬 더 셌다. 세제 개편의 효과가 처음 반영되는 올해 연말정산 시한이 다가오면서 ‘유리지갑’이라는 근로소득자들의 거대한 저항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여당은 연말정산 소급 적용이라는 전례 없는 카드를 꺼내들면서까지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은 거위의 고통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예상했으면서도 애써 무시한 것일까. 현재 연말정산 제도는 2013년 8월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중심으로 국회 상임위 논의를 거쳐 소득세법 개정 법률안 통과(2014년 1월1일)로 법제화됐다. 시사저널은 2013년 12월 당시 소득세법 개정 법률안을 처리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관련 회의록을 살펴봤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졸속 처리를 강행했고, 국회는 이를 눈감아주면서 ‘연말정산 대란’의 원인을 제공했다.

1월21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당·정협의회를 열고 ‘연말정산 대란’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기재위 “정부안대로라면 세금 거의 안 늘어”

국회가 소득세법 개정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은 2013년 12월24일 국회 임시회(제321회) 기재위 산하 조세소위원회 제9차 회의 때였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정부는 세법 개정에 따른 세 부담 증가 추계를 면밀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당시는 납세자단체와 언론에서 정부 세제 개편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서 증세 우려를 한창 제기할 때였다. 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질의와 해명 요구가 있었지만 기획재정부 측의 답변은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 정부안은 예를 들면 7000만원까지는 거의 세금이 안 늘어나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4000만원까지는 거의 안 늘어나고요. 6000만원, 7000만원대에서 1만원, 3만원 이런 식으로 늘어납니다. 7000만원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확 늘어나는 개념으로 돼 있거든요.

 

하지만 이는 한국납세자연맹 등 시민단체의 주장과는 큰 차이가 난다. 납세자연맹이 최근 추정한 사례별 연말정산 세 부담 증가 추정액은 연봉 2360만~3800만원 미혼 직장인(남성)의 경우 17만원이다. 하지만 정부 추정액은 0원이다. 또 자녀를 낳은 연봉 6000만원 직장인(여성)은 34만원의 세금이 증가해 정부 추정액 최대 3만원과 비교해도 3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연봉 7500만원의 맞벌이 직장인(남성)의 경우 차이는 더 벌어진다. 정부는 이들의 세 부담 증가액을 33만원으로 추정했지만, 단체는 75만원 증가로 예측했다. 추정액 차이가 40만원 넘게 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한 야당 의원의 질의도 있었지만 정부는 정확한 추정 계산법을 공개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 넘어갔다.

 

홍종학 위원(민주당) : 그런데 지금 하나는 정부가 추계한 것이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 얘기들이 죽 나오고 있잖아요? 일단 납세자연맹인가 하는 납세자단체에서 정부의 추계치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지금 얘기하고 있고요.

김낙회 실장 :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것은 기법상의 문제인데 정부는 분명히 실제 신고된 자료를 가지고 다, 국세청에서 전체의 자료를 가지고 돌린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 자료를 어떻게 돌렸느냐를 하나하나 내놓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저희가 구체적으로 제시하기가 좀 어려운 측면은 있습니다마는 실제 통계 자료에 근거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과세표준액·총급여액 헛갈린 자료 내기도

기획재정부가 여야 의원들에게 제출한 자료에 오류가 있었던  점도 회의록에서 드러났다. 총급여액과 과세표준액을 혼재해 사용한 것이다. 당시 세제 개편안에 대한 비난 여론 등을 감안했다면 정부가 좀 더 꼼꼼히 파악하고 국회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세제 개편안에 따른 효과를 부실하게 제시한 것이다.

 

이용섭 위원(민) : 여기 표의 총급여액이 총급여가 아니라 과세표준이지요?

김낙회 세제실장 : 아닙니다. 총급여입니다.

이용섭 위원(민) : 그러면 우리하고 기준이 다르잖아, 우리는 과세표준으로 한 것인데.

나성린 소위원장(새누리당) : 과표로 해야 되는 것 아니야?

이용섭 위원(민) : 과세표준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뒤에도 총급여라는 것이 잘못 써진 것 같아요.

김낙회 세제실장 : 예. 위원님, 이것은 저희가 표를 하다가 조금 누락이 됐는데요, 다시….

 

당시 정부·여당이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 ‘중산층 세금 폭탄’ 비난을 불러일으키자, 이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원칙 없이 개편안이 수정됐을 가능성도 회의록에서 드러났다. 조세소위 위원인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소득 구간 간 세후소득 역전 현상을 지적하자, 당시 김낙회 세제실장은 “역전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나온 조세소위원장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다.

  

나성린 소위원장 : 박(원석) 위원, 왜 그런 지저분한 안이 나온 줄 알지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니깐 중산층 폭탄이라고 막 공격이 들어온 거야. 그래서 중산층 폭탄을 없애기 위해서 그게 나온 거야, 다 계산해가지고.

 

당시 세제 개편이 근로자의 증세에만 집중돼 있었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항목을 구분하는 대목에서 정부가 의료비와 교육비를 지원 대상으로 보고 소득공제에서 제외하려고 한 것과는 달리, 금융상품 투자에 따른 소득에 대한 혜택은 공제 대상에 여전히 포함시킨 것이다.

 

홍종학 위원(민) : 그런데 제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금융상품에 대한 지원이 있어요. 그것은 소득공제로 내버려두시는 거지요, 지금? 금융상품에 대해서 지원하는 것은 소득공제로 그냥 내버려두시지요, 장기펀드?

김낙회 실장 : 예.

박원석 위원(정의당) : 그런 것은 바꾸자고요. 오히려.

홍종학 위원(민) : (김 실장에게 반문하듯) 아니, 그거야말로 정말 지원 중의 지원인데 금융 시장 지원하는 것은 그냥 내버려둬요? 그건 정말 잘못된 거잖아요. 논리가 안 맞잖아요.

이 대목에서 김 실장은 ‘연착륙’을 논리로 앞세운다. 자산가 등 부유층에게 밀접한 금융상품 지원에 대해서는 세제 개편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자는 논리를 편 것이다.

 

김낙회 실장 : 그러니까 위원님, 그런 부분도 저희가 지금 한꺼번에 다 못 가는 것인데요, 연차적으로 갈 테니깐 그것도 저희가 전환할 때 도와주십시오.

홍종학 위원(민) : 아니, 그러니깐 연차적으로 가는 게 좋은데 지금 처음으로 바꾸는 거잖아요. 그러면 논리를 우리가 정확하게 얘기를 하자고요. (중략) 금융에 대해서, 거기다 저축을 한 것에 대해서 지원을 해주는 것 이것은 명백하게 지원 성격이에요. 그 명백한 지원 성격은 소득공제로 내버려두면서 지원인지 경비인지가 애매모호한 것(의료비, 교육비 등)은 바꾸겠다, 여기에 논리적 모순이 있는 거지요.

나성린 소위원장(새) : 아니, 금융에 대한 지원은 한도가 있잖아, 한도. 다 해주는 게 아니잖아.

홍종학 위원(민) : 이것도 다 한도가 있잖아요.

나성린 소위원장(새) : 그러니깐 그것은 부자들한테 무조건 다 해주는 건 아니지.

김낙회 실장 : 저희가 그것도 고민을 했던 부분인데요, 현재 이게 한시적으로 가는 것들이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좀….

1월8일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이 사무실에서 연말정산 자동계산기 시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유층 금융상품 지원은 내버려두면서…”

정부·여당이 졸속으로 세제 개편안을 주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야당도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임위 차원에서 마지막 심의·의결이 이뤄진 2013년 12월31일 기획재정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당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소속의 홍종학 의원은 “세제 개편안은 부자 감세를 철회하지 않기 위해서 퇴직 직전의 봉급쟁이들에게 세금 부담을 급격하게 늘리는 불공평한 세제 개편안”이라고 거듭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부 기재위 소속 야당 의원들도 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 통과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득세 최고세율 38% 과표 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등 일부 세제 개편안을 수정하는 데 집중하다보니 세 부담 가중의 현실적인 문제점 등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고, 국회 공전(空轉)으로 인해 충분히 법안을 심의할 여유도 없이 처리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결국 정부·여당이 주도한 세제 개편안은 상임위 마지막 회의 다음 날인, 2014년 1월1일 본회의에서 ‘찬성 245명, 반대 6명’으로 통과됐다. 이는 정확히 1년 후 ‘연말정산 대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낳게 했다.

 

여론 눈치보다 ‘누더기 세법’ 됐다 


정부·국회의 세제 개편안 졸속 처리로 전례 없는 연말정산 소급 적용 사태가 빚어지게 됐다. 단순히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차원이라지만, 사상 초유의 사태라서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법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세 제도의 근간을 1년 만에 다시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누더기 세법이 됐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5~6월 월급 때 급여통장을 통해 소급 적용분을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4월 중 문제점을 보완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사후 기업이 근로자들의 급여통장을 통해 환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안 개정이 아무리 신속히 이뤄진다 하더라도 기획재정부·국세청 등 당국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가장 큰 문제는 세수 부족의 도미노 현상이다. 정부는 2013년 세제 개편 당시 연말정산 방식을 변경하면 세수가 93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를 자녀장려세제(CTC), 근로장려세제(EITC) 등을 위한 예산 1조4000억원에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말정산 소급 적용으로 관련 예산의 세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여당의 졸속 세법 개정으로 인한 연말정산 대란이 세정 혼란과 납세자 불편, 나아가 나라 살림 악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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